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스웨덴의 강점은 오픈 이노베이션, 우리도 협업 생태계 구축해야”

[화합물반도체 기술 연구 선도하는 한국인 학자들] 임장권 RISE WBG 전략기술 연구 책임자·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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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입력2025-10-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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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웨덴에서 17년째 WBG 전력반도체 연구

    • 소재 연구 편중된 한국 vs 협업 생태계 구축된 스웨덴

    • 韓 산업형 인재 양성과 연구 인프라 재편, 가장 시급한 과제

    화합물반도체 연구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술을 개발하는 한국인 학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새로운 기술개발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와 해외에서 모국을 알리며 화합물반도체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웨덴국립연구원(RISE)에서 5년째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임장권 박사. 본인 제공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웨덴국립연구원(RISE)에서 5년째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임장권 박사. 본인 제공

    임장권 박사는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강국인 스웨덴에서 17년째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임 박사는 조선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전기공학과 석사과정 수료 후  LG마이크론에서 근무하던 중 해외 산학과제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자성반도체를 활용한 바이오센서 개발을 진행했다. 그곳에서 해외 유학의 꿈을 갖게 됐고, LG그룹 장학생에 발탁돼 스웨덴왕립공과대에서 전기공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온세미컨덕터 스웨덴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2020년부터 현재까지 스웨덴국립연구원(RISE·Research Institutes of Sweden)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고에너지 밴드갭(WBG·Wide Bandgap) 전략기술 연구 책임자로서 화합물반도체, 특히 탄화규소(SiC), 질화갈륨(GaN) 등 WBG 소재 기반 전력반도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고전압·고효율 전력반도체를 고도화하는 핵심 연구로, 스웨덴에서는 RISE를 중심으로 30년 넘게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산업현장에 활발히 상용화되고 있다. 34개 산하 연구기관이 통합된 RISE는 유럽 3대 응용기술 연구소로 꼽히며 약 3500명의 연구 인력이 모여 실용적 연구, 기술이전, 사업화 등에 집중한다. 

    임 박사는 이곳에서 WBG 소재 전력반도체를 비롯한 스마트 하드웨어 전략을 총괄하는 수석 연구원으로, RISE의 국제 영향력 확대와 한국-스웨덴 간 협력에도 적극 기여하고 있다. 현재 스웨덴에 체류하는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소재 중심 연구에 편중된 한국 vs 협업 생태계 구축된 스웨덴

    RISE 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는 주요 연구 및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재 RISE의 나노일렉트로닉스 연구부서에서 전력전자 측정 연구실장을 맡아 WBG 전략연구를 이끌고, 여러 연구 프로젝트의 매니저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RISE는 약 3500명의 연구 인력과 130여 개의 테스트베드 및 데모 환경을 갖추고 산업, 학계, 공공부문과 협력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스웨덴의 국립 연구기관이다. 나는 특히 탄화규소(SiC)와 질화갈륨(GaN) 기반 전력반도체의 개발, 측정 및 응용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연구는 정부가 추진하는 ‘초혁신경제 선도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어 RISE가 보유한 전력반도체 연구 역량을 활용해 실제 산업에서 응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의 연구 환경과 기술 접근 방식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은 제조업 기반 기술이 탄탄하기에 전력반도체 분야도 수요처 기반의 상업화를 지향하는 연구에 집중하는 편이다. 단기간 내 기술 성숙도를 달성하기 위해 과제 중심의 접근 방식이 일반적이며, 중복 과제에 대한 우려로 기존 과제의 고도화보다는 새로운 제목과 형태의 과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전력반도체는 소재·소자·회로·응용을 아우르는 융합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소재 중심의 연구에 편중돼 있어 투자 대비 성과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빠른 트렌드 적응력과 우수한 젊은 연구 인력이라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 스웨덴의 연구 환경은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다. 제조업, 특히 반도체 장비 및 인프라에 대한 직접 투자는 부족한 편이지만 30년 이상 축적된 SiC 및 GaN 소재·소자 연구 경험이 있다. 특히 스웨덴에는 볼보, ABB(현 히타치 에너지), 알스톰과 같은 세계적 전력전자 기업들이 있어 이들의 수요를 기반으로 WBG 소자에 대한 연구와 협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반도체 기술은 장비 투자 속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스웨덴은 정부 주도의 장비 투자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 기술 성숙도 제고 속도는 한국보다 느린 편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강점은 장기간 축적된 노하우와 오픈 이노베이션 환경에 있다. 기업, 대학, 연구소가 개방적 협력 구조를 바탕으로 연구를 이어가기 때문에 연구 인프라와 협업 생태계 측면에서 큰 장점이라 볼 수 있다.”

    임장권 박사가 재직하고 있는 RISE의 내부 전경. 본인 제공

    임장권 박사가 재직하고 있는 RISE의 내부 전경. 본인 제공

    유럽에서는 화합물반도체의 산업적 중요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화합물반도체 시장은 산업 전반에서 높아지는 전력 수요와 에너지 효율화 요구에 따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런데 수많은 기업과 자본이 유입됐지만, 최근 1~2년 사이 시장은 과잉 공급과 구조 재편이라는 조정기를 겪고 있다. 중국이 막대한 정책 지원과 저가 공세로 시장가격을 끌어내렸고, 그 여파로 글로벌 선도 기업들조차 생산 규모를 축소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미국 울프스피드(Wolfspeed)의 구조조정이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합물반도체의 미래는 여전히 밝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은 EU 차원의 ChipsJU(EU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동사업단), Horizon Europe(EU가 주관하는 7년 과학 연구 계획), Green Deal Mobility 등 장기적 프레임워크를 통해 화합물반도체를 전력망, 철도, 항공, 재생에너지 등 사회 인프라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다. SiC, GaN 기반 소자는 고효율·고전압·고온 환경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신재생에너지, 산업 전자 분야에서 필수적이다. ” 

    가장 시급한 과제, 산업형 인재 양성과 연구 인프라 재편

    우리나라가 화합물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산업형 인재 양성과 연구 인프라 재편이라고 생각하다. 산업현장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교수진이나 과제 기획자로 적극 영입해, 산학협력 중심의 전임으로 연구 인프라에 직접 참여해 산업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전력반도체 분야는 글로벌 기업과 직접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기술적 전문성뿐 아니라 국제적 소통 능력, 특히 영어 역량이 필수적이다. 연구·교육 구조의 재편을 통한 산업 친화적 인재 양성,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교육 및 연구 환경, 장기적 비전과 평가 체계의 정립이 필요하다.”

    연구와 산업화를 연결하는 데 따른 우리나라의 구조적 한계나 개선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연구 과제가 ‘3년 내 상업화’라는 비현실적 목표를 전제로 하는 것이 문제다. 어떤 기술도 3년 만에 완전히 성숙시켜 상업화하기 어렵다. 초기–진입–성숙 단계로 이어지는 장기적이고 단계적 기술 성숙 모델을 도입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속적 상업화가 가능해져야 한다. 또한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공공 팹(Fab)의 비즈니스 모델 역시 재편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정부가 장비를 공공 팹에 채워 넣고 공간을 단순히 임대하는 방식보다는, 기업이 직접 장비를 활용하고 타 기관과 공유해 수익을 창출하는 운영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공공 팹 안에 연구실을 개방하고 인프라를 공유하는 상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과제 관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연구과제별로 경쟁을 시켜 프로젝트를 맡기는 방식을 폐지하고 국가 로드맵 아래에서 각 기관이 협력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RISE 내 연구실 모습. 본인 제공

    RISE 내 연구실 모습. 본인 제공

    산·학·연 협력 통한 개방적 연구 생태계 배워야

    RISE의 사례에서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산·학·연 협력을 통한 개방적 연구 생태계와 지속 가능한 테스트베드 운영 방식이다. RISE는 국가적·산업적 관점에서 연구 인프라를 개방하고, 기업·대학·연구소가 동일한 공간에서 공동으로 실험과 개발을 수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첨단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연구기관은 산업적 요구를 반영해 기술을 성숙시킬 수 있다. 또한 RISE의 테스트베드는 산업 수요를 기반으로 설계돼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실험 환경을 제공한다. 운영도 국가 예산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 기업 파트너십, EU 펀딩 등 다각적 재원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각 지역에 분산된 공공 팹과 연구 인프라를 ‘임대 공간’이나 ‘장비 보관소’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RISE처럼 기업과 연구자가 만나 협력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며 상생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한국 출신 연구자로서 우리나라의 화합물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가 화합물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의 경쟁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시·도별로 중복 투자를 이어가는 방식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효율적 연구 인프라 공유와 전략적 자원 배분으로 중복 투자를 줄이고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화합물반도체 기술을 국가 핵심 전략물자로 인식하고 경쟁보다는 상생, 개별 성과보다는 국가적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중요하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韓 화합물반도체 기술개발, 지금이 두 번째 기회 잡을 전환점”

    “이종집적 필수인 시대, 각 기술 장점만 취해 최고 성능 추구”

    넓은 밴드갭·우수한 특성으로 떠오르는 화합물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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