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방사청 ‘실수’로 재고 떠안은 군납업체의 기막힌 사연

원단 검사한다더니 완제품 검사해…‘부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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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09-23 14: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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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단 대신 완제품 검사한 방사청

    • 업체들에 부적격 판정, 다시 제작

    • 소송 과정에서 방사청 성능기준 잘못 드러나 업체 승소

    • “재고는 ‘계약 외 물량’…책임질 필요 없다”는 방사청

    • “잘못된 기준으로 발생한 손해”…망연자실한 업체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피복 성능을 둘러싼 소송에 승소한 중증장애인고용 기업 등 피복 납품업체들이 뜻밖에도 도산 위기에 몰렸다. 법원이 이들이 납품한 ‘하계 운동복(이하 하운동복)’에 성능 결함이 없다고 판결했지만, 방사청은 여전히 인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용 하계 운동복. 동아DB

    군용 하계 운동복. 동아DB

    2020년 12월 군에 납품된 하운동복 일부에서 물 빠짐 등의 현상이 발생해 언론에 보도되자 방사청은 당시 운동복을 납품하던 13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성능검사를 실시했고, 13개 장애인고용업체가 전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방사청은 2022년 9월 이들 업체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과 함께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장애인고용업체의 제품 모두가 성능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는 방사청에 있었다. 방사청과 군수품 품질관리 전문기관인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당시 각 업체에 보낸 정부 품질보증 계획서(구매요구서)에는 “운동복 기능 검사는 원자재(원단)를 대상으로 한다”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방사청은 원단이 아닌 완제품(운동복)으로 성능검사를 시행한 것. 고온과 염색 처리 등의 가공 과정을 거친 완제품은 원단과는 성능이 다르다. 소송 과정에서 방사청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9월 11일까지 총 8개 납품업체가 승소했다. 검찰도 2022년 7월 이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부적격’ 판정으로 쌓아둔 하운동복 8200장

    법원은 방사청의 성능검사 기준이 잘못됐다며 장애인고용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13개 납품업체 중 승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업체 5개 곳 중 4곳은 소송 중 도산했다. 다른 업체 한 곳은 회생절차를 밟고 있어 소송을 포기했다. 방사청이 잘못된 성능검사 기준을 고집하는 바람에 5개 납품업체가 업계를 떠나게 된 셈이다.

    소송이 끝났지만, 방사청은 하운동복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소송으로는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이 해제된 것일 뿐이어서 과거 방사청이 부적격 판정을 내린 운동복은 인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방사청의 성능검사 부적격 판정으로 각 납품업체는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하운동복은 창고에 그대로 넣어두고 하운동복을 만들어 다시 납품했다. 이때 남겨진 하운동복이 약 8200장에 이른다.

    납품업체 관계자는 “소송 결과 방사청이 실시한 성능검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방사청이 과거 부적격 판정을 내린 하운동복도 인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업체 측은 1~7월 총 6개월간 3번에 걸쳐 방사청에 해당 운동복 인수를 요청했으나 방사청은 거절했다.

    방사청 측은 “업체가 새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기 때문에 해당 계약은 그것으로 종료된 것”이라며 “남겨진 하운동복은 ‘계약 외 물량’이기 때문에 인수가 불가능하다”라고 맞서고 있다.

    “재고 물량 몰랐다”는 방사청의 거짓말

    한편 방사청은 “재고 물량이 있는지 몰랐다”는 답변도 내놨다. 방사청 관계자는 “2021년 당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업체가 기존 생산분 및 재고 물량은 원단 제작 업체에서 전량 수거 및 폐기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며 “방사청과 군은 해당 물량이 전부 폐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아’ 취재 결과,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재고 물량은 전부 하운동복 생산업체에 보관돼 있었고, 방사청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방사청은 재고 물량을 생산업체로 옮겼고 이 과정에 기품원 검사관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품원은 방사청 산하 기관으로 군수물자 품질 검증을 담당하는 곳이다.

    6월 사단법인 부산광역시남구장애인협회는 방사청에 “기품원 검사관 입회하에 재고 물량을 생산업체로 옮겼다”는 내용의 사실 확인서를 보냈으나 방사청은 여전히 재고 물량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소송을 통해 방사청의 잘못된 성능검사 기준을 입증했지만, 방사청은 자신들의 실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손해는 전부 장애인고용업체가 떠안는 구조에서 더 이상 군납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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