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이재명에 불리하면 ‘사법살인’ 유리하면 ‘사법정의’

[강준만의 회색지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5-08-03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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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관 출신 주제에’는 민주당의 본심인가

    • 위증교사 사건 1심 무죄판결의 파장

    • “정치적 힘이 특별한 배려의 근거라면”

    • 이재명이 누린 ‘1.7%의 사법 기적’

    • 이재명 재판 판사들의 ‘부작위 편향’

    • 윤석열·김건희는 이재명을 도운 프락치였나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0월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 김우영이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김태규와 공방을 주고받다가 “인마, 이 자식아” “이 XX가” “법관 출신 주제에”라는 폭언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서 욕설을 주고받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었지만, “법관 출신 주제에”라는 말은 이례적이어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법관(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의원 장동혁은 나흘 뒤인 10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우영의 발언에 대해 “참 불편하고, 심한 모멸감까지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김우영이 더불어민주당 강성 친명 조직이자 최대 조직인 더민주 전국혁신회의의 초대 상임대표를 지낸 점을 들어 “강성 친명 중에서도 ‘찐명’ 핵심 측근 인사인 김 의원의 발언은 더불어민주당이 법관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며 “법관 주제에 감히 아버지 이재명 대표에 대해 유죄판결을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적개심도 묻어 있다”고 주장했다.

    ‘법관 출신 주제에’는 민주당의 본심인가

    이상한 일이었다. 국회의원이 언제부터 ‘법관 출신 주제’ 운운해도 좋을 정도로 서열이나 지위가 격상됐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혹 법관을 관리나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민주당 특유의 아비투스(습속)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민주당을 ‘1극 체제 정당’으로 만든 이재명에 대한 과잉 충성 경쟁의 부작용이었을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재명은 10월 30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김우영에게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다. 민주당 공보국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김 의원이 국정감사 중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과 관련하여, 이재명 대표는 김 의원에게 엄중 경고했다”며 “이와 함께 이 대표는 의원단 전체에 더욱더 언행에 유의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김우영에 대한 이재명의 경고를 두고 민주당 안팎에선 이재명이 11월 15일과 25일 있을 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를 염두에 둔 조치 같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 의원이 판사 출신인 김 대행에게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한 게 법원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대표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겠느냐”라고 했다. 그간 민주당 의원 중에서 김우영 발언보다 심한 막말과 폭언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재명이 문제 삼은 적은 거의 없었다.(조선일보 10월 30일자)



    2024년 10월 24일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및 소관 감사대상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참석했다. 뉴시스

    2024년 10월 24일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및 소관 감사대상기관에 대한 종합감사에 참석했다. 뉴시스

    다음 날 김우영은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해 당과 대표에게 큰 누를 끼쳤다”며 정무조정실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10월 31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민주헌정의 최후 보루는 법원이고, 법관의 양심을 믿는다”라며 “일선의 고된 법정에서 법의 양심에 충실하시는 모든 법관님들께도 사죄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법관 출신 주제에’라는 말은 김우영을 넘어 민주당의 전반적 정서이거나 본심일 수 있다는 걸 시사하는 사건이 이후 계속 벌어졌다.

    민주당은 11월 15일로 예정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에 대한 총력 대응에 나섰다. 무죄판결을 촉구하는 법원 앞 집회에 7000명(경찰 신고 인원)가량의 민주당 지지 인원이 한꺼번에 모이기로 했던 것이다. 특히 친명계 원외 단체 더민주혁신회의는 이재명 팬카페 등에서 “이재명을 지킵시다. 서초동으로 모입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참여를 독려했다. 전국 거점 지역마다 버스 10대를 대절하고 항공료까지 지원하며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한성진·이학인·박명 판사)는 “선거 과정에서 허위 사실이 공표되는 경우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돼 민의가 왜곡되고, 선거제도 기능과 대의민주주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라며 이재명에 대해 의원직 상실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다음 날 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 지역위원장·국회의원 비상 연석회의’를 열고 “법치가 질식하고 사법 정의가 무너진 날. 2024년 11월 15일을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라며 “정치 판결을 내린 사법부의 흑역사가 탄생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민주당이 주최한 집회에선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 “검찰 독재정권의 정적 제거에 부역한 정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전현희 등 민주당 의원 16명으로 구성된 민주당 사법정의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1심 판결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사법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전현희는 “검찰의 조작 수사를 그대로 인정한, 유죄 결론을 내리고 짜맞춘 사법 살인, 정치 판결”이라며 판결을 부정했고, 김민석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생각해야 가능한 판결”이라며 “오죽하면 서울 법대를 나온 게 맞냐고들 하겠나”라고 판사를 조롱했다. 박균택은 “피고인에 대한 안 좋은 감정, 편견을 갖지 않는 한 (1심 재판부가) 그렇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고, 박성준은 “(재판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가 이러했으니 지지자들이 판사의 개인정보를 털고 탄핵 주장도 서슴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재명에게 유리한 판결이면 무조건 ‘사법정의’, 불리한 판결이면 무조건 ‘사법살인’이었다. 판결이 있기 보름 전 “대한민국 민주 헌정의 최후 보루는 법원이고, 법관의 양심을 믿는다”라고 했던 김우영도 페이스북을 통해 “포악한 권력자에 굴복한 일개 판사의 일탈에 불과할 테지”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 권력자에 기댄 기득권자들, 저 한 줌의 기득권총연합은 단 한 번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적 없다”라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위정자의 편에서 법의 양심을 팔아 고난받는 야당 지도자를 법의 이름으로 척살하려 해도, 결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난을 이어갔다. 보름 전의 ‘사죄’는 마음에도 전혀 없는 빈말이었을까.

    2024년 11월 15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1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서 이 대표의 무죄판결을 촉구하는 집회(왼쪽)와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1월 15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1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서 이 대표의 무죄판결을 촉구하는 집회(왼쪽)와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위증교사 사건 1심 무죄판결의 파장

    열흘 후인 11월 25일 이재명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었다. 이 사건은 이재명이 2002년 당시 성남시장 김병량의 비리를 파헤친다며 KBS PD와 짜고 검사를 사칭해 벌금 150만 원을 확정받은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이재명이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이 사건에서 “누명을 썼다”라고 했다가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다시 기소되자 재판 과정에서 김병량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사건이다. 

    김진성은 위증 혐의를 인정했고, 이재명이 위증을 요구하는 듯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도 나왔다. 그래서 이재명의 여러 혐의 중 “가장 유죄 가능성이 높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14개월 전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 유창훈도 이례적으로 긴 분량인 총 892자의 기각 사유를 제시하면서 ‘위증교사 혐의’만 소명됐다고 봤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 유죄를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예상을 깨고 이재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례적인 데다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조선일보가 법률 데이터 기업 ‘엘박스’를 통해 2022년 이후 위증교사 혐의로만 기소된 1심 판결문 65건을 분석한 결과, 위증 교사 판결 중 위증범이 혐의를 인정하는데도 교사범이 무죄를 선고받은 건 단 1건에 불과했다. 이재명 사건과 달리, 위증 자백 자체를 믿을 수 없어 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재명은 김진성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성남시와 KBS 간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아가자는 협의가 있었다고 증언해 달라”고 했지만,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김진성이 “내용을 아는 게 없다”라고 하자 이재명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고 했다. 실제 김진성이 그런 취지로 법정에서 증언해 이재명은 ‘검사 사칭 누명 허위 발언’으로 기소됐던 사건에선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이재명은 김진성에게 자신의 변론요지서도 보내줬다. 그에 맞춰 증언해달라는 요청의 뜻은 없었으며, 위증교사 범죄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재명은 김진성으로부터 진술서 초안을 받아보고는 “좀 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게 써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방어권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조선일보 11월 26일자 사설 참고)

    국민의힘은 “위증한 사람이 유죄인데, 교사한 사람이 무죄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라며 펄펄 뛰었다. 의원 김기현은 “위증을 한 김진성 씨가 동기도 없이 전과자가 되기로 작심한 거냐”라면서 1심 판결을 ‘해괴망측한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의원 유상범은 “김진성 씨는 누구를 위해 왜 위증을 한 것입니까. 이익을 본 사람은 이재명 대표이고. 측근들로부터 집요하게 요구받아 거짓 증언한 것인데…”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재명 지지자들은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열흘 전 사법부에 맹비난을 퍼붓다 못해 모욕적 욕설을 퍼부었던 박찬대는 “민주주의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사법부는 옳은 결정을 내려왔다”며 “이번에도 사법부를 믿었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만 그랬겠는가.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저주하다가 마음에 드는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를 극찬하는 건 한국 정치판의 상습 관행이었다.

    “정치적 힘이 특별한 배려의 근거라면” 

    검찰은 “김진성 씨가 이재명 대표 부탁으로 허위 증언했다고 자백하고, 재판부가 이 대표 교사행위로 김 씨가 위증하였다고 판단해 김 씨에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이 대표에 위증교사의 범의가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리와 증거관계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닷새 후 항소하면서 재판부가 위증 과정 전체를 하나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았으며, 대신 재판부가 개별 증언들을 조각조각 나누어 이재명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무죄가 나왔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개혁신당 총괄특보단장 조응천은 “이재명과 (김진성 씨가) 30분에 걸쳐서 12차례 통화했다”며 이재명이 “기억을 되살려, 있는 대로 얘기해 달라”고 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어 “30분 통화하면서 12번이나 그 얘기를 했는데 ‘위증을 시킨 게 아니다’라고 한다”며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해외 출장 가는 부하에게 ‘야, 이번에 어디 간다며? 나 선물 사 오지 마’, 30분 동안 12번 ‘선물 사 오지 마’라고 한다면 그건 사 오라는 얘기지, 사 오지 말라는 얘기냐”라고 재판부 판단을 비판했다. 조응천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이가 계속 ‘선물 사 오지 마’라고 하자 ‘내가 선물 사 오면 혼내겠구나’라며 안 사 왔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제대로 (버틸 수 있겠냐)”라면서 “12번 ‘사실대로 얘기해 달라’고 한 (이 대표 역시)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라며 김진성 씨가 이 대표 말 속에서 뭔가를 느껴 위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평인은 ‘결론 내놓고 논리 꿰맞춘 기교 사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사람이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괜히 위증을 하지 않는다. 위증을 자백하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을 위증으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면 위증을 교사한 행위가 있고 위증으로부터 이익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재판부는 곤혹스러워하며 논리를 비비 꼬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론을 정해 놓고 결론에 논리를 꿰맞춰 판결하는 걸 기교(技巧) 사법이라고 한다. 재판부는 합의도 못 되는 협의라는 말을 사용해 한 번은 ‘협의가 없었다’, 한 번은 ‘협의가 있었다’가 진실이라고 하면서 논리의 전철기(轉轍機)를 조작했다. 고약한 법관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판결은 판결이다. 상급심에서 양식에 부합하는 설득력 있는 판결이 내려지길 바란다.”

    한국일보 고문 이준희는 “이번 위증교사 건은 지난해 영장판사가 증거인멸 여지도 없을 만큼 혐의가 분명하다고 단정한 사안이다. 이 판단이 뒤집혔다. 한마디로 ‘혐의가 소명됐다(영장판사) 해도 입증되진 않았다(1심 판사)’다. 위법행위는 확실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해되는지. 기교 사법이 원래 교묘한 말장난의 고급 표현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어떠한가. 물론 무리한 기소라는 점은 논외로 하고 순전히 이번 판단에 한정한 얘기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논거는 고의성 여부다. ‘그렇게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같은 것이다. 재판부는 부추긴 정도지, 고의적인 위증 요구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상대적 약자에게 기억에 반하는 내용을 제시하며 넌지시 압박하는 그림이다. 뭘 더 입증해야 고의성이 충족되나.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요구 수준을 유지한다면 더 다툴 것도 없다. 혹 지난 영장 기각이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선례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당시 결정문은 다시 읽어도 희화적이다. 분명히 죄를 지었고, 전에 증거인멸(위증교사)도 했지만 요번엔 증거인멸을 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순적 논리의 이유는 딱 하나, 그가 정당 대표라서다. 정치적 힘이 특별한 배려의 근거라면 모든 혐의에서 그는 이미 무죄다.”

    이재명이 누린 ‘1.7%의 사법 기적’

    2025년 3월 26일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최은정·이예슬·정재오 판사)는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허위 사실 공표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을 선고한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무엇보다도 이재명이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라고 한 발언을 ‘의견 표명’으로 판단했고, 또한 해당 발언이 유권자의 판단을 그르칠 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게 인상적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권영세는 “(이 대표) 항소심 재판의 모든 쟁점은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판단에 막대한 영향을 줬던 사건이다.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재판부의) 판단부터 잘못됐다”면서 “국토교통부 협박 발언이 ‘의견’이라는 것은 할 말을 잃게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의) ‘김문기 전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은 잘못된 것이고, 발언 전체 맥락을 봐야 하는 사안임에도 토씨 하나하나 따져서 무죄로 판결했다. 오히려 꼼꼼히 봐야 할 백현동 사건은 망원경으로 보듯 해서 죄가 없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원내대표 권성동은 “저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이 글이 판사의 판결문인지, 변호사의 변론서인지 잠시 헷갈렸다. 국민이 보기에 ‘무죄 결정 내리고 나서 논리를 꿰맞춘 판결’이라는 걱정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권순일 대법관의 과거 이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 강규태 판사의 무기한 재판 지연, 유창훈 판사의 구속영장 기각, 김동현 판사의 위증교사 1심 무죄판결 등 법원은 결정적 고비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워 이재명을 살려줬다.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사법부가 오로지 한 사람 앞에서만 너그러웠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번에도 4개월 전처럼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아니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감격했을 것이다. 법조계에선 ‘1.7%의 사법 기적’이란 말이 나돌았으니 말이다. 형사재판에서 1심 징역형이 2심 무죄로 뒤집히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최근 3년간 그 비율은 전체 사건의 1.7%에 불과했다. 0에 가까운 희박한 확률을 이재명이 뚫어냈으니, 이 어찌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 있으랴. 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은 이 ‘기적’을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원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오늘날, 이 후보 재판은 ‘정치화된 사법’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 후보에게만 ‘사법 기적’이 잇따르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이 후보 주변 인물들이 ‘법원 로비’ 운운한 발언은 자기 과시용 허언(虛言)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일부 판사들의 일탈 문제는 실재하는 위협이다. 절제되지 않는 정치 성향, ‘우리법연구회’ 같은 특정 집단의 이념적 편향성이 걸러지지 않고 판결로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재명 재판 판사들의 ‘부작위 편향’

    대통령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의 4·4탄핵선고로 파면됐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이 헌재의 파면 결정에 동의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끝난 건 아니었다.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2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으니 말이다. 대법원은 “2심이 이 후보 발언 의미를 잘못 해석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관 12명 중 10명이 유죄, 2명이 무죄 의견이었다.

    2심 판단이 안고 있던 문제점의 핵심은 무엇이었던가. 대법원은 “발언의 의미는 당시 상황과 전체적 맥락에 기초해 일반 선거인(유권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사후적인 세분 또는 인위적인 분절을 통해 연결된 발언 전부에 대한 표현 당시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사법쿠데타’라는 음모론을 외치며 유혈혁명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흥분하면서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6·3대선이 낳은 이재명 정권의 탄생이다. 정권 탄생의 최고 공신은 5인의 판사(유창훈·김동현·최은정·이예슬·정재오)였다. 지난 6월호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자면, 다음과 같다.

    2024년 11월 25일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로 복귀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1월 25일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로 복귀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이 구속되었다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2024년의 4·10총선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윤석열은 계엄에 눈을 돌리는 광기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이 11·25판결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윤석열은 1주일 후에 계엄을 선포하는 자폭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이 3·26판결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윤석열의 파면과는 무관하게 정국은 요동을 치면서 대선 전망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판사들이 내린 결정·판결의 공정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법은 수학이 아니기에 어차피 답은 없다. 지금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 아닌 이상 정치 관련 결정이나 판결은 절반의 정당성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고착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어떤 결정이나 판결을 내리건 진영으로 갈라져 원수처럼 적대하는 싸움판이 오히려 보호막이 된다. 절반은 비난하더라도 다른 절반은 환호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법리가 어떻다곤 하지만, 그건 만들어내기 나름이다.

    이건 냉소가 아니다. 어떤 정치 관련 결정·판결에 대해 수십 년간 법을 공부했거나 관련 경험을 쌓은 법 전문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보라. 법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처럼 똑같이 편이 나뉜다. 왜 그럴까. 이념과 정치 성향이 미친 영향이 가장 클 게다. 우리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명 방식에서부터 사실상 정당별 몫을 정해 나눠 먹는 걸 당연시 하고 있다. 이런 정치 과잉의 풍토에선 ‘사법의 정치화’가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판사의 이념과 정치적 성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부작위 편향’이다. ‘부작위 편향(不作爲偏向·omission bias)’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보다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손실에 덜 민감한 현상, 바꿔 말하면 움직이지 않았을 경우 돌아오는 손해보다 행동했을 때의 손해를 더 고려하는 현상이다.

    ‘행동하지 않은 책임’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책임은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기에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부작위 편향을 부추긴다. 미국의 NBA 농구 경기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접전인 경기의 결정적 순간엔 심판이 휘슬을 평소의 절반 이하로 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괜히 파울 선언을 해서 경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즉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 되고 싶다는 ‘부작위 편향’이 작동한 것이다.

    윤석열·김건희는 이재명을 도운 프락치였나

    정치적으로 매우 뜨거운 사건에 대해 결정이나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의 심리 상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의 목숨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며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 명이나 된다.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절반은 욕설과 저주를 퍼부을 것이며, 다른 절반은 환호와 찬사를 보낼 것이다.

    정치와 무관한 사건에서조차 “판결문을 쓰면 하룻밤에 몇 년은 늙어버린다”(박주영 부산지법 판사)고 토로하는 판사가 많은데, 그런 양극단의 반응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판사가 느낄 압박과 스트레스가 어떻겠는가.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그건 정말 못할 짓이다. 세상에 이런 극한 직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이재명 판결 등으로 대규모 집회가 있는 날마다 휴가를 내는 경우가 적잖은 건 집회의 열기 또는 광기가 무섭기 때문일 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특검 사무실에서 2차 대면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특검 사무실에서 2차 대면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끊임없이 사실상 강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판사들에게 압력과 압박을 가하고 의원들이 앞장서서 판사들에게 비난과 모욕을 퍼부어댄 이재명 민주당의 방식은 거칠고 야비했을망정 제법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사가 자신도 알게 모르게 ‘부작위 편향’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재명 재판에서 불거진 ‘부작위 편향’은 무죄를 선호한다. 유죄 선고는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열성 지지자들의 공황 상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무죄 선고 역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망정 유죄 선고 때의 압박이나 부담에 비해 그 정도나 강도가 훨씬 덜하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그냥 대선에 한 번 더 도전하는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반적 여론의 풍향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평가가 어떠냐는 것이다. 지지도가 보통 수준이라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지도가 매우 높거나 매우 낮은 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지지도가 높다면 이재명에게 불리하고, 지지도가 낮다면 이재명에게 유리할 것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윤석열의 행태와 연동돼 있었다. 이재명-윤석열의 관계는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왓어바웃티즘(whataboutism)’ 또는 ‘피장파장의 오류(tu quoque)’가 완벽하게 작동한 사례였다. 이재명과 민주당의 문제를 아무리 지적해도 여론은 “그럼 윤석열은? 김건희는?”이라는 반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윤석열과 그의 부인 김건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각종 크고 작은 사고를 쳤는데, 마치 이재명과 민주당을 돕는 프락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법관은 정녕 여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인가. 법관은 어떤 심리적 압력·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강철 멘털’의 소유자인가. 그건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거나 꿈일 뿐 현실은 아니다. 그런 이상을 전제로 한 사법 시스템의 설계와 운용은 ‘국민 사기극’이라 불릴 만한 집단적 환상이요 기만이다. ‘정치의 사법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논의는 그런 환상과 기만을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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