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불볕더위, ‘이중 고기압’ 때문
8월 연이은 비 소식으로 고기압 물러나나
태양고도, 수증기 등 8월 말까지 더위 이어져
11월까지 더웠던 지난해, 올해도 비슷할 듯
태국 방콕 등지에서 10여 년간 살다가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직장인 박모(34) 씨의 말이다. 박 씨는 “20대 초반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여름이 이렇게 덥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덥다”고 덧붙였다.
올해 7월 더위는 이례적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전국 평균기온은 27.1도로 역대 두 번째로 높다. 가장 높았던 해는 1994년(27.7℃)이다. 최근 가장 더웠던 해인 2018년(25.5℃)에 비해서는 올해가 더 덥다.
7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폭염 대비책으로 양산을 쓴 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DB
더위는 밤낮없이 찾아왔다. 열대야 일수는 6.7일에 달했다. 이는 전체 여름 평균(4.8일)보다 3.9일 많은 기록이다. 특히 서울은 열대야 일수가 23일로 기상관측이 처음 이뤄진 1908년 이후 117년 만에 열대야가 가장 많았던 달로 기록됐다. 기존 최다 기록은 1994년의 21일이었다.
8월에 들어 비 소식이 들려오자 일각에서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상학자 등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8월도 여전히 더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8월에도 ‘불볕더위’ 지속 가능성 높아
7월의 이례적 더위는 고기압의 영향 때문이었다. 7월 초 한반도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을 받았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빠르게 확장해 한반도 전역을 덮었다. 7월 초 전국 평균기온도 28.2℃로 평년보다 4.8℃ 높아 역대 최고 1위를 경신했다. 7월 8일에는 경기도 의왕, 광명 등 일부 지역에서 낮 최고기온이 40℃ 이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같은 날 한국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의 기온이 34℃로 서울과 같았다.대구 출신으로 경기도 의왕에 살고 있는 직장인 양모(31‧여) 씨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도 다 옛말”이라며 “7월 초에는 고향 대구의 더위가 그리워질 정도로 (의왕이) 더웠다”라고 말했다.
8월 5일 서울시 노원구 당현천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더위에 지쳐 누워있다. 동아DB
7월 말에는 북태평양고기압뿐 아니라 티베트고기압 영향까지 더해졌다. 대기 상층에는 고온 건조한 티베트고기압이, 대기 중하층에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이중 이불’처럼 한반도 전역을 덮었다. 더운 공기는 빠져나가지 못한 채 머물렀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전역이 폭염에 휩싸였다.
8월 더위 해방설은 비와 함께 시작됐다. 비가 오면 주변부의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7월의 불볕더위가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의 영향인 만큼 비가 왔으니 두 고기압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생각은 달랐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비가 왔으니 상대적으로 7월에 비해 고기압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더위가 물러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며 “8월은 태양의 고도, 기압 및 해류의 영향 등으로 매해 가장 더운 달이라 앞으로도 더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기상청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7월 23일 발표된 기상청의 ‘3개월 전망’에 따르면, 8월 한 달 동안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가능성은 50%, 비슷할 가능성은 30%, 낮을 가능성은 20%였다. 8월 첫째 주와 둘째 주는 평년에 비해 기온이 비슷하거나 높을 가능성이 80%였고, 셋째 주와 넷째 주는 평년에 비해 기온이 비슷하거나 높을 가능성이 90%였다.
입추 지나도 폭염특보 이어져
임윤진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장은 “비 소식이 연달아 있어 티베트고기압의 영향력이 일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고기압이 완전히 밀려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비가 계속 온다면) 8월 14일까지는 전달에 비해 덜 더울 가능성이 있지만, 그 뒤로는 (티베트) 고기압이 다시 확장할 가능성도 있어 아직은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예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고기압이 다시 확장된다면 처서(8월 23일)에도 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임 팀장은 또 “흔히들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 매직’이라는 현상이 있다”며 “7월 더위보다는 못 하겠으나 여전히 대기 중에 수증기가 지속해서 공급되는 상황이라 한여름 더위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고 부연했다.
폭염특보 속 피서 절정기를 맞은 8월 3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8월 6일 하루는 전국적으로 비가 오며 더위가 힘을 잃는 듯 보였으나 입추인 8월 7일을 기점으로 비가 그치자 다시 기온이 오르고 있다. 기상청은 “다시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나들 것”이라며 8월 8일 폭염특보를 발령했다. 폭염특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경우 발령한다.
불볕더위가 9월을 넘어서도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교수는 “지구 온난화 등으로 매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이 길어진다”며 “지난해 11월 중순 22℃가량의 이상 고온 현상이 관측될 정도로 여름이 길었던 만큼 올해 여름도 꽤 길게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팀장도 “더위가 특히 기승을 부리는 해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해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여름 기온이 해가 갈수록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내년 여름이 올해보다 덥지 않을 수는 있지만 매년 조금씩 여름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 예측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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