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SNS 파고드는 ‘온라인 망신 주기’ 추심 수법
30만 원씩 소액 대출 유도하는 대출의 늪
“대출 전 SNS 흔적 지워라” 업자가 조심하는 건 노출
채권자 명의 계좌로 입금 안 하면 분쟁 시 불리
SNS에 올라온 사금융 대출 홍보 게시물.
올해 초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취업한 A씨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생활비가 부족해 미등록 비대면 대부업체에서 100만 원을 빌리면서, 열흘마다 10만 원의 이자를 내기로 한 약속을 20일 넘게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다. 대부업자는 전화로 온갖 욕설을 퍼붓고 “인스타그램에 네가 빚진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기자에게 “눈앞이 캄캄했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털어놨다.
불법추심 4년 새 91% 급증
대부업체의 불법 채권 추심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추심으로 인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2024년 1만5397건으로, 2020년 8043건 대비 91% 증가했다.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온라인 불법추심’ 게시물.
실제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는 채무자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2025년 ◌월 ◌일, 나 ◌◌◌은 ◌◌만 원을 빌렸습니다. 지금 갚을 여력이 없으니 대신 갚아주시면 꼭 갚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들 영상에는 채무자의 이름, 생년, 거주 지역 등 개인정보도 담겨 있다. A씨는 “돈을 빌릴 때 처음부터 얼굴 사진, 동영상, 휴대전화 번호, SNS 계정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고 말했다. “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다급한 처지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자가 7월 7~8일 SNS에 홍보 게시물을 게시한 업자들과 접촉해 비대면 대출 금액과 이율, 담보, 차용증 작성 방법 등을 문의해 봤다. 기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급전 문의, 30분 이내 빠른 승인 가능’이라는 광고를 내건 한 비대면 대부업체 업자와 연결됐다. 기자가 “대출 계약 이후 온라인상에서 불법추심이 이뤄지느냐”고 묻자, 업자는 “상환 잘하고 잠수만 타지 않으면 추심은 없다”고 답했다.
“차용증 들고 찍은 셀카 보내야 대출 가능”
“대출을 받기 전 얼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차용증을 들고 셀카를 찍어야 한다.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연락만 잘되면 사진을 온라인에 퍼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 없이도 대출이 가능하냐”는 추가 질문에는 “본인 확인용이라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현행법상 대부업체가 채무 사실을 가족이나 지인 등 제3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알리는 행위는 불법이다. 금융감독원은 SNS를 통한 이러한 행위 역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채권추심법)’ 제12조 2항 및 5항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기자가 미등록 비대면 대부업체 업자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
SNS를 이용한 빚 독촉이 늘어나자 최근 불법 채권 추심 피해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공간도 생겼다. 260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불법 사채 불법추심 사건 해결 소통방’에는 “‘인스타 불법추심’ 게시물을 신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법추심 게시물을 올리는 계정도 신고 대상인가요?” 같은 글이 이어지고 있다.
또 7700명의 이용자가 모인 네이버 카페 ‘불법 사채 피해 사실 공유카페’에 ‘SNS 불법추심’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관련 게시물이 150건 검색됐다.
20대 여성 B씨는 미등록 비대면 대부업체에 급하게 60만 원을 빌렸다가 기한 내 갚지 못해 며칠 만에 대부금이 287만 원으로 불어났다.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하는 한 미등록 대부업체 조직원은 B씨에게 대부금 전액을 빌려주는 대가로 나체 상태로 무릎 꿇고 손을 든 사진을 전송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B씨는 대부금을 갚기 위해 다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여성에게는 “몸을 팔아서라도 상환하라”며 성매매를 알선하고, 남성에게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 사금융 추심 사건을 수사한 한 수사관은 “한 대부업체는 여성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자 불법 안마시술소로 넘겼다”며 “채무를 갚지 않으면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게 만들겠다며 수차례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이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고, 해당 조직원들은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추가 대출, 성 착취, 보이스피싱 등 연쇄 피해 심각
이 밖에도 채무자가 거래한 대부업체가 아닌 또 다른 업체에서 “대출 채권을 양도받았으니 즉시 변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수사관은 “차후 이자나 원금이 연체되면 자동차나 주택 등 재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공정증서나 신체 포기 각서를 작성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일선 수사관들에 따르면 현재 성행하는 대부분의 미등록 대부업체는 비대면 방식을 택한다.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하며 과거 10명이던 조직원 수도 현재는 5명 이내로 줄었다. 그러나 영향력은 되레 커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 불법 사금융 사건을 수사한 한 수사관은 “비대면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조직원 수도 줄고 운영 방식도 더 은밀해졌다”며 “두세 명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남 창원시에서 성업하는 C 대부업체가 그 예다. 이 업체는 ‘넘버’로 불리는 총책 C와 ‘계장’ ‘주임’이라 불리는 조직원 D와 E로 구성됐다. 철저한 위계 구조 속에서 D와 E는 명함 배포, 전단지 부착, 고객 면담, 채권추심 등을 담당한다. 대포 유심을 쓰거나 현금만 받는 일수 방식으로 수사 당국의 단속을 피해 간다. 넘버는 신입 조직원에게 “SNS에 대부업체 운영 사실을 밝히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넘버가 강조하는 조직 철칙은 크게 세 가지다. ①수금폰은 무음으로 두지 말 것, ②새벽이든 밤이든 가입자(채무자) 전화는 무조건 받을 것, ③수금 시간엔 위치 확인 앱을 실행할 것. 조직원들은 넘버의 지시에 따라 월급을 받고 광고, 수금 등을 수행하며 수금이 안 될 경우 강압적 추심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 수사관들이 예의 주시하는 건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한 불법 사금융 업자 간 채무자 개인정보 거래다. 실제로 일부 대부업체는 채무자가 상환하지 못하면 개인정보를 다른 업자에게 넘기며 추가 대출을 유도한다.
2023년 9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1형사부는 고리 대출금을 갚지 못한 남녀 3명의 나체 사진과 개인정보를 다른 미등록 비대면 대부업체에 넘긴 일당 3명에게 각각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여성 채무자에게는 나체 사진을, 남성 채무자에겐 자위 장면을 담은 사진을 전송받았다. 이후 이들 사진 옆에 ‘사기 사건 피고인 수배’라는 문구를 넣은 ‘수배지 데이터베이스(DB)’ 파일을 만들어 또 다른 대부업체 조직원들과 공유했다.
이들은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을 경우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여러 업체가 돌아가며 소액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빚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30만 원 미만의 소액 대출을 반복시켜 기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채 더 많은 빚을 지게 하는 수법이다.
정부는 2022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전담팀을 꾸려 불법 사금융의 폐해를 줄이고 불법 채권추심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개별 법률에 흩어져 있던 불법추심 관련 규정을 채권추심법으로 통합 정비했다. 해당 법은 △폭행 및 협박 금지, △개인정보 누설 금지, △허위 표시 및 불공정행위 금지 등을 명시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부업체는 여전히 이 같은 불법추심 행위를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채무 사실 알리면 녹취 증거 확보 후 신고
그렇다면 피해자는 대부업체의 불법추심 행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업자가 SNS나 문자로 채무 사실을 가족, 지인 등 제3자에게 알리거나 채무자의 소재 파악이 가능한데도 주변인에게 연락처 등을 묻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이럴 경우 대화 녹취 등 증거를 확보한 후 지방자치단체나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특히 제3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렸다면 지인의 도움을 받아 고지 일자와 내용을 기록한 진술서를 첨부하는 것이 좋다.결혼식, 장례식 등 채무자가 정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틈타 채권추심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 역시 신고가 가능하다. 또한 ‘왕 사장’ ‘이 실장’ 등 모호한 명칭을 사용하는 업자가 있다면 정당한 채권자인지, 채권 내용이 정확한지, 추심이 제한된 채권은 아닌지 신분 확인을 요구할 수 있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 개인회생 중인 채권, 법원에서 면책받은 채권은 추심이 제한된다.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채권 추심 업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증질환 등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도 추심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불법추심 피해를 본 경우, 증거를 철저히 수집하고 변제 시에는 채권자 명의 계좌로 입금하며, ‘채무변제확인서’를 받아 보관하는 것이 향후 분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소액이라도 관련 서류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