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향은 이념이 아닌 본능의 산물
미국·유럽에서도 젊은 남성 보수화 경향
위험 인식하고 질서 중시하는 ‘생존 본능’
세상은 경쟁의 장…지위 확보 중시하는 ‘번식 본능’
본능은 바꾸기 어렵지만 환경은 개선 가능
안정된 일자리와 교육 경쟁 완화 절실
생존·번식 본능으로 보수와 진보의 뿌리를 설명하는 최정균 KAIST 교수. 과학과 사회를 잇는 시선으로 한국 정치 담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호영 기자
경쟁, 지위 욕구 강한 연령대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
한국에서는 젊은 남성 보수화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2022년 3월 9일 방송 3사(KBS·MBC·SBS)가 발표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구조사에서 만 18~29세 남성의 약 58.7%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반면, 같은 연령대 여성의 약 58.0%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젊은 층의 뚜렷한 성별 지지율 차이는 청년층 보수화 논의의 중요한 현실적 근거가 된다.한국에서 젊은 남성 보수화가 주목받는 배경엔 취업난과 주거불안, 군 복무 의무 등 구조적 요인과 함께 젠더갈등이 정치 의제로 떠오른 최근 몇 년간의 사회 변화가 자리한다.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청년층 경쟁 압박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부 남성 청년층은 여성 우대 정책을 역차별로 인식하며 정치적으로 보수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젊은 남성 보수화는 단순한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세대 갈등, 젠더 이슈가 얽힌 복합적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젊은 남성층의 보수화 경향은 뚜렷하다. 유럽정치연구컨소시엄(ECPR)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18~29세 남성 중 약 21%가 극우 정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같은 연령대 여성의 지지율은 약 14%에 불과했다. 미국 글로벌 리서치 기관 글로컬리티스(Glocalities)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20개국에서 30만 건 이상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8~34세 미국 남성(2242명)이 지난 10년간 ‘자유보다 통제(control)’를 더 선호하며 다른 연령·성별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가치관으로 기운 유일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특정 국가나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경쟁과 지위 확보 욕구가 가장 강한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9월 중순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원을 찾았다. 선거 데이터나 여론조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뇌과학·진화심리학적 관점을 통해 보수와 진보를 다시 읽어보자는 취지였다.
정치적 양극화의 뿌리, 진화적 본능
최 교수는 2004년 KAIST 생명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2009년부터 KAIST 공과대학 바이오·뇌공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 유전체학(Genomics)을 기반으로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을 규명하고, 진화생물학·유전학·뇌과학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사회적 행동, 가치관까지도 유전자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한다.이 문제의식은 지난해 4월 출간한 저서 ‘유전자 지배 사회’(동아시아)로 이어졌다. 그는 이 책에서 가정·사회·경제·종교·정치 등 인간 사회의 여러 측면을 유전학적 관점으로 탐구했지만, 정치 파트는 한 챕터로 다루기에는 부족했다. 이후 그에게 “정치는 공동체로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2024년 말부터 그가 집필했다는 ‘보수 본능’(동아시아)은 이 아쉬움을 보완한 책이다. 최 교수는 사회심리학과 행동경제학 연구를 뇌과학·진화심리학의 언어로 번역해 보수와 진보의 뿌리를 탐구했다. 젊은 세대 보수화와 세계적 정치 양극화를 본능이라는 차원에서 해부한 이 책은 과학자의 시선으로 한국 정치 담론에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집필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사회가 정치적 격변기를 겪던 때와 겹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탄핵소추안 가결, 조기 대통령선거 등 굵직한 사건이 이어진 시기였다. “책을 쓰는 동안 이런 이슈가 쏟아져 분주했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몰입도가 높아졌다”며 웃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나의 세계관을 세우는 데 몇 년이 걸렸지만, ‘보수 본능’은 그 틀 안에서 정치 파트를 심화한 작업이라 4~5개월 만에 탈고할 수 있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격동기였고, 20~30대 남성 보수화 현상이 정치권의 핵심 화두가 되면서 집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정치 프레임 전환 필요한 이유
최정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정치 성향을 본능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하며 저서 ‘보수 본능’을 집필했다. 지호영 기자
“사회과학은 현상을 세밀히 관찰하고 서술하는 데 강점이 있지만, 자연과학은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기제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나는 ‘보수적 사람은 이런 경향이 있다’에서 멈추지 않고, ‘왜 그런가’를 밝히고 싶었다. 생존·번식 본능의 강도라는 생물학적 축으로 재정의하니, 이민·교육·총기·종교 같은 다양한 이슈를 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는 흑백논리가 아닌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보수와 진보를 해석하자는 시도다.”
책에서 사전적 정의로는 보수를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뭐라고 정의하고 싶나.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보수의 사전적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 난입, 계엄령을 옹호하는 극단적 행동은 전통 보수와 다른 양상이다. 나는 이념 대신 생물학적 성향으로 보수를 정의했다. 핵심은 ‘생존 본능’과 ‘번식 본능’이다. 전자는 위험을 크게 인식하고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이고, 후자는 세상을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고 상대적 지위 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이다. 개인마다 이 두 축의 강도가 다르며, 이 차이가 정치 성향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최 교수는 보수성향을 두 본능으로 설명한다. 사회학에서 생존 본능은 우익 권위주의 (RWA)라 한다.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고 전통·규범·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며 강력한 질서에 의존한다. 동성애나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 낙태 반대, 총기 소유 선호 등이 이 축에서 비롯된다. 반면 번식 본능은 사회지배지향성(SDO)과 연결된다. 세상을 경쟁의 장으로 보고 상대적 지위 확보를 중시한다. 특목고·자사고 존치, 사교육 확대, 능력주의에 기반한 정책 선호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보다 질서와 경쟁 원리를 더 중시하는 태도다. 그렇다면 진보는 무엇에서 출발할까. 최 교수는 “정치 성향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진보성향은 본능에서 조금 벗어나 사회구조나 공정성 문제를 고민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진보성향인 사람에게서는 전대상피질(뇌의 전두엽 내측에 위치한 피질 영역)과 뇌섬엽(뇌의 외측구 안쪽에 위치한 대뇌피질의 한 부분)이 활발히 작동한다. 이 부위는 갈등과 불공정,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공감하게 하는 뇌의 ‘센서’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능력도 이와 관련돼 있다. 쉽게 말해 진보성향은 공감 능력과 새로운 정보 수용력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자연에 반하는 인간이 되자”
책에서 제안한 ‘합리성 평가’는 진보에도 적용할 수 있나.“무엇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절대적 정답은 없다고 본다. 나는 두 가지 축으로 나눴다. 첫째는 공정의 합리성이다.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것을 ‘자연의 섭리’라 정당화하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공정을 중시하는 진보의 관점이 이 영역에서는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다만 이는 사회적 합의와 표결이 필요한 가치판단의 문제다. 둘째는 사유의 합리성이다. 행동 실험에서는 보수성향인 삶이 생존·번식 본능 영향으로 확증편향에 더 쉽게 의존하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이는 신념 고착이나 근거 부족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진보의 생각이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 사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중에게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뭔가.
“나는 늘 ‘자연에 반하는 인간이 되자’고 말한다. 생존과 번식 본능은 진화적으로 유리했지만 그것이 곧 옳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 설계는 본능을 넘어 긍정과 이성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본능을 넘어서기 어려울까.
“우리 뇌는 본래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된 장치다. 낯선 이를 경계하고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은 과거 생존에 유리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본능이 오늘날 정치 판단에서 영향을 미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2030세대 남성 보수화 현상을 어떻게 보나.
“2030 남성 보수화는 한국만의 특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유럽, 캐나다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특정 정권의 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과 세계적 경쟁 환경이 결합한 구조적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 이 연령대에서 번식·지위 경쟁 압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사회지배지향성 축에서 보수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하나.
“횡단면으로 보면 20~30대 남성 집단은 계속 새로 유입되지만 보수화 패턴이 반복된다. 연령대가 바뀌어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건 환경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특정 코호트(공통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의 고정 효과보다는 생애주기와 구조 환경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이가 들며 경쟁 압력이 완화되고 생활 안정이 찾아오면, 개인의 태도도 서서히 달라질 수 있다.”
구조적 경쟁 강도 낮추는 처방 시급
한국 사회의 ‘역차별·군복무·공정’ 프레임과도 연결되나.“그렇다. 이 이슈들은 젊은 남성에게 ‘경쟁의 공정성’ 문제로 인지된다. 이민자를 경쟁자로 보는 시각과 유사하다. 질서·안보보다 공정·경쟁·역차별 키워드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우익 권위주의보다 사회지배지향성 축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사례다. ‘여성·페미니즘’ 같은 표층 갈등만 붙잡아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교육 경쟁 완화, 양질의 일자리, 사회안전망 강화처럼 구조적 경쟁 강도를 낮추는 처방이 핵심이다. 본능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본능을 자극하거나 증폭시키는 환경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과학적 데이터나 뇌과학 연구가 첨예한 정치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데이터는 사람을 직접 설득하기 어렵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게 한다. 지금처럼 사안별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근본 해법이 없다. 지금은 ‘특권 철폐’나 ‘여성 군복무’ 같은 사안별 대응으로 논의가 흘러가지만, 근본 원인은 경쟁 환경이다. 안정된 일자리와 교육 경쟁 완화 없이는 세대가 바뀌어도 보수화 패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