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 선구자 日 가토 박사 찾아간 사연
23년간 IVF 3만 건 이상, 난소과자극증후군 사례 거의 없어
한국인에 맞는 난자채취용 바늘과 시술
퀄리티 좋은 난자, 수정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키워
법과 원칙에 맞게 기본 지키고 본질에 충실해야
이경호 울산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은 “난임 전문의로서 퀄리티 좋은 난자를 꼭 필요한 만큼만 키워서 최선을 다해 체외수정을 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가토 박사가 한 달에 난자를 얼마나 채취하는지 아세요? 많게는 2000케이스에 달합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을 대상으로 난자 채취 시술을 하는 날도 있고요. 1인당 난자를 5개씩만 채취해도 500개, 10개씩이면 1000개 이상이죠. 이는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그가 하루 100케이스 이상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 있다고 보도할 정도로 대단한 일입니다. 일본 난임학회에서 강의를 들은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그날 저녁 가토 박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가봤는데, 규모가 작았어요. 거기서 어떻게 하루 100케이스 이상 난자 채취가 가능한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가토 박사에게 e메일을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자를, 자극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채취하는 가토 박사에게 정식으로 배움을 청한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20게이지 난자채취용 바늘의 힘
가토 박사에게 보낸 메일에 어떤 내용이 담겼나.“‘단 이틀이라도 내가 가토여성병원에 가서 옵저베이션(observation·관찰)을 하면 안 되겠냐. 이틀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너무 배울 게 많을 것 같아서 가토 박사에게 통사정을 한 거다. 그토록 작은 병원이 도대체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기에 하루에 1000개 이상 난자를 그렇게 빨리 채취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잠이 안 오더라.”
(가토여성병원에) 막상 가보니 어땠나.
“‘옵저베이션’을 해보니 기가 막혔다. 완전 신세계였다. 국소마취도 없이 그냥 채취하는데, 금방 끝날 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그 비결이 뭔가.
“채취 방법, 더 정확히는 난자채취용 바늘(OPU Needle)에 비밀이 있었다.”
난자채취용 바늘은 표준 규격이 있지 않나.
“주삿바늘 두께를 나타내는 단위가 게이지(G)다. 게이지가 높을수록 바늘 두께가 얇다. 난자채취용 바늘은 대개 스테인리스 17게이지(직경 1.47mm)를 쓰는데 가토 박사는 20G(직경 0.91mm)짜리를 쓴다.”
바늘이 가늘면 휘어져서 난자를 채취하기가 어렵지 않나.
“어려울 줄 알았는데, 가토 박사가 쓰는 바늘은 그렇지 않았다. 바늘이 얇고 가늘면 낭창낭창하게 휘거나 부러질 수 있는데,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을 만큼 적당한 강도를 갖춰 놀랐다. 일반적으로 쓰는 17게이지 바늘은 두꺼워서 안 휘어져 뽑기 쉽다. 20게이지 바늘은 낭창낭창해서 (난자를) 뽑기 어려울 텐데도 그 바늘로 놀라울 만큼 빠르게 채취하더라. 수면마취는 물론 국소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환자가 들어와서 누워 난자를 채취하고 나가기까지 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한 달에 2000케이스의 난자 채취를 할 수 있는 거다.”
가토 박사가 사용하는 난자채취용 바늘은 일본 시즈오카 후지에 본사를 둔 기타자토 코퍼레이션(Kitazato Corporation)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회사는 보조생식을 위한 생명공학 의료기기의 연구·개발·제조·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데, 난자채취용 바늘과 배아이식용 카테터(catheter) 등을 개발·판매한다. 가토 박사가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에 쓰는 바늘 개발에 일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소마취조차 안 한다는 게 신기하다. 20게이지 바늘로 채취하면 통증이나 출혈이 덜한가.
“그렇더라. 통증이 훨씬 적고, 피도 거의 나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후배 의사에게 20게이지 난자채취용 바늘을 일본에서 주문해 보자고 했다. 그 뒤로는 지금까지 계속 20게이지 바늘을 쓰고 있는데, 가토여성병원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제품이다.”
다른 난임병원에서는 왜 20게이지 바늘을 사용하지 않나.
“예전에 메이저 병원 의사한테 써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몇 번 써보더니 귀찮고 까다롭다며 사용하지 않더라. 채취해야 하는 난자 수도, 환자도 많은데 손에 익지 않은 채 사용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20게이지 바늘을 계속 쓰면서 어떤 변화를 경험했나.
“바늘 두께가 얇으니까 찔러도 구멍이 작아서 피가 많이 안 난다. 대신 구멍이 작으니 채취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굵은 파이프를 꽂으면 물이 쫙 빠져나오지만, 가는 파이프는 아무래도 흐름이 느리다. 바늘이 난소 주위 혈관이나 복막 혈관을 건드리면 출혈이 생기고, 심하면 복강에 피가 고이는데, 이를 헤모페리토니움(hemoperitoneum·혈복강)이라고 한다. 난자를 채취하면 헤모페리토니움으로 복강에 피가 차서 아플 수 있다. 난자 채취를 위해 바늘로 난소를 찌르는 이상 혈복강은 어느 정도 생길 수밖에 없는데, 20게이지 바늘을 쓰면 확실히 덜 생기더라.”
동양 여성의 신체 특성상 세심한 주의 필요
17게이지 바늘이 어떻게 세계 표준이 된 건가.“IVF는 영국에서 시작됐다. 1980~90년대에 서구에서 체외수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평균 신장이 크고 체중이 나가며 골반이 넓은 서구 여성 체형에 맞춰 17게이지 바늘을 만든 거 같다. 반면에 가토 박사는 일본 여성의 평균 체형을 고려해 더 가는 20게이지 바늘을 썼을 거다. 일본 여성은 동양 표준보다 체구가 더 작고, 질·난소 간 거리가 짧고, 난소 크기도 작다.”
이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서구 여성은 골반 입구(약 11.5~12.5cm)가 비교적 넓고, 골반 깊이도 얕아 질에서 난소까지 길이와 각도가 곧은 편이다. 자궁이 앞으로 기울어진 경우가 많고, 난소도 골반 안쪽·아래쪽에 있어 초음파와 바늘을 거의 직선으로 넣을 수 있다. 질 길이도 평균 9~10cm로 여유가 있어 굵은 바늘을 써도 시야와 각도가 잘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17게이지(직경 약 1.47mm) 바늘이 ‘표준 규격’이 됐다.
반면, 동양 여성은 서양 여성에 비해 골반 입구(약 10.0~11.0cm)가 조금 더 좁고, 골반이 깊어 난소까지 경로가 더 복잡하다. 자궁이 뒤로 젖혀진 경우가 많아 경로가 구부러지고, 난소가 위쪽·옆쪽에 있어 바늘 각도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질 길이도 평균 7~8cm로 짧아 조작 공간이 적고, 난소 크기도 서구 여성보다 작다. 이러한 이유로 굵은 바늘을 쓰면 출혈이나 통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 원장은 “그래서 가토 박사가 동양 여성의 평균보다 체구가 더 작은 일본 여성을 위해 얇은 18~20게이지 바늘을 특별 제작해 사용한 것 같다”면서 “난자채취용 바늘이 17G보다 가늘면 통증과 출혈은 줄일 수 있지만, 채취 속도가 느려져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호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이 난자를 채취할 때 사용하는 바늘.
“한 사이클에 난자를 너무 많이 키우면 환자도 힘들고 의사도 힘들다. 최소한의 개수만 키우려고 과배란 주사도 적게 쓴다. 난자를 키워내는 과배란 주사 용량은 난소 상태(항뮬러관호르몬 AMH, 동난포계수 AFC), 나이, 체질량, 과거 반응 이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처럼 난자를 수정에 필요한 만큼만 키우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과배란 주사를 얼마나 적게 쓰는지 구체적으로 비교해 달라.
“난소 정상 반응군에는 1일 주사 용량을 150~225IU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초음파로 난포 성장을 지켜보면서 25~75IU씩 용량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에 나는 150IU보다 적은 112IU로 시작한다. 112IU로도 잘 자라면 75IU로 더 줄이기도 한다. 반대로 112IU에서 반응이 부족하면 배란유도제(클로미펜)를 같이 쓰기도 하고, 1일 주사 용량을 150IU로 늘리는 식으로 세심하게 조절한다.”(IU는 비타민, 호르몬, 약물 등 인체에 효력을 발생시키는 물질의 ‘효능’을 나타내는 단위다.)
난자를 보통 몇 개 키우나.
“10개 이하로 최소한만 키운다. 난자가 수십 개 자란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다낭성난소증후군(PCOS·Polycystic Ovary Syndrome) 환자들을 보면 한 번에 40~50개씩 자라는데, 막상 써보면 쓸 만한 건 거의 없다. 안 크던 난자까지 억지로 키우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딱 쓸 만큼만 키운다.”
난소기능저하 여성에게 권하는 저자극요법(과배란 주사+배란유도제) IVF를 일반 여성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난자가 잘 자랄지를 어떻게 예측하나.
“초음파로 감을 잡는다. 경험을 토대로 한 감각이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서 (난소를) 보면 크겠다 안 크겠다는 감이 온다. 난자가 잘 안 자라겠다 싶으면 2~3일마다 체크하면서 과배란 주사용량을 조금씩 늘린다. 필요하면 배란유도제도 같이 쓴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심하면 처음부터 과배란 주사를 안 쓰고 배란유도제로 시작하기도 한다.”
의사도, 병원도 진짜 맛집 같아야
진취적 도전보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주의인가.“그렇다고 새로운 기술을 배척하진 않는다. 끊임없이 공부하지만 과도한 건 경계하는 편이다. PGT(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IVF 과정에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기 전에 유전적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 기술도 10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해봤지만, 요즘처럼 모두가 PGT에 매달리는 건 좀 반대다. 세 번 이상 유산이 반복된 습관성 유산 여성이라면 권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권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배아를 이식받자는 취지는 좋지만, 정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아들이 버려지는 것 같아 양심상 쉽지 않더라. 수정 3일째나 5일째에 비정상적으로 보여도, 착상 후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배아도 많다.”
이 원장은 “부모 자식의 만남이 인연이듯, 배아도 인연”이라며 “함부로 배아를 선택하는 신기술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최소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본질에 충실하는 이 원장의 진료 철학은 가토 박사의 난임 치료 원칙인 “최소한의 자극, 자연에 가까운 방식, 안정성과 질에 집중하는 접근”과 궤를 같이한다.
난임 의사로서 철칙처럼 지키는 특별한 원칙이나 소신이 있나.
“난임 의사로서 핵심에 집중하자는 주의다. 환자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직자 같은 마음으로 본질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IVF는 생명이 탄생하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일이니, OHSS 없이 퀄리티 좋은 난자를 꼭 필요한 만큼만 키워서 최선을 다해 체외수정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병원 수익을 위해 눈앞의 돈을 마다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게 돈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의사의 치료와 진료가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이 돼서는 안 되기에, 법과 원칙에 맞게 기본에 충실한 진료를 하려고 한다. 핵심에 집중하면 손끝이 더 예민해지고 임신율이 좋아진다. 진짜 맛집은 조미료를 안 쓰고 자신만의 비법을 갖고 있지 않나. 보통 음식점은 조미료를 많이 쓰기에 뒷맛이 안 좋고, 먹을 땐 맛있어도 금방 물린다. 의사도, 병원도 진짜 맛집 같아야 한다고 본다. 저출산 시대에 우리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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