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은 신라 삼국통일 이후 가장 큰 사건
경주는 유적·유물 즐비한 ‘지붕 없는 박물관’
APEC 특별법 제정, 191명 의원 직접 찾아 설득한 결과
전문가 투표단 80% 이상이 APEC 개최지로 경주 선택
만찬장, 회의실 부족하다? 전부 기우일 뿐
9월이면 전체 완공, 역대 최고 APEC 만들겠다
트럼프·시진핑, APEC 참석 가능성 높아
천년고도 경주, 세계인의 K-컬처 관광지로 부상 기대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지호영 기자
7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남긴 글이다. 글 아래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대통령님. 지금 APEC 현장 1차 점검을 위해 경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 오늘 점검 후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10월 31일 시작되는 경주 APEC은 엄밀히 말하면 윤석열 정부의 유산이다. 정권이 교체됐지만 현 정부 역시 지난 정부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 지원 특별법(이하 경주 APEC 특별법)’ 덕분에 행사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APEC 준비위원회의 구성과 권한, 그 역할에 대해 규정한다. APEC 준비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되고, 관계 기관은 인력 및 자원을 지원한다. 요약하자면 이 법은 정부가 총력을 다해 APEC을 준비하는 근거가 된다.
김석기(71) 의원은 경주 APEC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그의 지역구는 APEC이 열리는 경주. 2016년 20대 총선부터 이 지역에 출마해 내리 3선을 했다. 경주 APEC 특별법 발의가 단순히 김 의원의 지역구 챙기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다. APEC이 환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 외교 행사인 만큼, 외통위원장이 직접 나서 관련법을 만들었다. 7월 21일 직접 김 의원을 만나, 그가 이야기하는 경주 APEC의 의미와 그 기대효과에 대해 들었다. 이후 8월 11일까지 김 의원과 의견을 교환하며 한국의 의교 현안에 대해 논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7월 15일 경북 경주시 2025 APEC 정상회의 현장을 찾아 각급 숙박시설 및 서비스 준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경주 APEC 특별법, 여야 의원 설득해 이뤄낸 쾌거
APEC 준비와 관련된 법은 과거에도 한 번 발의된 이력이 있다.“2005년에 열린 부산 APEC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2004년 관련 법이 발의된 적은 있으나, 상임위를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여야 합의가 빠르게 이뤄져 (경주 APEC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
지난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통상 법안 발의 후에 동료 의원 설득에 나선다. 이번에는 순서를 달리했다. 법 발의 이전에 설득을 마쳤다. 2주간의 시간을 들여 동료 의원 191명을 찾아가 공동발의 서명을 받았다. 여야 막론하고 공동발의인에 이름을 올렸으니 상임위는 물론 법사위, 본회의 통과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법안 발의에 몰두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APEC을 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다. 2023년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전철을 밟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으로 행정적·물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필요했다. 정부 차원의 APEC 추진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의 법을 발의했고, 법 통과로 인해 국무총리를 위원장, 12개 부처 장관이 부위원장으로 명시한 만큼 정부가 전방위로 APEC 준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국내법 중 유일하게 ‘경주’라는 이름이 들어간 법이라 경주를 알리는 의미도 있다.”
후보지였던 인천, 제주를 제치고 경주에서 APEC이 열리게 됐다.
“천년고도 경주를 알릴 좋은 기회다. 전 세계에 천년 넘게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는 경주를 포함해 4곳뿐이다. 이탈리아 로마,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일본의 교토 등 다른 천년고도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이번 APEC 개최를 통해 전 세계에 경주를 알릴 수 있게 됐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후보지 선정을 위한 전문위원 투표에서도 16명의 위원 중 13명이 경주에 표를 던졌다. 제주도는 한 표, 인천은 두 표를 받았다.”
왜 이들이 경주에 표를 던졌을까.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면 세 후보지 중 경주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주는 신라 왕조의 유적과 유물이 즐비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김 의원은 경주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을 지탱하는 산업을 둘러보기에도 적합한 도시”라고 덧붙였다.
APEC 끝나면 경주는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
경주와 산업이라니,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경주 인근 지역에 한국의 첨단 제조 산업단지가 모여 있다. 경주 바로 아래 울산광역시에는 현대자동차 공장과 HD현대의 조선소가 있다. 경주 바로 위의 경북 포항시에는 포스코의 제철소가 있다. 또 자동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는 경북 구미시의 첨단 산업단지가 있다. 경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의 차세대 원자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즉 경주에서는 과거 한국을 이끌었던 중공업과 현재 다시 신사업으로 떠오르는 조선, 그리고 전자 첨단 산업단지를 둘러볼 수 있다. 동시에 한국 에너지 산업의 미래 먹거리가 될 소형모듈원자로 관련 산단의 조성도 확인할 수 있다.”
경주에 회의실이나 참석자들이 묵을 숙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우일 뿐이다. 정상회담장은 물론 만찬장, 숙소, 미디어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짓고 있다. 일부 공정률이 40% 정도라는 보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시설의 공정률이 낮다고 해서 행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9월 초 완공을 목표로 각 시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한 달여 해당 시설에서 행사 예행연습을 해볼 계획이다.”
직접 가서 확인한 내용인가.
“그렇다. 지역구 의원인 동시에 외통위원장인 만큼 APEC 성공을 위해 신경 쓰고 있다. 지난해 KTX 이용 내역을 확인해 보니 국회의원 당선 이후 9년간 서울과 경주를 오가는 KTX만 약 1500번 탔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경주를 자주 찾으며 APEC 준비를 돕고 있다. APEC을 통해 달라질 경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APEC을) 준비하고 있다.”
APEC 이후 경주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PEC이 열리면 전 세계 언론 및 미디어에 경주의 모습이 노출된다. 경주는 다양한 유물이라는 볼거리를 갖춘 도시다. 최근 ‘황리단길’이라 불리는 경주 황남동 포석로 일대를 중심으로 놀거리도 발달하고 있다. 국내 관광객의 유입도 많아져 주말에는 경주에 숙소를 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여기에 해외 관광객이 합류한다면 경주는 한 번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일본 교토, 이탈리아 로마,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은 세계적 관광지다. 경주도 APEC을 통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APEC 개최만으로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선례가 있다. 2017년 APEC이 어디에서 열렸는 지 기억하는가.”
기억나지 않는다.
“베트남 다낭에서 열렸다. APEC이 열리기 전까지 다낭은 베트남 내에서는 잘 알려진 휴양지였으나, 해외 관광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APEC 개최 이후 전 세계에 다낭이 알려졌다. 이후 다낭은 베트남의 주요 휴양지로 거듭났다. 최근 한국 사람들도 다낭을 많이 찾아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까지 얻지 않았나. 경주는 이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문화의 뿌리 중 하나인 신라의 수도라는 이점이 크게 각광받을 것이다. 최근 K-팝은 물론 K-컬처 전반에 세계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때 APEC을 통해 세계적 관심을 끌어모은다면 전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2017년 11월 12일 베트남 다낭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트럼프 못 만난 점이 아쉬워
APEC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것 중 하나가 정상의 참석 여부다.“대부분의 가맹국은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로 각국이 협상해야 할 부분도 늘어났다. 과거 APEC에 비해 참석률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경주 APEC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도 참석할까.
“시 주석은 참석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장 내년 APEC 개최지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다음 해 개최국 정상은 무조건 참석하는 관례가 있다. 회원국 정상들이 내년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참석한 것도 같은 이유다.”
미중 관계가 좋지 않은데 시 주석이 참석한다면 미국 측이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미중 관계가 나빠서 오히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APEC 참석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도 시 주석을 임기 내 만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양국 관계가 나쁘니 따로 중국에 만나러 가거나, 시 주석을 미국에 초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때마침 APEC이라는, 미중 양국이 자연스레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있다. 이를 기회로 미중 양국 정상이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번 APEC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대통령도 아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는데.
“아쉬운 지점이다. 취임 후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가 마무리된 다음 날인 8월 12일 대통령실은 8월 25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밝혔다.) 6월 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이 초청됐으나 불참했다.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면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우방국과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던 기회다. 특히 나토 회원국 중에는 한국의 방위산업과 원자력 발전 등에 관심이 있는 국가도 많다. 이 기회를 놓쳤다.”
김 의원과 국민의힘 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6월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불참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며 기자회견도 열었는데,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미국이 이 대통령과 여당을 아직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과거 중국에 유화적인 발언과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 첫 탄핵 소추안이 문제였다. 첫 번째 탄핵소추안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미국 정가는 이 부분에 경악했다. 영 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세력은 어떤 외교를 지향하는 것이냐’며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에서 현 정부를 ‘친중 정권’이라 보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볼 위험이 있다. 그래서 걱정된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의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야당이 조현 외교부 장관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 적극 협조한 것도 한미 관계 회복을 위한 대승적 양보였다.”
2025년 6월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불참을 결정하자 이를 재고해 달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석기 의원실
K-팝 아이돌의 원류, 신라의 화랑
이번 APEC에 중국, 미국만큼이나 대만의 참석에도 관심이 모인다.“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주제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은 계속 APEC에 참석해 왔다. 이 같은 공존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름의 관례 덕분이다. 대만과 중국의 정상은 APEC에서 만나지 않는다. 대만은 총통 대신 전직 관료나 기업인이 APEC에 참석한다. 지난해 페루 리마 APEC 회의에는 린신이 대만 전 경제부 장관이 대만 대표로 참석했다. 202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회의에는 장중머우 대만 TSMC 창업자가 대만 대표를 맡았다.”
경주 APEC을 찾는 21개국 정상에게 경주를 소개한다면.
“경주에서 APEC을 연다는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경주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사건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경주는 한국의 문화 중심지다. 세계에서 각광받는 한국 문화의 원류가 경주에 있다. 심지어 K-팝 아이돌의 원류도 경주에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와 아이돌 사이에 접점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신라의 화랑이 고대 아이돌이다. 화랑은 무예만 뛰어나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외모도 출중해야 했으며 가무와 문장에도 능통해야 화랑이 될 수 있었다. 다재다능한 지금의 아이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국 정상에게 경주가 한국 문화의 원류 중 하나인 만큼 현재 한류 열풍과도 관련이 깊다고 소개할 계획이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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