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혐의만 유죄? 1심 판단일 뿐
여가부가 직원 급여 주라고 지급한 보조금
직원에게 현금 인출하라 시켜 정의연 계좌로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로 1억 원 넘게 모았으나
정의연 활동비 및 다른 시민단체 지원금으로 써
재판부 “시민사회장 명목으로 사업지원금을 모은 셈”
위안부 피해자 갈취, 공금이용 상식 무시한 악행
8월 11일, 국민의힘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상욱 의원이 한 유튜브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윤미향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사면 복권 발표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대통령실은 이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포함해 범여권 인사 19명을 사면했다. 이 명단에 윤 전 의원도 포함됐다.
윤미향 전 의원이 2024년 1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4 평화의 소녀상 전시회 ‘내 옆에 앉아봐, 아리의 손을 잡아주세요’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어떻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금을 손을 댈 수 있느냐, 용납이 안 된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식사 자리에서 누가 자료를 줘서 봤더니,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 상당 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이만큼 큰 악마를 봤는데 그보다는 조금 작구나.”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도대체 김 의원은 윤 전 의원을 옹호하는 것일까, 비난하는 것일까. ‘큰 악마’인 줄 알았는데 ‘조금 작구나’ 싶다면, 윤 전 의원을 ‘작은 악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작은 악마’인 윤 전 의원을 사면 복권 시켜주는 셈 아닌가.
1심 앞두고 핵심 증인인 윤미향 측근 사망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발언에 윤 전 의원 사면을 둘러싼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사안이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에서 온 ‘귀순 용사’ 김 의원은 ‘우리 편’인 윤 전 의원을 어떻게든 ‘무죄’라고 우기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 보니 이게 옹호하는 것인지 비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나와버린 것 같다.김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당 의원이나 그 지지층 중 상당수가 비슷한 의견을 내세운다. 친일 수구 세력을 두둔하는 ‘정치 검찰’이 윤 전 의원에게 덮어씌운 8개 혐의 중 7개가 무죄고 단 하나만 유죄인데, 그마저도 30년간 총 횡령액이 17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회계 실수를 가지고 평생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헌신해 온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사실과 완전히 다른 주장이다. 1700만 원을 운운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1심이 인정한 유죄 내역일 뿐이다. 1심에서 법원은 윤 전 의원에게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유죄 인정 혐의가 훨씬 늘어나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았다. 대법원도 2심을 확정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났던 1700만 원만해도 그렇다. 일상적 회계 오류로 작은 액수가 쌓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횡령이 일어났는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 전 의원은 법원에서 인정된 것만 놓고 보더라도 2억 원 상당의 경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세부 사항과 이 사건의 의의를 짚어보도록 하자.
윤 전 의원의 죄목 중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것은 업무상 횡령 중에서도 일부 혐의에 불과했다. 1심 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했을까. 필자는 2023년 3월 ‘신동아’ 지면을 통해 이 사건을 다룬 바 있다. 일단 업무상 횡령 외 다른 혐의를 다루기 어려웠던 것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마포 쉼터 소장 손모 씨가 수사 개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핵심 증인이자 잠재적 피의자였던 그의 입이 영원히 닫히면서 수많은 혐의에 대한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연의 전신)와 정의연의 은행 계좌와 그 거래 명세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재판은 윤 전 의원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필자가 썼던 칼럼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윤미향과 그의 ‘오른팔’ 격이었던 마포 쉼터 소장 손모 씨는 여러 개의 은행 계좌를 이용해 정대협과 정의연의 자금을 관리했다. 개인용 계좌로 정대협 자금을 운용하고, 정대협 명의 계좌의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쓴 돈을 벌충하기 위해 이체하는 경우도 많았다. 재판부는 그러한 계좌들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1) 피고인 윤미향 개인 계좌로 보관한 정대협 자금 횡령
2) 정대협 계좌로 보관한 정대협 자금 횡령
3) A(마포쉼터 소장 손모 씨) 개인 계좌로 보관한 정대협 자금 횡령
법원은 1) 유형 계좌에서 1123만6810원, 2) 유형 계좌에서 594만6950원에 대해 업무상횡령죄의 유죄를 인정했다. 반면 3) 유형 계좌들은 재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보조금법과 기부금법 등 형량이 낮지 않은 다른 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윤 전 의원이 1심에서 벌금 1500만 원, 그것도 선거법이 아닌 업무상횡령죄에서 유죄를 받고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이유다.”
현행법상 국회의원 당선자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직원 월급,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 가로채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죄목 중 사기 및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에서 ‘여성가족부 국고보조금’ 관련한 부분을 유죄로 봤다.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를 본인의 계좌로 모금한 것에 대해서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을 유죄로 판결했다. 손모 씨가 개인 계좌로 보관한 정대협 자금 횡령에 대해서도 윤 전 의원의 유죄를 인정했다.여가부 국고보조금 문제란 간단히 말해 ‘직원 월급 가로채기’다. 정의연 직원 월급을 여가부로부터 지원받은 후, 직원에게 그 월급을 현금으로 찾도록 해 다시 정의연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다. 직원에게 뺏은 급여는 윤 전 의원 혹은 정의연 의사결정권자들의 뜻대로 썼다.
김 할머니 장례비 건은 더욱 기가 막힌다. 2019년 1월 28일~2월 1일까지 진행된 장례식을 위해 윤 전 의원은 같은 해 1월 29일~2월 26일까지 ‘본인 계좌’로 장례비를 모금했다. 돌아가신 분은 김 할머니인데 윤 전 의원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았다. 그것도 장례식이 끝난 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2019년 1월 29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동아DB
윤 전 의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 달에 가까운 기간이나 개인 명의 계좌를 공개했고, 그렇게 1억2967만4069원을 모금했는데, 판결문에 따르면 그 돈 중 대부분이 다른 정의연의 활동 및 다른 시민단체 후원금으로 들어갔다. 판결문은 “유족을 위로하고 장례를 지원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모금의 목적과는 무관한 사용이었다”고 판시했다.
김 할머니가 사후 장례 절차에 대해 정의연에 일임하였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2심은 “고인의 유지에 조의금을 명목으로 장례비를 넘어 상당한 금액을 모금‧후원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2심 판결문의 한 문단을 인용해 본다.
“조의금은 유족을 위로하고 유족의 장례식 진행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인데, 이 사안의 경우는 피고인 A[윤 전 의원]가 모금한 돈 대부분을 시민단체 후원,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들에 대한 지원, C단체[정의연] 후원 등의 용도로 사용해 사실상 시민사회장을 명목으로 각종 사업지원금을 모은 것과 다름이 없다. 피고인 A의 행위는 조의금의 본질을 흐릴뿐더러 기부금품의 적정한 사용을 담보하기 위한 기부금품법의 규정 취지에도 어긋나므로, 법익 균형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의연 자금으로 요가 강사비도 지출
그렇게 모인 돈은 과연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세 개의 계좌가 정의연 활동에 쓰였는데 그중 두 개가 윤 전 의원의 개인 계좌였다. 개인 계좌는 수입 지출에 대한 장부 회계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출 과정에서 증빙자료 정리도 없었다.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총 기부금액이 얼마인지, 그걸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조였다.개인 계좌와 법인 계좌를 분리하여 사용하고 법인을 위한 지출은 따로 관리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법원은 “피고인 윤미향이 개인 계좌에 있는 정의연 자금의 사용처에 관하여 이해할 만한 설명을 못 한다면 정의연의 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전 의원은 지출에 대해 이해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개인 계좌를 통해 정의연 활동 관련 자금을 관리하면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았고, 자신만이 그 사용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횡령으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자금을 굴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2심 판결문을 넘기다 보면 더 기가 막힌 대목도 있다. 별지로 첨부된 범죄명세표(6)의 순번 55번을 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윤 전 의원 명의로 모금된 정의연 자금 중 24만 원을 ‘요가 강사비’ 명목으로 계좌 이체했다. 윤 전 의원 측은 정의연 사무처 상근활동가의 복리후생을 위해 2015년 1월 8일~6월 4일까지 매주 1회 요가 교실을 진행하면서 강사비로 회당 3만원을 지급했다고 항변했다. 1심은 항변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정의연 활동과 요가 교실의 직접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직원 복리후생이 필요하다면 단체의 공식적 의사결정을 통해 지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유에서다.
윤미향 전 의원이 8월 11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 페이스북 캡처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했던 김 의원의 발언을 다시 떠올려 보자. “이만큼 큰 악마를 봤는데 그보다는 조금 작구나.” 아니, 틀렸다. 이 ‘악마’는 절대 작지 않다. 위안부 할머니를 향한 온정을 갈취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공금을 모으고 쓰는 방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 ‘악마’에게 면죄부를 주는 자와 그런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억지로 두둔하는 자 모두 악행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