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등 정당 핵심 기능 유튜버에 넘어간 한국
정치인들도 강성 지지층 눈치 보기 바빠
‘개딸’ 등 강성 당원들 ‘집단극단화’로 여야 합의 파기
양극단 지지자만 구애…다수 중도층은 소외
지금의 양극화는 정치권이 초래한 일
잘 싸워야 당권·공천에 유리한 현실, 민의 가려…
‘증오·혐오 발언’ 정치인, 공천 배제하는 당규
선악(善惡)의 이분법부터 내려놓아야
3월 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왼쪽)와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동아DB
양당 대표는 정기국회가 험난할 것임을 당대표 수락 연설 때 예고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12·3비상계엄 내란에 대한 사과와 반성 없는 국민의힘과 악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맞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모든 우파 시민과 연대해서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두 대표가 사용하고 있는 적대적 언어를 보면 이견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정치 언어를 포기한 것으로 비친다. 어쩌다가 이런 반정치적 언어를 쓰게 됐을까. 그 원인은 유튜버들의 확증편향에 따른 혐오·증오 발언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유튜버의 도움을 받아 당권을 쥐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정 대표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이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여당 강경 지지 세력을 등에 업었다. 장 대표는 ‘전한길 뉴스’에 출현하며 보수 강경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왼쪽).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8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당 간 합의도 개딸 눈치 보며 파기
정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친명으로 분류되는 박찬대 의원을 제치고 당권을 잡았다. 정 대표의 당선은 김어준의 뉴스공장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대표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연 28회 출연했다. 반면 경쟁자였던 박찬대 의원은 연 2회 출연에 그쳤다.유튜버 전한길 씨는 공개적으로 장 대표를 지지하면서 다음처럼 공천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전한길을 품는 자가 내년에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도 받을 수 있다”며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다음 대통령까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장 대표는 “(전한길 씨가) 의병처럼 밖에서 적을 막아주고 당과 함께 싸웠다”고 평가하면서 “공천을 주겠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전한길 씨의 도움을 받기 위해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구독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강성 유튜버의 지원을 받은 당대표들이어서일까. 양당의 갈등은 봉합될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정 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고 공격했다. 이에 장 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맞섰다.
교섭단체 연설 전날인 9월 8일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당분간 다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3자 회동을 주선하며 협치를 종용했다. 두 대표는 서로 손을 맞잡고 “협치에 힘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약속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내란 정당’ 프레임을 씌워서 일당독재를 구축하고 있다”며 “지금 국회의 모습은 다수 의석을 앞세운 집권 여당의 일방적인 폭주와 의회 독재의 횡포만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뒤집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정 대표는 9월 11일 3대 특검법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파기했다. 정 대표는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동안 당 지도부·법사위·특위 등과 긴밀하게 소통했다”며 “정 대표는 공개 사과하라”고 반박했다.
무엇이 협치 분위기와 여야 합의를 깨도록 만들었을까. 민주당 내부의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로 보는 게 적절하다. 한마디로 민주당 ‘개딸’이라고 하는 강성 당원들의 협박이 작동했다는 점이다. 집단극단화는 집단 내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고 중도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극단적인 편향성을 동원하는 비합리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정치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
합의 파기는 ‘개딸’ 뜻대로 결정됐다. 유튜버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는 “밀실 야합이다” “개혁을 원치 않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자)이 설친다” “김병기를 끌어내리자” 같은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내란 정당과 협치가 웬 말이냐”며 의원들에게 문자를 수차례 보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일부 여당 의원들이 개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9월 11일 여당 일부 의원들은 페이스북에 국민의힘과 합의는 무효라는 내용의 글을 연달아 올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굳이 이런 합의는 필요치 않다”고 썼고, 박선원 의원도 같은 날 “내란 당과 3대 특검법을 합의했다니, 내란 종식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했다. 서영교 의원도 “특검 기간 연장, 인원 증원 사수”라며 “타협은 NO(없다)”라고 했다.
합의 파기가 결정되는 과정은 민주당 내부가 강경파에 어떻게 포획된 뒤 극단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정치 양극화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는 계엄과 탄핵의 혼란을 겪고 이재명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심리적 내전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여전히 ‘계엄·탄핵·내란 정당’의 프레임을 동원하거나 이에 ‘민주당 독재’로 맞서는 양당의 강성 지도부는 국민 여론과 다른 적대적 대결의 후진적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2024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유튜버 김어준 씨. 뉴스1
강성 지지자만 생각하다 우중(愚衆) 정치 늪 빠져
양극화된 정치집단은 외부에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부가 결집한다. 일종의 폐쇄적 감정 공동체에 가깝다. 정치가 아니라 감정을 앞세우니 비민주적이고 반정치적 규범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의 정치 양극화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확증편향성이 강한 극단적 유튜브 채널이 정당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유튜브 채널 콘텐츠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당권이나 대권을 잡기 위해 혐오·증오 발언을 일삼는다. 이를 통해 지지자들을 맹신자로 만들고 적대 정치를 선동한다. 이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무너진다.정치 전반에는 악영향을 미치지만 정치인들이 정치 양극화를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지층 결집이 쉬워서다. 특히 여당은 강성 당원 지지세를 모아 집권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은 강성 당원의 지지를 바탕으로 사법리스크를 방어했고, 종국에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인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당원과의 대화에서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과 의원 중심의 원내정당은 언제나 부딪친다”며 “결국 민주당이 당원 중심 정당과 대중정당이란 걸 증명하는 첫길을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에는 성공했지만 원하는 정치체제 구축에는 실패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목표는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이었다. 강성 지지자들을 모아 대권을 잡고 이 과정에서 그 결과는 ‘개딸 중심의 정당’이 됐다.
이 대통령이 주장하던 ‘당원 중심’ 역시 ‘국민 중심’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재명식 국민 중심’은 강성 지지층의 ‘결의’만을 강조하면서 국민주권의 결정체인 ‘헌법체계’(대의제,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헌정주의, 법치주의)를 부정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정치 지향은 국민 중심에서 ‘인민주의(포퓰리즘)’로 전락했다.
이 대통령과 여당의 가장 큰 오류는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정당을 꿈꿨다는 점이다. 대중이 사라지는 시대임에도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필두로 대중정당을 만들려 했다. 이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역시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에 쓴 ‘제3의 물결’에서 새로 도래하는 정보화의 특징으로 ‘탈대중화(Demassification)’를 주장했다. 탈대중화란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앙에 모여 있던 권력과 자원을 해체하고 분산하면서 창의성과 다양성을 장려하는 과정을 말한다.
탈대중화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때 대중은 긍정적 대상이 아니다. 특별한 유대감이 없는 고독한 군중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유대감을 만들어 주면 획일적 대중정당이 된다. 계급이나 계층의 동질성을 강조하면 더 효과적이다. 대중은 지도자 개인에게 철저하게 의존하게 되고, 비민주적 우중(愚衆) 정치가 등장하게 된다.
한국사 강사였다가 유튜버가 된 전한길 씨가 8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 회의에 출석했다. 동아DB
공천에도 관여하는 유튜버
이 과정에서 정당의 핵심 기능은 공천마저 유튜버에게 넘어갔다. 강성 지지층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모이기 때문이다. 9월 15일 기준 구독자 수만 220만 명이 넘는다. 정 대표도 이곳에 의존해 당대표가 된 만큼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민주당 내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총선만 봐도 알 수 있다.‘주간경향’은 9월 6일 ‘김어준 생각이 민주당 교리’라는 제목의 기사로 유튜버 권력이 민주당의 공천권을 요구하는 행태를 고발했다. 민주당 의원 106명이 김어준 방송에 출연하면서 “민주당이 ‘김어준당’이 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민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특정 유튜버에게 줄서기를 한다는 비판이다.
곽상언 의원은 9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공유한 뒤 “출처가 분명하진 않지만 ‘우리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 없다”고 적었다. 국민의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장 대표는 유튜버 전한길 씨에게 공천을 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학술적으로 정치 양극화란 진보·보수 양당의 지지자가 늘어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중도성향 유권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조금이라도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 유권자가 극단화되며 양극화가 발생한다. 진보는 극진보로, 보수는 극보수로 쏠리게 된다. 정치에 관심이 많던 유권자가 양쪽 극단에 모이다 보면 이들의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상황이 다르다.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면 중도층이 적어져야 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중도층이 가장 많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수, 중도, 진보의 비중은 각각 29.9%, 46.7%, 23.4%이다. 중도층은 많지만 정치 양극화는 심각하다. 같은 조사에서 82.9% 국민은 정치적 갈등이 ‘심하다’고 보고 있다.
정당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가장 비중이 높은 중도층을 겨냥하는 정당이 대권을 쥐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양대 정당은 양극단에 있는 지지자들에게만 구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인 중도층이 소외되며 민의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정치권이 만든 양극화, 정치권이 풀어야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학계에서는 정치 양극화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먼저 하향식 양극화다. 정치권이 먼저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의미다. 이를 시민단체와 지식인이 확대·재생산하며 종국에는 유권자에게 전염된다는 주장이다. 반대는 상향식 양극화다. 국민이 이미 양극화가 돼 있는 상황이라 정치집단이 이를 추종하는 방식이다.한국의 경우 중도층이 많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상향식 양극화의 가능성은 낮다. 양극화를 멈출 수 있는 해법은 정치권에 있다. 이제는 정치인이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는 ‘전략적 극단주의’를 멈춰야 한다. 정치인 개개인의 태도 변화가 어렵다면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일단 여야가 초당적으로 극단적 유튜브에 출연해 사실과 다른 주장이나 ‘증오·혐오발언’을 한 정치인의 공천을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당규를 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정책과 공천도 강성 지지층이나 팬덤 권력에 좌우돼선 안 된다. 중도성향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정당 모델과 공천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중정당’이라는 이룰 수 없는 꿈도 포기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는 오히려 ‘미국식 원내정당’이 나을지 모른다. 현재 한국의 대중정당 방식은 당론을 중심으로 당원과 의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식 원내정당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의원이 모여 있는 집합체다. 당론보다는 각 의원의 의사대로 움직인다. 지지자들도 당 지도부보다는 각 의원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당내 권력과 지지층이 분산돼 있으므로 지도자 한 명의 뜻대로 당을 좌우하기 어려운 구조다.
공천 방식도 ‘오픈프라이머리’로 법제화해야 한다. 당대표가 공천권을 갖는 중앙당 방식은 정치 양극화를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최대한 민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 당대표 선출 방식도 개선이 필요하다. 의원총회가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되면서 원내대표가 당대표가 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와 한 쌍인 원내정당은 의원의 자율성 회복과 숙의 기능의 정상화로 민심과 충돌하는 강성 지지층을 제어함으로써 정당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당론을 강제로 따르는 방식도 없애야 한다. 상임위원회에서 의원 간 초당적 숙의와 교차투표가 가능하려면 여야가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양당이 당론을 채택해 의원의 자율성을 강제한다. 의원이 소신을 내세운다면 공천 불이익을 주는 일도 허다하다.
마지막으로 대립의 정치 문화를 강화시키는 선악의 이분법(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을 내려놓아야 한다. 선악을 가르는 유교적 습속의 정의관은 현대 정치에 맞지 않다. 시대에 맞게 공화주의 규범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상대를 ‘거악의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거나 또는 자신의 위선과 허물 및 유죄를 덮기 위해 상대를 ‘거악’으로 몰아서 적대하는 이중 잣대의 ‘내로남불’ 문화는 정치권에서 지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