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 수출경쟁력 제고 위한 K-방산 ‘규제 완화’ 절실
K-방산, 동맹네트워크 구축으로 ‘평화수단’ 전략적 접근 필요
5조 투입된 과기부 기초 연구 성과, 방산 개발에 활용토록 해야
AI 시대, ‘꼭 필요한 보안’ 사항만 빼고 공개하는 게 바람직
8월 29일 백승주 전쟁기념회장(왼쪽 두번째)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3층 워리어라운지에서 열린 제10회 나지포럼 개회사를 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최근에는 K-방산이 수출 효자 품목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충돌 등 곳곳에서 분쟁이 발발한 이후 세계 각국이 최첨단 무기체계를 갖추는데 적극 나서면서 우리의 K-방산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K-방산은 빠른 납기와 뛰어난 가성비로 호평받고 있다. 더욱이 미국 무기체계와의 상호운용성도 뛰어나 미군과 합동작전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에서 선호도가 높다.
8월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3층 워리어라운지에서는 제10회 KWO 나지포럼이 열렸다. 전쟁기념사업회(KWO)는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포럼’(나‧지‧포럼)을 개최해 오고 있다. 이날 주제는 ‘K-방산과 전쟁 예방’이었다. 한국의 방위산업 발전이 전쟁 예방에 어떻게 기여해왔는지, 과거와 현재적 의미는 물론 K-방산을 한단계 도약시키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도있게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포럼은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장의 주제발표, 김영후 한국방위산업MICE협회 이사장과 류연승 명지대 방산안보연구소장, 김귀근 전 연합뉴스 한반도부장의 종합토론과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2시간 넘게 진행된 포럼 주요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K-방산 5단계 발전 과정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장이 제10회 나지포럼에서 'K-방산과 전쟁 예방‘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우리나라는 K-2 전차와 K-9 자주포, 대공미사일 ‘천궁’과 다연장로켓 ‘천무’, 단거리탄도미사일 현무2와 순항미사일 현무3, 최대사거리가 800㎞인 현무4, 그리고 벙커버스터 현무5를 비롯해, 수리온 헬기와 KF21 전투기, 구축함과 잠수함, 독도급 대형 수송함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채 이사장은 K-방산의 강점으로 △우수한 가성비, △패키지 방식에 따른 빠른 납기, △미국 무기체계와의 상호 운용성을 꼽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고, 각국이 방위 예산을 크게 늘리는 현시점이 K-방산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종합컨트롤 구실이 미흡해 국가 차원에서 K-방산 육성에 대한 전략이 부족하고, 규제와 간섭이 많아 방산업체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있는 점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아울러 서방의 견제와 중국‧북한의 정치공작 가능성, 그리고 국내 시스템 간 불협화음은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채 이사장은 △K-방산으로 글로벌 표준화를 이루기 위한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구축, △한국을 일본, 필리핀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으려는 미국 전략에 적극 연계하고, △국방비 100조원 시대를 대비해 K-방산에 적극 투자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국방비는 한번 지출하고 나면 없어지는 소모성 경비가 아니다”며 “AI와 로봇, 드론 등 융합형 전력 체계 개발을 위한 기술 투자는 우리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K-방산의 글로벌 수출 확대로 이어져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투자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방산 경쟁력 높일 ‘원 팀’ 절실
제10회 나지포럼 종합토론에 참석한 김영후 한국방위산업MICE협회 이사장. 조영철 기자
김 이사장은 노르웨이에서 K2전차가 레오파드 전차와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일과 호주 차세대호위함 사업 수주 실패 사례를 예로 들며 “K-방산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원 팀’ 구축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 기업끼리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한국형차기구축함(KDDX)사업 전략화 지연에 따른 전투력 약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며 “이재명 정부 들어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과 하준경 경제성장 수석이 참여하는 ‘방위산업발전추진단’ 첫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 기구가 컨트롤타워 구실을 잘해 앞으로 K-방산이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방산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과감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규제 완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 무엇은 하지 말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연승 명지대 방산안보연구소장이 제10회 나지포럼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그는 대기업의 동반성장을 평가하는 ‘동반 성장지수’ 제도를 만들어 해당 평가 결과를 신규 사업 제안서 평가 때 반영하는 방법을 예로 들었다. 즉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 동반성장지수가 높은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제안서 냈을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것. 이 밖에도 해외 의존도가 높은 K-방산의 기반이 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국산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과감하게 지원을 늘려 소‧부‧장을 적극 육성할 것을 주문했다.
류 소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GDP의 2.3% 수준인 국방비를 3.5%, 약 100조 원으로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증액되는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방 연구개발에 투자해 방위산업의 제2도약을 이루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은 AI가 현대전의 핵심 기술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 방위산업도 전통적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무기체계 개발 전략과 실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귀근 전 연합뉴스 한반도부장이 제10회 나지포럼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김 전 부장은 “미국 한미 관세 협상에서 주목받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K-방산의 ‘제2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지금은 미국 비전투함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위주지만, 미 의회에서 조선업 시장 개방에 관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어 함정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재 295척인 함정을 2054년 390척으로 늘리기 위해 미국 해군이 1조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이 사업에 참여한다면 K-방산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 생태계 조성해야
주제발표와 종합토론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K-방산이 처한 현실과 개선 방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채 이사장은 “현재 대기업 위주로 돼 있는 방산 생태계를 중소‧중견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야 한다”며 “무기 수출과 필요한 구성품 수입을 연계한 복합무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무기 수출 대금 중 일부를 무기 제작에 필요한 구성품으로 받아 우리 중소업체들에 제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한편 방산 활성화를 위한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채 이사장은 “양면성이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류 소장은 “방산 기업 실상을 파악해 분석한 후 국회에서 논의를 거쳐 국회 주도로 입법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지포럼에는 방산 관련 학회와 협회 인사, 기업 관계자는 물론, 나라를 지키는 데 관심 많은 청년도 여럿 참석했다. 청년 참석자 가운데 사관생도 제복을 입은 이가 눈에 띄었는데, 육사85기로 1학년에 재학 중인 홍석연 생도였다. 홍 생도는 종합토론 후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방위산업 확대에 군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포럼에 참석한 김용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이 답변에 나섰다. 김 연구원은 육사 30기로 육군 준장 예편 후 KIST에 몸담고 있다.
“생도 시절부터 우리나라 과학기술연구소가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방위사업체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고 관심 있는 분야 기업을 직접 방문해 홍보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전차나 자주포를 만드는 방산업체를 직접 방문해 보면 장교 임관 후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진로에 대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어 김 연구원은 방위산업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미래에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무기를 개발하는 나라가 방산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새 무기가 될 기초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에는 그런 연구소가 없다. 국방과학연구소(ADD)도, 방산업체도 그런 연구는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수출 제품 성능 개량에 필요한 연구를 하는 데 급급하다. 국방부 연구개발 예산 대부분이 방산업체 체계 개발에 투입되는데 솔직히 그것을 연구 개발이라 할 수는 없다. 실질적 기초 연구 예산은 50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과학기술정통부는 기초과학 연구에만 해마다 5조 원의 예산을 쓴다. 국방부 기초과학 연구 예산의 100배가 넘는 액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과기부) 연구 성과를 국방부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쪽(과기부)은 무기 개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과기부 연구 성과를 방산과 융합시킬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수 있는 곳이 대통령실이다. 5조 원을 투입한 과기부의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국방부가 미래 첨단무기 개발에 활용한다면 우리나라가 미래를 선도할 첨단 무기 개발에서도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김귀근 전 부장은 “방산 제품 홍보 때 그 무기를 직접 써 본 사람(군인)이 설명한다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며 “국방일보에 방산면을 신설해 무기 사용자 의견을 게재토록 해 공유하거나, 해외 각국에 나가 있는 무관들이 우리 방산 무기를 홍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우리 군인이 방산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도 “방산 전시회에서조차 우리나라는 사진 찍는 각도 등에 따라 ‘보안’ 등 제약이 많은 편”이라며 “부스 방문객에 프렌들리하게 방산 전시회 때 해당 무기 등을 직접 사용해 본 군인이 함께 나가 우리나라 부스를 찾아온 해외 바이어에게 직접 사용 경험 등을 설명해 준다면 K-방산을 홍보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소속으로 한양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이창현 교수도 과거 방산 무기 수출에 관여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무기 에이전트들이 정확한 비교 분석을 통해 K-방산의 우수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재원과 성능 등을 분석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질의응답 말미에는 우리 군의 ‘보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도 했다. 류 소장은 “AI 개발에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할 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공유하도록 (보안을) 푸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데이터 공유와 보안 완화 문제 등은 정부 차원에서 제도 개선 방안이 곧 마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채 이사장도 “통제가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정부 컨트롤타워에서 전문가 의견을 잘 듣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꼭 통제할 것만 통제하고 나머지는 오픈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량을 따라올 나라는 많지 않다”며 “우리가 기술을 제공해서 다른 나라들이 따라오더라도 우리가 좀 더 빨리 뛰면 그보다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행동하자”고 제안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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