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민간 주도 전주기 백신 개발 플랫폼 구축
또 다른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나서
정부-모더나-아카데미아-바이오기업 협력 속도
정희진 고려대의료원 ‘백신혁신센터’ 센터장. 고려대의료원
오늘날 백신은 단순한 예방 수단을 넘어 인류의 생명과 사회를 지키는 필수 무기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비해 각 나라와 연구기관, 병원 등은 백신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백신은 다가올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의 위협을 최전선에서 막는 미래 전략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을식)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한 사전 대비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속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 국내 첫 민간 주도 전주기 백신 개발 플랫폼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백신혁신센터’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백신 주권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긴축재정에 나선 다른 대학병원과 달리 고려대의료원은 과감하게 백신혁신센터를 구축했고, 국내 전주기 백신 개발과 백신 주권 확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6월 16일 개관한 고려대학교 메디사이언스파크 ‘정몽구 미래의학관’ 전경. 고려대의료원
감염병 연구 핵심 인력 모두 투입해 백신 개발 나서
백신혁신센터는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 개발을 통해 다음 감염병에 대비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정희진(60)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를 수장으로 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연구지원부, 기초·비임상연구를 추진하는 혁신연구부, 임상시험 연구를 맡은 개발추진부를 비롯해 면역연구부, 임상시험검체분석실운영부로 진용을 짜고 고려대의 감염병 연구 핵심 인력을 모두 투입해 백신 개발을 위한 최적의 구성을 갖췄다.백신혁신센터에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유형의 신종 병원체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유전체 분석, 세포배양, 면역 화학 분석, 단일세포전사체 분석 등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장비가 갖춰져 있다. 고려대의료원
백신혁신센터는 가까운 미래에 지금보다 한층 고도화된 백신 플랫폼을 마련해 팬데믹 발생 시 신속한 백신 개발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진은 연구자들 모습. 고려대의료원
신종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선 연구실 내부 시설도 그에 걸맞게 최첨단 장비를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연구 환경이 조성되는지 궁금하다.
“연구실에는 위험한 신종 병원체를 안전하게 다루고, 백신을 연구할 수 있는 대규모 생물안전 3등급(Biosafety Level 3·BL3/Animal Biosafety Level 3·ABL3) 시설이 구축됐다. 또한 연구자들이 다양한 유형의 신종 병원체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유전체 분석, 세포배양, 면역 화학 분석 및 단일세포전사체 분석 등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최첨단 장비를 갖춘 거대한 규모의 중앙실험실, 면역연구실, 임상시험검체분석실을 구축했다. 특히 IVIS(In Vivo Imaging System) 광학영상시스템, 이미징 기반 초고속 세포 분석 장비, G3 로봇 워크스테이션 등 고가의 첨단 장비도 들여와 연구자들이 연구 개발하기에 최상의 환경이 조성된다.”
이외에도 연구실 조성에 신경을 쓴 부분이 있는가.
“백신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임상시험검체 분석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임상시험검체 분석에 대한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아야 하는 GCLP(Good Clinical Laboratory Practice·임상시험검체분석 관리기준) 시설을 구축해 정부의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해당 시설은 전처리, 검체 분석 및 실험, 자료 보관 등 최상의 실험 장비를 도입해 교차 오염을 방지할 수 있도록 분리 독립된 실험실로 구축됐다. 고려대의료원은 대학 연구기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생물안전 3등급(BL3/ABL3)을 보유하고, GCLP 인증 이후 백신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임상시험검체 분석 기능도 갖게 된다. 고위험 신종 병원체의 백신 연구개발 전주기 과정을 모두 실행할 수 있는 독보적 역량을 갖춘 연구기관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8개 대학병원 HIMM 네트워크 통해 병원체 뱅크 구축
고려대의료원 산하의 대학병원들과 협업도 이뤄지는가.“백신혁신센터는 여러 기관 간의 협업을 통한 유기적인 백신 개발 플랫폼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안암·구로·안산병원을 포함해 전국 8개 대학병원이 함께하는 HIMM(Hospital Infection Morbidity Mortality) 네트워크가 그 결과물이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 검체를 확보하고 검체로부터 병원체를 분리해 일종의 ‘뱅크’를 구축하게 된다. 이후 병원체의 유전체 분석, 변이주 분석이 이뤄진다. 또한 백신혁신센터는 백신항원디자인, 항원효능평가와 전임상시험 등 기초연구, 백신개발을 위한 임상시험까지 수행이 가능하다.
백신 연구를 위해 병원체 뱅크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백신혁신센터는 2025년 3월까지 HIMM을 통해 확보된 호흡기 검체 472건에서 35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103건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를 확보해 유전체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변이 정도와 백신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백신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도 중요한데, 어떻게 진행되는가.
“확보된 백신 후보 물질이 실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백신으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이 필수적이다. 고려대의료원 백신혁신센터는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인플루엔자 백신 및 국산 신종인플루엔자 백신, 스카이코비원 승인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다양한 임상 연구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임상시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백신혁신센터 개관 기념식. 고려대의료원
“지난해 7월 모더나 최고의학책임자(CMO)인 프란체스카 세디아가 고려대 의대를 방문해 초대 백신혁신센터장을 맡았던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를 만났다. 바로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사업인 ‘H 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서다. 가장 혁신적 백신 개발 플랫폼인 mRNA기술을 보유한 모더나와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수의 연구 유산을 이어받은 고려대 의대 연구진이 힘을 합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소동물을 대상으로 비임상 효능시험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결과가 긍정적이다. 2028년 임상 1상 진행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앞서 이호왕 박사가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언급한 한타바이러스란 어떤 바이러스인가.
“한타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앞으로 인류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감염병, 즉 ‘질병 X(Disease X)’로 선정한 공중보건학적 우선순위가 높은 바이러스다. 한타바이러스는 감염된 등줄쥐 등의 배설물을 통해 사람의 호흡기로 전파돼 신증후군출혈열(HFRS)과 같은 치명적 감염질환을 일으키며,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400명 정도의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 감염증은 발열·근육통·기침·구토·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급성 신부전이나 폐부전으로 이어지는 등 중증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치명률이 5~15%로 높다. 그러나 현재까지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어 혈액 투석 등 보존적 치료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H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mRNA 기반 한타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돼 상용화된다면 국민 건강뿐 아니라 글로벌 감염병 위기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도화한 백신 플랫폼으로 팬데믹 신속 대응 목표
모더나 이외에 국내 바이오기업과 협력도 진행하고 있는가.“물론 국내 바이오기업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2022년 SK바이오사이언스와 손을 잡고 신종·변종 감염병에 대한 감시, 임상 네트워크 구축 및 병원체의 유전체 DB 구축 및 특성 분석 등 3년간 50억 원 규모의 사업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바이러스 벡터 기반 항원 발현 연구, 국내 기술 기반의 mRNA 백신 플랫폼 개발을 위한 원천기술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고려대의료원은 가까운 미래에 지금보다 한층 고도화한 백신 플랫폼을 마련해 팬데믹 발생 시 신속한 백신 개발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백신 개발을 위한 인재 양성도 꼭 필요한 일일 듯한데, 백신혁신센터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재 양성을 통한 국내 백신 R&D 생태계 확대도 꿈꾸고 있다. 백신혁신센터 설립 이래 매년 운영하고 있는 ‘백신 전문가 양성가 교육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지난 3년간 약 850명의 대학, 연구기관은 물론 정부기관과 기업체 관계자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또 국제 심포지엄과 세미나도 활발히 주도하고 있다. 국내외 유수 기관과 학술 협력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논의가 더 발전적으로 이뤄질 걸로 기대한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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