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투자는 진화의 또 다른 이름,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윤지호의 투자공방] ‘다윈의 핀치’처럼 진화하라

  • 윤지호 경제평론가

    입력2025-10-14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합리적 투자자’가 성공? ‘적응하는 투자자’가 승자!

    • 시장=거대한 생태계, 투자전략=진화 거듭하는 종

    • 다양한 ‘팩터’ 반영해야 급변하는 환경에도 살아남아

    • 끝까지 버티며 복리의 열매 거두는 사람이 승자

    시장에서 살아남는 이는 가장 똑똑한 투자자도, 가장 빠른 투자자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투자자다. AI 생성 이미지

    시장에서 살아남는 이는 가장 똑똑한 투자자도, 가장 빠른 투자자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투자자다. AI 생성 이미지

    한국 증시가 도약하고 있다. 정부의 강한 거버넌스 개혁이 이끌고, 글로벌 유동성 기대가 불을 지핀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이가 다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급등 뒤 급락’ 경험,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범람하는 투자 정보 등이 판단을 흐리게 했을 수 있다. 과거 들어맞던 잣대가 도무지 작동되지 않으면서 혼란을 느끼는 이도 다수다. 이럴 때면 “수출이 안 되는데, 어떻게 주가가 올라갈 수 있나” “뭔가 잘못됐다, 곧 시장은 합리적으로 변할 것이다” 등의 생각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접근은 항상 간명해야 한다. 복잡한 데이터보다, 본질을 짚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시장의 큰 변화에 적응한 이들만이 부를 늘려갔다. 최근 상황에서 소수의 포식자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이제 한국 증시는 주주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의 할인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한국 시장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환경이 변할 때는 이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합리적 투자자’가 성공? ‘적응하는 투자자’가 승자!

    강세장이 와도 부의 도약을 이루는 이는 소수다. 그렇다면 성공적 투자자는 합리적인가, 적응적인가. 필자의 답변은 후자다.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고, 투자자도 합리적이지 않다. 주식시장은 투자자라는 인간이 모인 곳에 불과하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고, 생물학적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고전적 물리학은 ‘합리적 기대’를 전제하는 ‘균형’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지만, 생물학은 ‘적응적 기대’를 전제하는 ‘진화’에 초점을 맞춘다. 시장 환경 변화에 적응한 사람만이 투자자로서 생존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계승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청산가치에 비해 할인된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그레이엄 방식의 가치투자에 머물지 않았다. 2016년 5월 버핏은 애플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고평가를 받는다고 인식되던 ‘테크 주식’을 편입한 것이다. 애플은 여전히 버크셔 헤서웨이의 최선호 종목이다. 그는 일본이 거버넌스 개혁에 들어서자, 2020년 8월부터 일본 5대 상사 주식을 편입하기도 했다. 버핏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변화에 적응했기에 생태계의 최상층에서 아직 건재한 것이다. 

    진화라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우리 삶에 들여온 이는 찰스 다윈이다. 비글호에 탑승한 다윈은 1835년 9월 그의 운명을 바꾼 섬, 갈라파고스를 만난다. 화산 지형의 섬에 서식하는 생물은 제한적이었지만, 놀랍게도 곳곳에 생김새가 다른 개체들이 넘쳐났다. 특히 ‘다윈의 핀치’라고 불리는 부리새는 하나의 종에서 생겨난 변종들로, 생존을 위한 적응 과정에서 다양한 부리를 갖게 됐다. 신학을 전공한 다윈이 진화를 받아들이는 건 매우 고통스러웠을 테다. 그러나 그는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한다. 생물종이 오랜 세월 동안 환경의 압력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 왔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말은 금융시장에서도 통용된다. 주식과 채권, 기업과 투자전략은 마치 생명체처럼 태어나고 경쟁하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 결국 시장은 거대한 생태계이고, 투자자와 투자전략은 그 안에서 진화를 거듭하는 종과 같다. 돌연변이, 경쟁, 자연선택이 종의 운명을 결정하듯,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투자자나 기업이 승자가 돼왔다. 

    닷컴 버블 당시 많은 투자자가 이른바 인터넷기업에 열광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대다수 회사가 문을 닫았고, 생태계에 끝내 적응한 아마존과 구글 등 극소수 기업만 살아남아 글로벌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도 비슷하다. 전기차는 한때 ‘미래의 유행’ 정도로 여겨졌지만, 환경 규제와 기술 혁신이라는 변화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테슬라는 이 변화에 적응한 기업이다. 반대로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이처럼 시장 역시 ‘적자생존’의 원리로 움직인다.

    다양한 ‘팩터’ 반영해야 급변하는 환경에도 살아남아

    자연에서 새로운 종은 돌연변이를 통해 나타나고, 환경에 맞으면 번성한다. 투자전략도 마찬가지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미국의 비디오게임 유통체인 ‘게임스톱’과 영화관 체인 ‘AMC’ 같은 종목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투자자들의 집단행동에 힘입어 폭등했다. 이는 진화론에서 말하는 돌연변이 현상에 가깝다. 새로운 환경, 즉 초저금리와 SNS의 결합에 힘입어 번성한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유동성이 줄어들자 이 종목들은 무너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2020년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종목이 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일부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 주도주 자리를 지켰지만, 다른 기업들은 급격히 힘을 잃었다.

    다윈은 다양성이 생태계의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봤다. 하나의 숲에 같은 종류의 먹이에 의존하는 생물만 살면, 그 먹이가 사라지는 순간 생태계가 무너진다. 그러나 다양한 종이 공존하면 일부가 멸종해도 생태계는 유지된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은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면 특정 자산이 무너져도 전체 포트폴리오는 살아남는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주식이 폭락했지만, 국채와 금 같은 자산은 상승했다. 이처럼 포트폴리오라는 생태계에 여러 종을 심어두면 위기에 대한 회복력이 높아진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투자자들은 ‘팩터’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가치주와 성장주, 대형주와 소형주로 분류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포트폴리오에 다양한 팩터를 나눠 담는 것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을 함께 키우는 것과 같다. 경기침체기라는 혹한기에는 안정적 현금흐름을 가진 대형 가치주가 유리하다. 반대로 경기회복기라는 풍요로운 시기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소형 성장주가 번성한다. 모멘텀이나 품질 같은 팩터 역시 저마다 생존 전략을 지닌다. 어떤 종은 속도로, 어떤 종은 체력으로 살아남는다.

    팩터 개념은 금융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가장 기본적인 모형은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이다. 경제학자 윌리엄 샤프는 CAPM 모델을 기반으로 ‘베타’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베타는 특정 자산이 시장 위험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나타낸다. 이는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측정하는 가늠자가 됐다. 투자 성과가 시장 전체의 움직임(베타)에 의한 것인지, 펀드매니저의 능력(알파)에 의해 발생했는지를 따지게 된 것이다. CAPM은 한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시장 전체의 위험에 의해 설명된다고 본다. 위험을 더 지는 자산은 더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형은 한계가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등장한 것이 1993년 금융경제학자 유진 파마와 케네스 프렌치의 ‘파마-프렌치 3-팩터 모형’이다. 그들은 윌리엄 샤프의 시장 요인(베타)에 가치(Value)와 규모(Size)라는 두 팩터를 추가했다. 연구 결과, 장기적으로는 저평가된 가치주가 고평가된 성장주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소형주가 대형주보다 위험하지만 장기적으로 초과 수익을 내는 경향이 있었다.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 “환경 변화 속에서 작은 종이나 저평가된 종이 의외로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1997년 금융학자 마크 카하르트는 여기에 모멘텀을 더한 ‘카하르트 4-팩터 모형’을 제시했고, 2015년 파마와 프렌치는 기업의 수익성과 투자 팩터까지 보강한 ‘파마-프렌치 5-팩터 모형’을 제시한다. 오늘날 팩터 투자는 학문적 이론을 넘어,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실제 사용하는 투자 철학이 됐다. 블랙록이나 AQR 같은 운용사는 다중 팩터 전략을 활용해 다양한 종을 조합해 생태계를 구성하듯 포트폴리오를 꾸린다.

    팩터 투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는 단순히 ‘주식 몇 종목을 고른다’ 수준을 넘어선다. 오히려 시장 환경에 따라 어떤 유전자가 유리하게 작용하는지를 고민하는 행위에 가깝다. 경기 확장기에는 모멘텀이, 불황기에는 가치와 품질이, 저금리 국면에서는 성장과 투자 요인이 상대적으로 힘을 가진다. 각 팩터는 마치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을 가진 종과 같고, 시장이라는 환경이 바뀔 때마다 그 우열이 달라진다.

    9월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처음으로 3400을 돌파했다. 뉴스1

    9월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처음으로 3400을 돌파했다. 뉴스1

    문제는 투자자 자신이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본능을 발전시켰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한다. 원시시대에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은 생존 확률을 높였지만, 오늘날 이는 군중심리로 나타나 금융시장에 버블을 만들어낸다. 손실을 피하려는 본능은 전쟁이나 사냥에서는 유리했지만, 투자에서는 장기 수익을 포기하게 만든다. 자신감 과잉 역시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장에서는 과도한 거래와 손실을 부른다. 결국 살아남는 투자자는 본능을 제어하고 이성적 규율을 따르는 사람이다. 버핏이 “다른 사람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고 말한 것도 이 맥락이다.

    끝까지 버티며 복리의 열매 거두는 사람이 승자

    투자전략도 환경에 따라 진화한다. 과거에는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대다수 펀드매니저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 존 보글이 만든 인덱스펀드가 주류가 됐다. 포식자와 먹이종의 균형이 바뀌듯, 시장의 지배 전략이 교체된 과정이다. 최근 인공지능(AI)과 퀀트 모델이 새로운 돌연변이처럼 등장했다. 초고속 거래, 머신러닝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구성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투자 방식이다. 이 역시 시장이라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일시적 유행에 그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진화론은 투자자에게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첫째, 다양성을 유지하라. 숲에 대나무만 가득하다면, 대나무에 의존하는 판다는 살아남겠지만 갑작스러운 병충해로 대나무가 멸종하면 모두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나무와 풀이 공존하는 숲은 일부가 쓰러지더라도 숲 전체는 유지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IT 기업’만 보유한 투자자는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치명적 손실을 입었다. 같은 시기 부동산이나 채권 투자를 병행한 이는 포트폴리오 전체를 지킬 수 있었다. 다양성은 단순히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가 아니다. 환경이 급변할 때 살아남을 확률을 높여주는, 말 그대로 생존 전략이다. 분산투자란 숲에 여러 종을 심어두는 것과 같다.

    둘째, 환경에 적응하라.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환경’이다. 매머드가 빙하기에서는 최강자였을지 몰라도, 기후가 따뜻해지자 거대한 몸집이 오히려 독이 돼 멸종했다. 투자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저금리 시대에는 성장주가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안정적 현금흐름을 가진 가치주가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미국의 ‘오일 쇼크’ 때도 마찬가지다. 그간 잘나가던 제조업 기업은 원유 가격 폭등에 흔들렸지만, 석유 기업은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투자자는 “나는 가치투자자다” “나는 성장주 투자자다” 등 정체성에 집착하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을 관찰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을 무시하는 종은 멸종하며, 금융시장도 다르지 않다.

    셋째, 장기 생존에 집중하라. 진화의 세계에서는 한때의 왕이 최종 생존자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공룡은 수천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지만, 소행성 충돌과 환경 변화 앞에 무너졌다. 반면 작은 몸체의 포유류는 회복력과 적응력 덕분에 살아남았고, 일부는 인류로 진화했다. 투자의 세계에서 단기 성과는 착시일 수 있다. 그해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펀드가 10년 후에도 살아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꾸준히 시장 평균을 지키거나 약간 웃도는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를 만든다. 단기적으로는 누구나 대박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수십 년을 버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투자에서 승자는 가장 큰 수익률을 기록한 이가 아니라, 끝까지 시장에 남아 복리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다.

    결국 금융시장은 진화의 무대다. 수많은 종이 등장하고, 경쟁하고, 멸종한다. 다윈의 명제를 다시 떠올려 보자. ‘다윈의 핀치’라고 불리는 부리새는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결과였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이는 가장 똑똑한 투자자도, 가장 빠른 투자자도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투자자다. 투자는 진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윤지호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