2025년 8월호

“부족함 인정하고, 자신 사랑하기로 결심한 37세로 산다”

[명사건강학] 이상봉 디자이너의 스타일보다 빛나는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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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5-08-0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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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형에 맞게, 자신 있게 입는 것이 ‘꾸안꾸’의 시작

    • 벼룩시장에서 건강한 자극 얻는 친환경주의자

    • 전신 관절 풀어주는 스트레칭으로 하루 시작

    • 일할 때마다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우며 성장

    • 자전적 이야기 다룬 연극 공연이 마지막 꿈



    이상봉 디자이너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라”고 말한다. 조영철 기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라”고 말한다. 조영철 기자

    인터넷상에 떠도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신상 정보 가운데 잘못된 것이 많다. 출생 연도부터 그렇다. 그는 1954년에 태어났다. 칠순을 막 넘은 나이인데도 옷차림뿐만 아니라 피부 톤, 말투, 마인드까지 ‘할배’ 같지 않다. 겉모습만 남다른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디자이너로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을 실력이 아닌 “행운”이라 말하고, 일신의 성공보다 공익에 더 큰 정성을 쏟을 정도로 내면 또한 예사롭지 않다. 

    기자가 그를 명사건강학 인터뷰이로 섭외한 것은 젊은 패션 감각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견고한 마인드에 더 관심이 갔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디자이너가 된 것도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감동과 호감을 유발하는 그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터. 이번 인터뷰는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중년 맞춤형 ‘꾸안꾸’ 스타일링 공식

    이상봉은 1985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이너 브랜드 ‘LIE SANGBONG’을 론칭한 후 K패션의 세계화에 앞장서 왔다. 한글을 소재로 한 디자인으로 한글의 문화산업화 가능성을 처음 증명한 패션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한글과 단청, 한국적 아름다움이 그가 만드는 디자인의 주된 재료다. 그는 디자이너 활동뿐만 아니라 후학 양성과 환경 지킴이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고교패션콘테스트,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 교육사업,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ESG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6월 말에는 그가 10년 전 창립을 주도한 한국패션디자이너협회 회장직을 오랜 고사 끝에 수락하기도 했다. 

    삭발 헤어스타일과 동그란 안경은 그를 연상케 하는 트레이드마크로 통한다. 7월 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매장을 찾았을 때 그는 여기에 정장 느낌의 재킷과 청바지를 믹스 매치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패션)’ 스타일로 나타났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외모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화장품을 전혀 안 발랐는데 이제는 토너, 영양크림을 바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선크림 바르는 건 아직 익숙지 않다. 올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이어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특별 전시회를 하느라 선크림을 안 바른 채로 더운 나라에 계속 있었더니 이렇게 얼굴이 많이 탔다.”

    그는 스마트패드를 열어 앙코르와트에서 펼친 패션쇼를 보여줬다. 캄보디아 정부가 앙코르와트 안에서 패션쇼를 진행하도록 허락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현지 모델들에게 캄보디아와 한국 전통의상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옷을 입혀 두 가지 버전의 패션쇼를 열었다”며 아이처럼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50대 이상 중년 남성이 옷을 멋스럽게 입는 방법을 조언해 줄 수 있나. 

    “일단은 자기 옷장에 어떤 옷이 있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매번 바뀌지만 사람이 저마다 가진 체형과 외모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선 자기 체형에 잘 맞는 기본 스타일을 정해 놓고 유행을 일정 부분 반영하면 된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리듯이 기본 스타일에다 변화를 추구하며 다양한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고, 패션 스타일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찍부터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면서 모험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복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다양한 먹을거리를 즐기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이제부터 옷 입는 것도 즐기길 바란다.”

    그는 ‘패션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소신을 드러낸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딸아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내가 선물로 유명한 브랜드 가방을 하나 사줬다. 그날 아내와 엄청 싸웠다. 나는 그 돈이면 남대문시장에서 가방을 10~20개 사서 그때그때 들고 싶은 걸 마음대로 들게 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상의는 내가 만든 옷이지만 청바지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1만 원에 사서 내 체형에 어울리게 줄인 것이다. 시간 날 때 벼룩시장을 자주 찾는다. 분위기가 앤티크(antic)하고 거기서 본 것들,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건강한 자극과 영감을 얻고 다양한 문화 요소를 접한다.”

    37세 마인드로 사는 디자이너의 건강 수칙

    이상봉 디자이너가 한글을 소재로 디자인한 타이, 컵, 지갑(위부터). 조영철 기자

    이상봉 디자이너가 한글을 소재로 디자인한 타이, 컵, 지갑(위부터). 조영철 기자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스타일링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비결이 뭔가.

     “이동 시간을 최소화해 일에 집중하려고 밥 먹고 잠자러 가는 데 5분 이상 들지 않도록 근처 원룸에서 생활한 지가 30년이 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을 ‘5분 인생’이라고 소개하곤 한다(웃음). 내가 젊어 보인다면 그것은 항상 37세로 살려고 해서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장 큰 한계에 부딪힌 시기가 37세 때다. 내게 정말 재능이 있나,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를 놓고 한 달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너무 뛰어난 천재들과 나를 비교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 자신을 더 작아지게 한 것은 아닌가, 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자, 부족하든 모자라든 나는 나일 뿐이다’ 하는 생각에 다다르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그때 이런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 ‘처음 만든 명함을 끝까지 쓰겠다, 항상 37세의 마음가짐으로 살겠다. 앞만 보고 살면서 부족한 만큼 더 노력하겠다’고 말이다.”

    작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걸로 안다.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다. 원래 허리디스크 협착증이 있어 몽골 출장 때 주사를 3대나 맞고 갔는데 돌아와서 바로 입원했다. 이전에는 미래만 보고 일에만 몰두했다. 내가 나간 인터뷰 기사나 방송 영상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병원에 아파서 누워 있으니 천장을 보면서 나 자신과 대화하게 되더라.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건 아닌지 반성하고,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살면서 한 번도 후회해 본 일이 없지만 ‘다른 선택’을 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다른 선택’을 생각하게 한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세계적 팝스타인 레이디 가가가 내 옷을 좋아해서 몇 시즌 계속 입었다. 첫 독집 뮤직비디오 의상 콘셉트를 나한테 의뢰하면서 내 매장에서 내 쇼핑백을 들고 촬영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해야겠다. 이상봉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김연아 선수의 의상 준비 일정과 겹쳐 결국 고사했다. 그 당시에는 용기가 없었던 것도 있다. 내 매장이 초라해서 촬영하기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촬영 스튜디오처럼 연출해서 찍어도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 미국의 미식축구 스타 하인즈 워드가 내 옷을 좋아해 의상 제작을 의뢰했을 때 너무 바빠서 나 자신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내지 못한 일도 몹시 아쉽다.” 

    옷을 멋지게 소화하려면 몸매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동감하나. 

    “어느 정도 동감한다. 체형은 선천적인 것이면서 후천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이어트만 체형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건강을 위해 자기에게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허리 수술을 받기 전에는 내가 일하면서 많이 움직이고 걷기 때문에 이 자체가 운동이라 여겼는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단 걸 알았다. 이를테면 과식하지 않고, 잘 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몸이 아플 때 잘 자지 못해 수면유도제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결국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건강의 지속 여부가 달렸다. 그러니 스스로 플랜을 잘 짜야 한다.”

    허리 수술 이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이 있나. 

    “아침에 일어나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이때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내 몸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챙겨 먹는 것도 달라진 일상 중 하나다. 약을 먹으려고 아침을 먹다 보니 이게 습관이 됐다. 아내가 준비해 온 사과나 삶은 달걀을 주로 먹는다. 또 하루 7000보 이상은 걸으려고 한다. 이걸 못 채웠을 때는 저녁에 퇴근하면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한다. 취침은 보통 밤 1시나 2시, 기상은 아침 7시나 8시에 한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나서는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중간에 자꾸 깬다. 숙면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최고’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건강기능식품도 챙겨 먹나. 

    “음식만으로는 필수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기 어려워 유산균, 종합비타민, 홍삼, 로열젤리를 먹고 있다. 호르몬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건강보조식품도 먹는다.”

    1%의 가능성에 도전하라 

    신체 건강 못지않게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뭘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내 앞 모습은 매일 들여다보지만 내 뒷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알려고, 관심을 갖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따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한지 적어본다. 그렇게 내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감을 안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만큼, 남의 삶을 잣대로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가족을 위해,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자녀가 장성한 후나 직장을 그만뒀을 때 십중팔구 허탈감,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60세에 퇴임한 후에도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이나 취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포기했던 것들을 새롭게 찾아가는 제2의 인생을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아울러 돈을 많이 벌었든, 못 벌었든 그동안 인생을 보람 있게, 멋있게 살아왔다는 것을 돌아보며 스스로 격려하는 시간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말끝에 그는 “사회적으로 너무 빨리 노인을 만든다”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은 60대 이상 고령화 인구 중에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정말 많다. 청년만 걱정할 게 아니라 인구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60대 이상 고령자를 근로 영역에서 어떻게 흡수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대책 마련이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찾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도망친 일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았기에 내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상연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조영철 기자

    이상봉 디자이너는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도망친 일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았기에 내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상연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조영철 기자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돼준 인생 좌우명이 무엇인가. 

    “계속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어제는 없고 내일만 생각하자’였고, 회사에 30년 넘게 붙어 있는 사훈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난 도전한다’다. 좌우명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계속 성장하게 한 것은 쇼를 할 때든 뭘 할 때든 항상 나 자신을 벼랑 위에 세우는 습관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나는 떨어져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그 한계를 정면 돌파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하며 상처도 받지만 그런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한계를 거듭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대신 지난 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기에 바로 잊고 이제 다시 시작이야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술로 풀 때도 있고 여행으로 해소하기도 한다. 한때 내 꿈이 평생 여행하는 거였다. 옛날에는 ‘60살에 은퇴하고 여행할 거야’ 했는데 아직도 여행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여행하면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서 느껴보는 게 꿈인데 자꾸만 현실이 내 발목을 잡는다. 이럴 때마다 속상하기는 한데 이 또한 내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너무도 간절한 마지막 꿈 

    그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전까지 꿈이 여러 번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는 할머니를 따라간 절에서 주는 절밥에 매료돼 스님이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미술에 뜻을 뒀고, 고등학교 때는 작가가 되고 싶어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연기를 경험하며 자신의 새로운 면을 분출할 수 있는 연극에 매료돼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장이 되고 말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연극배우를 병행할 방법을 찾던 그는 수선집의 벌이가 괜찮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그길로 패션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남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요즘을 살아가는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의 답은 이렇다. 

    “꿈이 바뀌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자신이 갖고자 하는 직업에 반드시 도전하라. 나이에 구애하지 말고 직업으로 삼기가 부담스러우면 취미로라도 시작해 보라.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

    패션디자이너로 일가를 이뤘는데 아직 도전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나. 

    “46년 전 내가 처음 주연을 맡은 연극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도망쳤다. 부친의 사망으로 내 밑에 줄줄이 딸린 여동생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시급했다. 그 연극무대에 서면 도저히 그만둘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도망치는 바람에 그 연극 관계자들이 큰 낭패를 봤다. 그 죄책감과 내 간절한 꿈이던 연극에 대한 미안함과 미련이 아직까지 가슴 한구석에서 끓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 스토리를 모티프로 30일간 30가지 내용을 담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마지막 꿈이다. 그렇게라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극을 포기해야 했던 청년 이상봉에게 보상해 주고 싶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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