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좀 다른 이재명의 ‘상식’
대선 패배 직후 주식투자, 아들 결혼식의 적절성
李 ‘검사 사칭’ 사건, 처음부터 공모
‘기교 사법’ 의혹이 제기된 ‘위증교사’ 재판
“우리가 성남시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개방성·투명성을 비방·홍보 용도로 쓴 李의 ‘내로남불’
2019년 1월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경기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그는 친형 고 이재선 씨 강제 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허위 선거 공보물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뉴스1
중앙대 법대 동기로 만나 이재명의 변호사 사무장을 맡으면서 평생의 지기가 된 이영진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간단해요. 질 사건은 안 하는 거죠(웃음). 질 게 분명한 걸 가지고 소송하려고 하면 ‘하지 마라, 해도 진다, 시간과 돈만 날린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이재명은 1991년 3월에 결혼해 1992·1993년에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뒀다. 그의 아내는 셋째 형수 박인복이 소개해 준 3년 연하의 김혜경이었다.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나온 김혜경은 오늘의 이재명을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일반적인 ‘상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줬다는 점에서 말이다. 남들과는 좀 다른 이재명의 ‘상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재명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김혜경에게 전세보증금 일부를 빌리려고 했다. “5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김혜경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빌려주지 않았다. 집에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식구들이 그 사람 진짜 변호사 맞는지 사무실에 가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재명의 해명을 들어보자.
“우리 집에서는 돈이 필요하면 누구든지 능력이 닿는 대로 만들어서 함께 해결하는 것이 당연했단 말이에요. 더구나 내가 안 갚아줄 것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이니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려고 한 건데, 하마터면 그것 때문에 차일 뻔했어요.”
책 ‘인간 이재명’에서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저자 김현정과 김민정은 “김혜경은 여유와 교양을 갖춘 가정에서 성장한 반듯한 시민이었다. 그녀에게는 화전민의 집에서 태어나 소년공으로 자란 그에게는 없는 여유와 교양이 체화돼 있었다”며 “이재명이 갖춘 시민으로서의 교양, 그 8할은 아내인 김혜경으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었다”라고 했다.
대선 패배 직후 주식투자와 아들 결혼식의 적절성
이재명은 아내 덕분에 여유와 교양을 갖춘 중산층 가정의 상식에 많이 익숙하게 됐지만, 바뀌지 않는 것도 있었다.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여당 후보가 패배 직후 주식투자를 하는 게 상식적인가. ‘미디어오늘’(2022년 10월 17일)의 다음 보도를 감상해 보자.“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직후 방위산업체 주식 2억3000여만 원어치를 샀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매각 처분한 사건을 두고 당 내부에서도 ‘실망스럽다’는 호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선 패배 후 지지자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혼자만 정신 차리고 사적인 주식거래를 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재명은 “선물·옵션까지 손을 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세금만 빼고 전 재산을 날린 적도 있다”고 했는데(한국경제, 2021년 5월 30일자), 그 병이 또 도진 걸까. 당시 이재명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었기에 ‘이해 충돌’ 문제까지 불거졌다. 오죽하면 그간 이재명을 적극 지지해 온 민주당 의원 전재수마저 비판하고 나섰을까. 그는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이 후보와 민주당을) 지지했던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뉴스도 못 보고, 널브러져 있는데 이게 혼자 정신 차리고 주식거래를 한다?”라며 “지지자를 생각하고, 또 일국의 대선후보,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는데 개인적 이익, 사익에 해당하는 주식거래는 …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실망’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주필 양상훈은 칼럼에서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를 오랫동안 봐온 필자도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본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할 것이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도 몇 달은 스스로를 추스르며 보낸다. 그런데 어떻게 대선이란 전 국가적 시험대에서 실패한 사람이 곧바로 주식을 사는가. 속칭 ‘강철 멘털’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이재명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열흘 만인 2025년 6월 14일에 치른 큰 아들의 비공개 결혼식도 좀 이상하다. 고위공직자들은 보통 이런 경우엔 결혼식을 아주 작게 치르거나 축의금을 받지 않는 걸 확실하게 공표하는 게 일반적 상식이다. 그런데 하객이 900명 내외(신랑 500여 명, 신부 300여 명)로 추정된 데다 온라인 청첩장을 통해 아들의 계좌번호가 유포됐다니 이게 상식적인가.
이 계좌번호는 오래지 않아 삭제됐다지만 누군가 이를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해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잖은가. 국민의힘 의원 김기현은 자신의 SNS에 “한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사법연수원 동기 모임 단체방에 이 청첩장을 올렸고, 누군가가 이를 퍼 날라 온라인에서 확산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신동아, 2025년 8월호). 이게 사실이라면, 이재명은 논란이 일기 전엔 계좌번호가 있는 청첩장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게 아닌가. 언론에서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면 받지 않았다고 밝혀주는 것이 좋겠다”는 요청까지 나왔지만, 이재명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해 없길 바란다. 지금 나는 이재명의 주식거래나 아들 결혼식의 적절성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이재명의 ‘상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를 위한 변명이나 옹호론이 될 수도 있다. 즉 일반적 상식의 관점에서 보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일 수 있지만, 이재명이 체득한 상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가 되지 않는 오해일 수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재명은 2025년 7월 14일 예비 공무원(5급 공채 합격자)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공직자는 청렴해야 한다”며 “돈이 마귀라고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부패한 사람으로 온갖 음해를 당해서, 공격당해서 이미지가 ‘저 사람 뭐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정말 치열하게 제 삶을 관리해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내가 대통령의 참모라면 이재명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한사코 말렸을 것이다. 앞으로 때때로 거론하겠지만, 이재명은 자신을 예로 들면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청렴하게 살았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제쳐놓더라도 2024년 11월 27일 국민의힘 의원 주진우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다음 주장은 어떤가. “부인에게 법인카드를 통째 맡겨 생활비로 쓰게 하고, 관용차를 뽑아 ‘사모님’ 전용으로 2년간 집에 두고 쓴 걸 용납할 국민이 있을까요. 이 의혹은 이 대표가 ‘몰랐다’고 할 수가 없기에 아킬레스건이 될 겁니다.”
물론 1주 후인 12월 3일 윤석열이 종국엔 정권을 이재명에게 헌납하는 ‘계엄 자폭’을 저질렀기에 주진우가 말한 ‘아킬레스건’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재명이 자신의 청렴을 스스로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이는 지금 내가 역설하고 있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상식의 괴리’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검사 사칭’ 사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변호사 이재명은 지역문제에 깊이 관여하면서 1995년 3월 ‘성남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발족시켜 사실상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언론을 이용하는 데에 꽤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분당구 일원의 용지 변경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던 이재명은 조선일보 1999년 10월 16일자에 “그대로 놔두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변호사·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 소개된 그는 “건설업체와 지주인 토지공사는 막대한 이익이 있지만 성남시와 분당 주민들은 손실과 고통만 강요받는 사업이다”라고 주장했다(그러나 20년 후 자신이 성남시장이 돼 추진한 대장동 개발 과정에선 민간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그러다가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이 터지는데, 이 사건은 당시 분당파크뷰특혜분양사건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재명의 향후 정치 이력에 큰 약점이 되는 이른바 ‘검사 사칭’ 사건의 배경이 됐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재명의 성격이나 인성은 물론 ‘만독불침의 방법론’에 대해 많은 걸 시사해 주기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2년 5월 10일 오전, 이재명의 사무실에 KBS 시사 프로그램 ‘추적60분’ 담당 PD 최철호 등 제작진이 찾아왔다(처음엔 대부분의 기사에서 PD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됐으나, 나중에 실명으로 등장해 기자회견까지 했기에 여기에선 실명을 쓰도록 하겠다). 제작진은 이재명의 제보 전화를 받고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때 이재명은 성남시장 김병량의 분당 파크뷰 비리 관련설을 퍼뜨리기 위해 최철호에게 수원지검 검사 이름을 알려주고, 그 검사를 사칭해 김병량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옆에서 질문 내용도 알려줬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황대진은 훗날 칼럼(2023년 9월 13일자)에 다음과 같이 썼다.
“통화 후 피디가 검사 사칭 녹음을 그대로 보도할 수 없다고 하자, 이재명은 ‘제3자가 방송사에 제보하는 식으로 하자’며 자신이 제보자인 양 연출하고 얼굴을 가린 채 테이프를 건네는 장면을 찍었다. 공범이 제3자로 둔갑한 것이다. 조작된 방송이 나가고 김병량이 이재명을 고소하자 이재명은 무고라며 김 시장을 맞고소했다. 가짜 뉴스를 만든 장본인이 피해자를 무고죄인으로 만들려 했다.”
이 사건으로 둘 다 구속됐다가 이재명은 150만 원 벌금형, 최철호는 선고유예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선거 때마다 다시 소환되지만 이재명이 단호하게 ‘억울한 누명’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곤 했던바, 여기서 미리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2022년 2월 2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KBS 최철호 PD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선거 공보물에 기재한 ‘검사 사칭’ 전과 기록 관련 판결문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또 2022년 대선에 출마한 이재명은 2월 전국 유권자 가정에 발송한 법정 선거공보물에서 “방송PD가 이 후보를 인터뷰하던 중 담당 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 사항을 물어 알려줬는데, 법정다툼 끝에 결국 검사 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됨”이라고 소명했다. 자신이 범죄를 주도한 것은 아니란 취지였다.
하지만 당시 1~3심 법원 판결에는 공보물 내용과 달리, “(이재명이) 처음부터 PD와 공모했다”는 취지의 사실이 기록돼 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재명)이 PD와 공모해 검사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공범의 질문에 대답하고 알려준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모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사실관계는 1심에서 대법원 최종심까지 한 번도 뒤집히지 않고 유지됐고, 확정됐다(조선일보, 2022년 2월 24일자).
2022년 3월 4일 최철호가 이재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성남시장 김병량과 통화 시) 제가 질문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그때마다 (당시) 이재명 변호사가 추가로 질문할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서 저한테 보여줬다”며 “답변이 원하는 대로 나오면 이 변호사는 손가락으로 둥글게 표시해서 만족스러워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거짓말을 멈추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선거공보물을 뿌렸으며 지속적인 허위 사실 유포로 제 명예를 회복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고 했다.
2023년 4월, 김병량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이 2018년 12월 수차례에 걸친 이재명의 전화 요청을 받아 위증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진성은 2019년 2월 이재명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병량 전 시장 측에서 이재명을 검사 사칭 주범으로 몰기 위해 PD 고소는 취하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당시 김진성의 재판 진술이 위증이라는 혐의를 잡았지만, 김진성은 초기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다가 검찰이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재명과 김진성이 통화한 녹음 파일이 나왔다. 영장 실질심사 때 검찰이 김진성 앞에서 그 녹음 파일을 재생함으로써 김진성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영장이 기각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김진성은 “초기 조사 때는 기억이 안 났는데, 직접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위증 혐의를 부인하기가 어렵다. 이 대표가 특정 진술을 요구한 것이 맞는다”라고 진술했다.
2024년 9월 30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검사 사칭 위증교사 혐의’ 결심 공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예상을 깨고 이재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뉴시스
‘기교 사법’ 의혹이 제기된 ‘위증교사’ 재판
2024년 5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부장판사 김동현)에서 열린 이재명의 위증교사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철호는 검사 사칭 사건 당시 이재명 측이 “최 PD가 KBS로부터는 경징계를, 김병량 시장으로부터는 고소 취하를 약속받아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대한민국 변호사가 저런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히 경악스러웠다”고 했다. 최철호는 또 검찰이 검사 사칭 녹음 테이프와 관련해 “제작에 관여한 바 없고, 경위를 알지 못한다. 나는 제보받아 발표만 했다”는 식의 이재명 진술서를 보여주자 “(당시) 제1야당 대표가 저런 식으로 허위 발언하는 것 자체가 충격”이라고 했다.최철호는 당시 검찰 조사에서 처음엔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인정했다. 그는 “나와 이 대표 둘만 있던 게 아니라 카메라맨, 오디오맨도 있었는데 검찰이 그들에게 별도의 진술서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면 동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게 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입장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 조사에서 익명 제보자로부터 받은 거라고 진술할 거란 이 대표 말을 믿고 허위 진술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해당 녹취록을 방영한 경위도 설명했다. 애초 육성 녹음 파일 내용을 자막으로 처리하기로 했지만 이재명의 제안으로 육성 방송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한국일보·조선일보, 2024년 5월 27일자).
김진성과 최철호의 새로운 증언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예상을 깨고 이재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례적인 데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조선일보가 법률 데이터 기업 ‘엘박스’를 통해 2022년 이후 위증교사 혐의로만 기소된 1심 판결문 65건을 분석한 결과, 위증교사 판결 중 위증범이 혐의를 인정하는데도 교사범이 무죄를 선고받은 건 단 1건에 불과했다. 이재명 사건과 달리, 위증 자백 자체를 믿을 수 없어 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적어도 정서적 측면에선 이재명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점도 있었으니, 그건 검찰이 22년 전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된 발언으로 이재명을 법정에 세웠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통령 윤석열의 오만하고 무능한 실정과 그로 인한 낮은 지지율, 부인 김건희의 ‘국정 농단 의혹’, 특히 김건희의 사법리스크와 관련해 국민적 신뢰를 전혀 얻지 못한 윤석열 검찰에 대한 불신은 애초에 ‘무리한 기소’였다는 여론을 일정 부분 조성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여론과 정서로 재판을 하는 건 아니므로 재판부가 그런 가능성을 인정할 리는 만무했다. 그러니 재판 자체만 놓고 따져보는 게 옳으리라. 이재명은 김진성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성남시와 KBS 간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아가자는 협의가 있었다고 증언해 달라”고 했지만, 이 요청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김진성이 “내용을 아는 게 없다”고 하자 이재명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고 했다. 실제 김진성이 그런 취지로 법정에서 증언해 이재명은 ‘검사 사칭 누명 허위 발언’으로 기소됐던 사건에선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통상적인 증언 요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전 민주당 의원 조응천은 “이재명과 (김진성 씨가) 30분에 걸쳐서 12차례 통화했다”며 이재명이 “기억을 되살려, 있는 대로 얘기해 달라”고 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어 “30분 통화하면서 12번이나 그 얘기를 했는데 ‘위증을 시킨 게 아니다’라고 한다”며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해외 출장 가는 부하에게 ‘야, 이번에 어디 간다며? 내 선물 사 오지 마’, 30분 동안 12번 ‘선물 사 오지 마’라고 한다면 그건 사 오라는 얘기지, 사 오지 말라는 얘기냐”고 재판부 판단을 비판했다. 조응천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이가 계속 ‘선물 사 오지 마’라고 하자 ‘내가 선물 사 오면 혼내겠구나’라며 안 사 왔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제대로 (버틸 수 있겠냐)”라면서 “12번 ‘사실대로 얘기해 달라’고 한 (이 대표 역시)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라며 김진성이 이재명의 말 속에서 뭔가를 느껴 위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평인은 ‘결론 내놓고 논리 꿰맞춘 기교 사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처벌 위험을 감수하고 괜히 위증을 하지 않는다. 위증을 자백하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을 위증으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면 위증을 교사한 행위가 있고 위증으로부터 이익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재판부는 곤혹스러워하며 논리를 비비 꼬았다.” 한국일보 고문 이준희도 칼럼에서 ‘기교 사법’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렇게 개탄했다. “논거는 고의성 여부다. ‘그렇게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같은 것이다. 재판부는 부추긴 정도지, 고의적인 위증 요구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상대적 약자에게 기억에 반하는 내용을 제시하며 넌지시 압박하는 그림이다. 뭘 더 입증해야 고의성이 충족되나.”
이렇듯 따져볼 의문점이 많은 판결이었지만, 2·3심의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재명 재판은 모두 다 중단됐고, 이재명의 임기가 끝난 후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른바 ‘입법독재’로 이재명과 민주당 정권의 안전보장을 위해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데다 사법부마저 적극 통제하려는 기세로 달려들고 있잖은가.
“우리가 성남시 정치권력을 장악하자”
이재명이 ‘검사 사칭’ 등과 같은 험난한 활동을 하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이었다. 그는 훗날 한겨레(2015년 5월 30일자) 인터뷰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다 정치인이 된 계기는 뭔가?”라는 질문에 “성남시는 공공의료가 부족했다. 2002년부터 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다. 경로당 찾아다니며 어렵게 시립의료원 설립 조례 주민 발의를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1년 이상 걸린 일이었는데 시의회 의원들이 47초 만에 부결시켜 버리더라. 당시 방청하던 사람들이 울고 시의회 책상으로 뛰어올라가고 도망가는 의원들 잡으러 쫓아다녔다. 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재물손괴·치상 등의 이유로 수배됐다. 2004년 3월 28일 수배 중에 성남 주민교회 지하실에 숨었는데, 그때 보건의료노조 간부였던 선배(정해선)와 밥을 먹었다. 서럽더라. 울면서 ‘그냥 내가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정해선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죠?”라고 묻자, 이재명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성남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겁니다. 세상을 바꾸고, 시의회 의원들을 바꿔야지요.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을 바꿔야죠.” 이재명은 훗날에도 이 결심을 한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재명은 이 의회 난입 사건으로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고, 2004년 7월 혈중알코올 농도 0.158%로 음주운전을 하다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검사 사칭 의혹 사건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은 걸 포함해 이런 기록은 이후 이재명의 선거 출마 때마다 따라붙는 전과로 남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비서실장이자 팬카페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선에서 조성준에 밀려 탈락했고, 대신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후보 고흥길에 밀려 낙선했다. 이재명은 이런 일련의 실패 끝에 2년 후 성남시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
시청을 시민에게 전면 개방한 이재명
세 차례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재명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초인적 투쟁의 결과였다. “나는 명함을 거의 60만 장 가까이 돌렸고, 성남시 전역을 세 바퀴 이상 돌았다. 골목골목을 다니며 그야말로 팔다리가 쑤시도록 유권자와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이재명, ‘이재명은 합니다’). 명함을 너무 열심히 돌린 탓에 선거 당시 산성역에서 명함 300장을 배포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 원을 부과받기도 했다.이재명은 취임 직후인 2010년 7월 비공식 부채 7285억 원을 상환하기 어렵다며 모라토리엄(채무 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비공식 부채란 재무제표에 기재된 부채는 물론이고 재무제표상에 잡히지 않았지만 지급해야 할 실질적 빚을 말한다. 이는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파격 조치였지만, 두고두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성남 시민에게 모라토리엄보다 더욱 실감 나는 변화는 ‘초호화 청사’라는 성남시청을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시청 9층에 있던 시장실을 시청사 현관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곧바로 다다를 수 있는 2층으로 옮겼으며, 청사 안 공무원 전용 체력단련장(헬스클럽)도 시민에게 돌려줬다.
시장실 이전에 대해 직원들은 물론 관할 중원경찰서장도 시장실이 점거라도 당하게 된다면 직위 해제된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재명은 “절대 점거 안 당한다. 만약 점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자리 펴주고 이불 내주면서 동의해 주겠다. 승낙하면 점거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다.
실제로 점거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재명은 농성자들의 민원 요구에 “법률상 불가능합니다. 안 됩니다”라는 뜻을 단호하게 밝히면서 그들에게 시장실 열쇠를 주고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막상 농성을 하겠다던 사람들은 10시쯤 농성을 풀고 집으로 다 돌아갔다. 이후 수차례의 집단 농성 사태가 빚어졌지만 “법에 저촉되는 일에는 일절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자, 시장실을 점거하는 집단 민원이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말끔하게 사라지게 됐다.
이재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실은 언제나 개방돼 있습니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시장실을 전면 개방했다. 시민은 아무런 절차 없이 언제건 불쑥 들어와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고, 원한다면 시장실 안에서 이재명과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어린이가 몰려들었다. 시장실엔 하루에 대략 10팀 정도가 방문하곤 했다.(이재명, ‘이재명은 합니다’, 백승대, ‘이재명, 한다면 한다’)
당시 나온 언론의 인터뷰 기사들은 시장실에 모여 놀고 있는 어린이의 풍경을 전하면서 이재명에 대한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에 큰 기여를 했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이재명과 더불어 성남 시민운동의 ‘쌍두마차’로 불린 신상진(현 성남시장)은 이재명과 함께 시민운동하던 시절 시(市)를 상대로 ‘투명 시정’을 요구했지만, 정작 이재명이 시장에 당선된 이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재명은 당시 시장과 싸우는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성남시에 “투명하게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고 자주 말했지만, 정작 본인이 시장이 된 후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방성과 투명성을 비방과 홍보의 용도로 쓴 이재명의 ‘내로남불’을 지적한 셈인데, 이런 논란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다음호에 계속)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