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사적 욕심에 일을 그르칠 때도 있다. 그때는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책임을 지면 된다. 고개를 숙이는데 뒤통수를 내려칠 한국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염치와 분수를 안다고 생각한 국힘 의원들이 재판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비판하고 대법관까지 늘리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닮아가는 듯하다.
우리가 지지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힘 지지율이 창당 이후 처음 10%대를 기록하는 참담한 오늘날에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무엇이 잘났다고 설전을 벌이는가.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했던 권영세·권성동 두 의원은 지금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연일 같은 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혁신위원장을 맡겠다던 안철수 의원이 며칠 되지 않아 당대표에 출마한다고 한 것도 마뜩잖지만, 그가 전임 지도부 책임론을 꺼내자 ‘쌍권’이 반발하는 것도 참 기가 찬다.
“어려운 상황 속 힘겹게 모은 혁신 에너지를 자신의 정치적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권성동)이라거나 “혁신위원장이라는 중책을 자신의 영달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로 삼은 것은 그 자체로 혁신의 대상”(권영세)이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건 당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오히려 당에 부담만 준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다선 의원들이 말싸움하는 장면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따지고 보면 권영세·권성동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시절 친윤으로, 당의 핵심 인사로 활동했고, 김문수-한덕수 후보단일화를 주도하다가 실패하면서 그 역할을 다했다. 그렇다면 윤 전 대통령 탄핵과 후보단일화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나 당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선배다운 행동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국힘 의원들 중에는 지지자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받아줄 ‘해우소(解憂所)’ 역할을 해주는 의원은 찾아볼 수 없다. 의원 모두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한소리 했다고 발끈하는 다선 의원들이 한심해 보이는 이유다.
물론 국힘 의원들은 ‘차기 총선까지 3년이나 남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헛발질’을 할 것이고, 그때서야 지역구 챙기면서 언론에 얼굴 내밀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권영세 의원은 또 조경태 의원이 7월 10일 “내란 특검 수사와 관련된 사람들은 스스로 당을 나가야 한다”고 하자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를 인용해 “악인들이 뭉칠 때 선인들도 단합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비열한 싸움 속에서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동정도 받지 못하는 제물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의 초상화. Gettyimage
한국의 보수는 어떤가. 역사에서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은 연속 탄핵을 당했다. 이념에 기대 실용주의(민생)를 날렸고, 파격적 변신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사가 아무리 짧다고 해도 정치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긴 호흡으로 시대와 여론이 원하는 정책을 갖춰 민심의 지지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때에, 한마디 한마디가 서운하다고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는 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 50대 초반, 경북 거주, 당원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