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고착화 막으려면 북한 이해 노력 필요
남한은 ‘삼계탕’, 북한은 ‘단고기’…보양식 문화도 달라져
유년 시절 원산에서 보낸 김정은의 원산 사랑
트럼프-김정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서 정상회담 가능성↑
한반도 통일? ‘선택’ 아닌 ‘반드시 수행해야 할’ 헌법상 책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홍태식 객원기자
202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 압제에서 벗어나 빛을 다시 찾은 지 80년이 되는 날이다. 광복은 민족의 경사임이 분명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각각 38선 이남과 이북에 주둔함으로써 민족의 비극이 시작했다. 분단 5년 만에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73년째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오는 동안 남북은 적대적 대결 구도 속에도 정권 성향에 따라 간헐적으로 화해를 위한 남북대화와 교류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남북한 반목은 심화했고, 젊은 세대 사이에 ‘통일이 필요 없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 중 절반 가까운 46.2%가 ‘통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세대가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기보다 ‘분단 고착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더욱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최근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며 사실상 한반도 분단 고착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광복 80년 만에 민족의 염원이던 ‘한반도 통일’이 ‘실현 불가능한 소원’처럼 희미해진 것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고,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제69조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대통령 취임 선서문을 명시해 놓고 있다. 통일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할’ 헌법상 책무다. 이를 위해선 우선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단고기 국물, 발등에 떨어져도 보약 된다?
2025년 여름 한반도를 덮친 ‘폭염’은 삼복더위란 말을 실감케 했다. 땀을 많이 흘려 기력이 쇠하기 쉬운 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이겨내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복날 즐겨 먹는 보양식이 따로 있었다. 요즘도 복날 즈음 ‘삼계탕’이나 ‘민어탕’ 같은 보양식을 찾아 먹는 풍습이 남아 있다.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국민처럼 DMZ 너머 북한 사람들도 ‘복날’을 맞아 즐겨 먹는 여름 보양식이 있을까. 조한범 위원은 “한민족이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북한에도 복날을 챙기는 복달임 풍습이 있다”고 말했다.그렇다면 북한에서는 복날 보양식으로 어떤 음식을 즐겨 먹을까. 조 위원은 “개고기를 단고기라 부르는 북한에서는 아직도 단고기를 ‘고기의 왕’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초 평양에서는 ‘단고기 요리 경연대회’까지 열렸다고. 조 위원은 “북한 전역에서 200명 정도 되는 요리사가 평양 유명 음식점에 모여 단고기 요리 경연을 펼쳤다”며 “수육, 보쌈, 탕은 물론 단고기 회까지 다양한 요리 실력을 뽐냈다”고 전했다.
단고기를 중시하는 북한에는 ‘복날 단고기 국물이 발등에만 떨어져도 보약이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북한에서 고기의 왕으로 통하는 단고기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룡성특수식료가 제조하는 ‘단고기 통조림’의 경우 주로 당 간부 상납용으로 사용되거나, 국제대회 출전을 앞둔 국가대표 체육 선수들의 체력 보충용으로 지급된다고 한다.
6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내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의 실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파견된 이후 ‘개고기 통조림’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이 전장에 파견된 북한군이 ‘개고기 통조림’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북한군 파병이라고 주장한 것. 이에 대해 조 위원은 “‘개고기 통조림’은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의 실수”라고 분석했다. 첫째, 통조림 포장지에 북한에서 사용하는 ‘단고기’ 대신 ‘개고기’라고 쓴 것이 현실과 다르고, 둘째 당 간부나 국가대표 체육 선수나 먹을 수 있는 귀한 ‘단고기 통조림’을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중 일부가 소지했다는 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다.단고기뿐 아니라 소고기도 북한에서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조 위원은 “북한 일반 서민은 일생을 통틀어 소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당 간부 정도 되면 소고기 맛을 보겠지만, 일반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고기 뼈다귀 국물도 못 먹어본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북한에서 소를 도축해 팔아먹은 일당이 잡혀 모두 처형된 일도 있다”며 “북한에서 당의 허락 없이 소를 도축해 고기를 팔거나 먹으면 처형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소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식용’으로 보지 않고 농사에 꼭 필요한 ‘축력’ 공급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란 게 조 위원의 분석이다.
단고기와 소고기가 귀한 북한에서 ‘고기 먹었다’고 얘기하면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가축을 길러 생계를 이어가는 축산 농가가 있듯, 북한에도 가축을 기르는 가구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인구가 밀집해 거주하는 대도시, 그것도 평양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돼지’를 키운다고. 조 위원은 “지금도 평양에는 연탄을 때거나 장작을 때는 아궁이가 있는 아파트가 있다”며 “그 아궁이를 개조해서 베란다 같은 곳에 틀을 만들어 돼지를 키운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북한 주민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무엇보다 북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은-김여정 남매가 대한민국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주장한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 마오쩌뚱이 실패한 이유가 실제로는 권력이 지갑에서 나오는 데 있다. 주민들 등 따숩고 배 부르게 해줘야 권력이 유지된다. 권력으로 내리 누르고 굶기면서 충성을 요구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북한도) 2국가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우리가 내미는 손을 빨리 잡아야 복날에 인민들도 소고기, 돼지고기 구워 먹을 수 있게 된다.”
김정은이 원산에 ‘올인’한 까닭
2011년 아버지 김정일 전 조선노동당 총비서 사망 직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현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집권 직후 강원 원산에 대대적 투자를 시작했다. 마식령 스키장을 만드는가 하면 바로 옆 갈마반도를 관광특구로 지정해 관광단지로 조성했다. 조 위원은 김정은 집권 후 ‘강원도 정신’을 얘기하고, 원산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그의 유년 시절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생모 고용희가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북한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원산이란 점에서다.“김정은 외할아버지 고경택이 제주도 출신이고,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후 거기(일본)서 김정은 생모 고용희를 낳았다. 1960년대 일본 오사카에서 북송선을 타고 원산에 도착한 김정은 모친 고용희를 북한 간부들은 ‘원산댁’이라 불렀다.”
유년기를 원산에서 보낸 김정은의 원산 사랑은 끔찍하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갈마반도 해안관광지구라는 것. 15개 대형 호텔과 28개 리조트, 아파트형 민박과 방갈로까지 하루 2만 명이 동시 숙박할 수 있는 대규모 휴양지로 개발한 원산갈마해안관광단지는 올 6월 24일 공식 준공했다. 준공식에는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부인 이설주와 딸 주애까지 총출동했다.
원산관광단지 준공 후 북한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평양이 아닌 원산에서 접견하는 등 원산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조 위원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에게 수렁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러시아 파병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2024년 한 해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 수는 고작 881명에 그쳤다고 한다.
조 위원은 “동양 최대 슬로프를 자랑하는 마식령 스키장과 하루 2만 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북한 주민을 위한 시설이 아니다”라며 “결국 우리나라 관광객이 원산을 대규모로 방문해야 시설 유지가 가능할 텐데, 현재와 같은 남북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 이 시설이 모두 폐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마식령스키장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주변에는 울림폭포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꿈꿨다는 석광사 등 우리 민족이 볼만한 관광거리가 풍부하다”며 “원산 주변 6개 관광지구를 묶어 사계절 관광 프로그램을 가동하려 한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시작돼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10년간 우리 국민 193만 명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 때 끊어진 남북대화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대통령 임기 내에 다시 남북교류가 시작돼 사시사철 금강산 관광을 가고, 여름에는 원산 명사십리에서 해수욕하고, 겨울에는 마식령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날이 오게 될지 주목된다.
조 위원은 “북한의 핵 개발은 (유엔 등) 국제사회 제재를 불러와 자기 발등을 찍은 결과를 초래했다”며 “더욱이 최근 김정은이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니다’라며 남북 관계를 끊고 적대적 2국가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같은 주장이 자기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 위원은 “원산·갈마는 우리 도움 없이는 북한 경제를 말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다만 조 위원은 “김정은은 리조트 개발을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원산·갈마에서 만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며 “세계를 상대로 맘대로 관세를 부과하는 트럼프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처럼, 트럼프가 원한다면 김정은과 원산에서 만나는 것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조 위원은 “최근 김여정이 담화에서 ‘트럼프와 김정은 수뇌 친분’을 강조했는데, 이는 비핵화를 의제로 삼지 않는다는 일종의 ‘조건 만남’에는 응할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이 성사되고, 거기서 북한 관광에 대한 족쇄를 풀어주는 데 합의할 경우 한국 사람이 돈 내고 원산·갈마를 관광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7월 2일 개장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소식을 보도했다. 사진은 원산-갈마에서 해수욕하는 북한 주민 모습. 뉴시스
북·미 정상회담 성사 때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기본 정책 방향은 ‘실용’이란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대북 강경책을 폈던 윤석열 정부와 반대로 남북대화 복원에 적극 나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조 위원은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이 우리와 협의 없이 둘이 만나 합의를 도출할 경우 핵 위협은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위원은 “통일과 민족 개념을 지우고 외교관계로 대화에 나오라고 북한이 요구할 경우 헌법 3조와 4조에 규정된 영토 조항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책무와 배치돼 우리 정부로서는 더 골치 아픈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자기 주민들에게조차 ‘적대적 2국가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우리 정부에 ‘2국가론’을 수용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우리 정부가 그 같은 북한의 주장을 받을 생각도 없지만, 만약 받아주면 정권 자체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면서도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무력 충돌에 개입하면서 ‘평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데 대해 조 위원은 “만약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 모종의 합의를 도출하면 우리에게 유리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고민이 있든 말든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가게 될 공산이 크다”며 “그게 현실”이라고 예측했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 한반도 운명이 우리 뜻과 다르게 결정될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조 위원은 “관세 문제가 일단락되고 나면 트럼프가 외교안보 쪽에 관심을 기울일 공산이 크다”며 “트럼프가 북한 문제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변화된 남북 환경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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