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동맹은 절대 안전망 아니다, 외교적 다각화 병행하라”

[글로벌아이] 트럼프-모디 ‘파탄 난’ 브로맨스가 韓에 울리는 경종

  • 송승종 대전대 특임교수·국제분쟁 전문가

    입력2025-09-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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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사나운 늑대’라면 인도는 ‘고집 센 나귀’

    • 左 파키스탄 右 중국 상대해야 하는 인도의 딜레마

    • 러시아산 석유 수입, 브릭스·SCO 가입한 인도

    • 印 구조적 요인은 ‘장작’, 美 트럼프 스타일은 ‘부싯돌’

    • 25년간 쌓아온 美·印 관계, 25시간 만에 무너져

    • 트럼프·모디 브로맨스 파탄, 중국에는 ‘전략적 횡재’

    • ‘무질서 세계’ ‘동맹 없는 세계’ 불안정 상징한 경고음

    2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2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21세기 들어 미국과 인도는 20세기 냉전기 동안의 불신을 극복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인(訪印)을 시작으로 2005년 부시 행정부는 인도의 민간 핵 프로그램을 승인하며 30년간의 핵 갈등을 봉합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임에도 핵 교역 참여를 허용한 이 조치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떠오른 인도의 위상을 상징한다. 2016년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를 ‘주요 방위 파트너’로 인정하고, 2020년까지 군수지원·통신호환·안보협력·정보보안 등 4개 분야에 걸쳐 기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군사정보 공유 및 상호운용성의 제도적 토대를 완성했다. 

    2014년 나헨드라 모디 총리 시대에 들어서는 미국 주도의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 회담)와 인도·태평양전략 참여로 양국은 ‘민주주의 동맹’을 구축했다. 2019년 재집권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 그해 모디의 미국 국빈 방문 때 휴스턴에 5만 명이 모인 ‘하우디 모디(Howdy Modi)’ 행사나 2020년 트럼프의 인도 국빈 방문 시 아메다바드에서 열린 ‘나마스테 트럼프(Namaste Trump)’ 행사 같은 대규모 집회를 계기로 양국 간 전략적 협력관계가 심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인도는 왜 초강대국이 되지 못했나

    인도를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시키려는 야망에 사로잡힌 모디는 트럼프의 열렬한 ‘광팬’을 자처했다. 세계 최강 민주국가(미국)와 세계 최다 인구 민주국가 간 ‘공유가치 기반의 글로벌 파트너십’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축으로 부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5년 2월 백악관 정상회담 이후 관세 문제와 외교적 불일치가 불거지면서 두 정상 간의 개인적 친분 관계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거래주의적 압박과 모디의 전략적 자율성 집착이 결국 양국 관계를 냉각시키며 ‘브로맨스’의 종말을 예고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인도보다 러시아산 석유를 더 많이 사들이는데, 왜 미국은 중국보다 인도에 더 가혹한 관세를 부과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50% 관세를 부과한 인도와 달리 중국에는 올해 11월까지 한시적으로 30%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그러니 어째서 중국보다 인도에 더 높은 관세를 매기는지 의문이 생길 만하다.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은 구할 수 없지만, 아마도 미국 입장에서 ‘중국보다 인도가 만만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누가 뭐래도 미국과 맞장을 뜰 수 있는 G2인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저명한’ 독재자들을 베이징 천안문 광장으로 불러내 항일·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전승절’ 군대 퍼레이드를 벌일 정도로 기세등등한 모습을 과시했다. 미국 처지에서 중국이 ‘사나운 늑대’라면, 인도는 ‘고집 센 나귀’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도는 중국 같은 초강대국이 되지 못했을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 애슐리 텔리스(Ashley J. Tellis)는 7월 17일자 ‘포린어페어즈(FA)’에 ‘인도의 강대국 환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인도는 스스로 중국을 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미국의 역할이 축소된 다극적 세계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분수에 맞지 않는 ‘초강대국 망상’을 버리고, 미국의 국력이 약화된 다극체제 속에서 그럭저럭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 역시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8월 3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중국 톈진 영빈관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계기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8월 3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중국 톈진 영빈관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계기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인도는 강대국 지위를 추구하고 있으나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인도의 경제 규모는 2025년 기준 국가총생산(GDP)이 4조 달러로 세계 5위다. 하지만 세계 2위인 중국(19.2조 달러)에 크게 뒤처져 있다. 1980년 당시 중국 경제는 인도와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인도와 비교하면 거의 5배 성장했다. 인도가 연간 성장률에서 종종 중국을 앞지르더라도, 격차는 수십 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재 인도의 1인당 GDP는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며, 빈곤과 인프라 병목현상, 방만한 지하경제가 국가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제조업은 GDP의 15%에 불과해 산업기반도 취약하다. 전자·반도체·공작기계 등 첨단 분야에서 수입 의존도가 높고,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임에도 자체 방위산업 기반은 열악한 수준이다.

    군사적으로도 인도는 중국의 연간 국방비(2500억 달러)의 4분의 1 수준인 700억 달러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해군력 현대화를 통해 원양해군, 5세대 전투기, 첨단 미사일 및 사이버 능력을 구축한 반면, 인도의 군사 현대화는 지지부진하다. 인도는 왼쪽의 파키스탄과 오른쪽의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양면 전쟁의 딜레마에 직면한 인도로서는 군사력과 자원의 분산이 불가피하다. 이는 주요 강대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도만이 겪는 구조적인 지정학적 딜레마다.

    중국 해군은 항공모함을 포함해 350척으로 130척에 불과한 인도의 함대를 능가하며, 중국 조선소는 매년 인도 전체 함대보다 더 많은 군함을 건조한다. 공군력에서도 중국의 5세대 전투기와 장거리 타격 능력은 대부분 4세대 구형 전투기로 이뤄진 인도 공군을 압도한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한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문명의 발상지라는 문명적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과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독자적 비동맹 노선을 계승한 모디 정부는 다자적 연대를 선호하면서도 공식 동맹에는 거리를 둔다. 

    미중 패권 경쟁, 인도에 선택 강요

    인도는 미국-중국-러시아 사이에서 특정국을 편들지 않고 주요 강대국들과 교류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로 이제는 명확한 선택을 요구받는다. 이와 관련 텔리스는 “긴박한 양극적 투쟁이 분명한 선택을 강요하는 시점에 인도가 다극화를 추구하는 것은 방향 착오”라고 비판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외형적 규모(특히 영토·인구)와 지정학적 입지를 구비한 인도가 미국의 필수적 전략적 파트너가 돼 서방 진영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 유지, 러시아 석유의 구매 지속, 브릭스(BRICS) 및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여 등으로 미국을 좌절시켰다. 인도는 중국·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한 지정학적 환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전략적 유연성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 외교장관을 지낸 니루파마 라오 같은 인사는 이를 ‘적응적 현실주의(adaptive realism)’라 한다. 하지만 인도가 처한 구조적 딜레마는 트럼프-모디 협력관계를 붕괴시킨 근본 원인이다.

    미국·인도 충돌에서 구조적 요인이 ‘마른 장작’이라면,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 스타일은 ‘부싯돌’ 구실을 했다. 트럼프는 동맹국·우방국·적대국을 가리지 않는 거래 방식으로 인도를 상대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즉각적 성과, 명확한 양보, 개인적 찬사다. 이러한 조건이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트럼프는 장기적·전략적 목표가 훼손되는지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징벌적 조치에 착수한다. 모디는 트럼프식 외교정책의 본질, 그리고 국가 관계를 개인 차원으로 치환하는 경우 수반되는 위험성을 모두 오판했다. 트럼프와의 개인적 친분 과시에 지나치게 의존한 모디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동맹에 가까운)’라는 거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트럼프와의 강경한 협상에서 인도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세 인상, 공개적 비난, 심지어 인도의 적대국과 유착 시도 같은 트럼프의 거래적 움직임이 양국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관세와 무역은 트럼프의 거래적 방식이 모디의 낙관적 가정과 충돌한 첫 번째 전장이다. 2018년부터 트럼프는 인도를 ‘관세 대왕(Tariff King)’으로 비아냥대며 미국의 무역적자를 개탄했다. 모디 정부는 소규모 무역협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2024년 말 양국은 거의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종 타결이 늦어지자 트럼프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7월 30일, 트럼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도산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 즉시 부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인도에 사전 경고 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트럼프는 같은 날 인도와 적대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에는 19% 관세 적용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공개적으로 파키스탄에 호의를 베풀고, 인도를 응징한 것이다. 이로써 인도는 역대급 충격에 빠졌다.

    트럼프 거래적 외교와 모디의 전략적 오판

    트럼프가 보기에 인도는 지나친 자신감을 보였다. 미국은 1년간의 협상에도 인도가 농업 및 의료기기 가격 통제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분노했다. 8월 11일자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모디 브로맨스의 종언’이라는 제목으로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된 배경을 분석한 칼럼을 게재했다. 미국은 인도에 농업·낙농 시장 개방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는 인도 국내 정치의 ‘절대 금기’ 사항이었다. 2020년 농민 반발 사태로 정권이 무너질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모디의 국내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폴리티코’는 8월 8일자 ‘완전히 분노한 트럼프: 왜 그는 인도와의 무역협정을 폐기했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극도의 불쾌감을 보인 트럼프가 “(미국이) 25년간 쌓아온 관계 구축 노력을 불과 25시간 만에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4월 2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적용할 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4월 2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적용할 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시간이 지나면서 관세율은 계속 상승했다. 처음에는 종전 5%에서 대폭 인상해 25%였으나, 8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50% 관세가 몇 주일 내로 발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당시 미국이 어떤 교역 상대국에도 적용하지 않은 최고 관세율이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부과했던 19%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고율 관세로 인도를 괴롭히는 방식이 “시진핑의 수법과 닮은꼴”이라며 중국이 자국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국가들을 무역 금지 등으로 압박하는 행태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아이러니의 의미는 분명하다. 한때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맞서 다른 국가들이 단결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제는 동맹국·우방국들을 겨냥해 미국이 고율 관세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모디는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 오판을 했다. 무엇보다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는 트럼프의 결의를 과소평가했다. 그는 트럼프에게 아첨과 상징적 거래(미국산 석유와 무기 구매 등)를 바치면 고율 관세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은 것 같다. 실제로 올해 2월 워싱턴을 첫 공식 방문했을 때, 트럼프에게 미국산 에너지·무기의 추가 구매 의사를 밝히며, 징벌적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요지부동이었다. 바로 그 대목이 문제다. 관세 문제에서 모디가 빈손으로 워싱턴을 떠난 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디는 트럼프가 ‘인도 때리기’를 정치적으로 요긴한 국내 의제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인도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트럼프가 ‘미국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인도는 미국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 대한 높은 관세(무려 100%!), 그리고 아웃소싱과 이민(H-1B 비자) 분야에서 형성된 거대한 존재감으로 인해 미운 털이 박힌 상태였다. 일례로 오래전부터 트럼프 지지층이 보기에 인도는 ‘미국을 이용해 먹는 나쁜 나라’의 전형이었다. 

    무역 협상이 결렬되자, 트럼프는 인도의 무역 관행을 “재앙”이라 부르며 부정적 내러티브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 모두에게 ‘인도 때리기’는 ‘중국 때리기’ 못지않게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는 미국이 정면 대결하기에 너무 위험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트럼프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맹비난하면서도 중국에는 새로운 고율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무역 협상을 계속할 수 있는 ‘유예기간(extension)’을 조용히 허용함으로써 단기적 ‘면책(off the hook)’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는 “미국에 중국은 감히 괴롭힐 수 없는 대국(China is too big to bully)이므로, 그 대신 인도 괴롭히기를 선택한 것”으로 봤다. 중국보다 인도가 훨씬 약한 표적이므로 파장도 적을 것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기준’에 인도는 엄청나게 분노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는 트럼프가 자신의 징벌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 침략 전쟁 이후 인도는 국제유가보다 배럴당 평균 10~30달러 낮은 할인된 가격에 러시아산 원유 구매량을 크게 늘렸다. 당초 ‘제로’ 수준에서 2025년에는 하루 170만 배럴 수준까지 구매량이 크게 늘었다. 이는 경제적 실용주의의 결과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인도 정유사들이 정제 연료를 유럽에 재수출해 글로벌 시장을 안정시키고 있음을 고려해 인도의 러시아 석유 거래를 묵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들어 정책 방향이 급격히 변경됐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인도를 동시에 압박할 수 있는 1석 2조의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인도를 겨냥해 “러시아 전쟁 경제(war economy)에 연료를 공급한다”고 비난하고, “원유 수입을 줄이지 않으면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대외적으로 대(對)러시아 강경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인도로 하여금 푸틴 정권과 거리를 두도록 강요하려는 것이다. 이는 관세가 무역 보복을 넘어, 러시아 억제와 우방국 통제라는 복합적 수단임을 보여준다.

    ‘전략적 헤징’은 선택 아닌 필수 과제

    앞서 4월 트럼프는 모디에게 러시아산 원유 수입 지속 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모디는 인도가 점진적으로 의존도를 낮출 것이나 주요 에너지원을 갑작스럽게 차단하면 경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인도는 비공개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다소 줄였다. 하지만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외국의 강압이 아닌 ‘시장가격과 국가이익’이 원유 정책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도가 순응하지 않자 트럼프는 50% 관세를 실행에 옮기며 “인도가 러시아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 그들이 죽은 경제를 함께 끌고 가든 말든 상관없다”며 비웃었다. 이러한 비외교적 발언은 트럼프가 인도를 소중한 친구가 아니라 단순한 거래 상대, 심지어 경멸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트럼프가 구상하는 한층 거시적 구도에서 인도는 본질적으로 ‘장기판의 졸(pawn)’ 같은 존재였다. 그의 속셈은 인도를 압박해 석유 수입을 줄이도록 강요함으로써 푸틴을 압박하거나, 중국에 인도보다 더 나은 혜택으로 중국을 꼬드겨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됐건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인도의 이익은 자신의 당면 목표에 종속돼야 하는 부수적 관심사에 불과했다.

    중국 시각에서 미국-인도 관계의 균열은 ‘전략적 횡재(strategic windfall)’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인도가 미국 및 친서방 진영과 손잡고 일종의 ‘포위망’을 형성할 가능성을 깊이 우려했다. 대미 방위협력 심화, 쿼드(Quad) 회원국과의 연합훈련, 일대일로(BRI)에 대한 공개적 비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모디 브로맨스의 파탄으로 중국은 일시적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8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뉴델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용과 코끼리가 함께 춤추는” 운율적 표현까지 구사하며, 중국·인도 간의 연대를 호소했다. 물론 중국은 근본적 불신을 해소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도가 다시 미국 주도의 진영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다. 앞으로 국경 분쟁지역에서 부분적 병력 철수, 인도 의약품 및 IT 제품에 대한 제한 완화 같은 중국의 선심성 양보가 예상된다. 이런 조치들은 인도 내에서 “미국과 파트너십이 없어도 중국과 안정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8월 중순 알래스카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직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바이든 행정부가 기본적으로 천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한 통속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아시아타임스’는 9월 2일자 칼럼에서 중국·인도 간에 형성되기 시작한 데탕트 무드를 가리켜 “트럼프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미국·인도 분열의 원인과 관련해 카슈미르 분쟁에서 트럼프가 스스로 “피스메이커”를 자처하며 노벨평화상 후보 지명을 요구한 것이 인도를 자극했고, 모디가 이를 거부하면서 정상 간 소통이 단절됐다고 진단했다. 그 이후 모디는 트럼프의 전화 요청을 몇 차례나 묵살했다. 카슈미르 문제에서 ‘제3자 중재 불가’는 인도의 레드라인이다. 요컨대 사태의 본질은 노벨상을 노리는 트럼프의 쪼잔한 야심(petty ambition)과 개인적 앙심이 미국·인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희생시켰다는 점이다. 

    트럼프·모디 브로맨스의 붕괴는 단순히 양국 정상 간의 불화를 넘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 전반의 균형을 뒤흔드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그 파장은 우리에게도 직접적 함의를 갖는다.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미국·인도 관계가 흔들리는 국면에서, 동맹 의존과 전략적 자율성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우선 인도·태평양 정책 기조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며 쿼드 국가들과 연계를 강화했다. 이 전략은 미국·인도의 전략적 결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따라서 인도가 빠진 빈자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일본·호주와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쿼드 내 특정 워킹그룹에 참여해 해양훈련 동참 등 “쿼드 마이너스 원(Quad minus one)” 방식의 편입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도 협력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 미국·인도 관계 악화에 따라 인도의 급선무는 파트너십의 다각화다. 이는 우리에게 경제·기술·방산 협력 확대의 공간을 넓혀줄 수 있다. 예컨대 5G·6G, 반도체, 방위산업, 특히 한국산 전차·자주포·미사일 시스템 분야에서 한국은 인도의 대체 공급자가 될 수 있다. 한국에는 헤징 전략의 일환이자 동시에 인도에는 러시아·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다각화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도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자율적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트럼프의 거래적 세계관은 “동맹국도 언제든 응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냉혹한 교훈을 남겼다. 따라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증액,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와 같은 협력 카드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우리의 방위산업 독립성과 자체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핵잠수함 개발, 미사일방어체계 고도화, 자위적 핵무장 담론의 재부상은 이러한 자율성 확대의 연장선에 있다.

    8월 25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8월 25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인도 협력 강화로 새 기회 창출해야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국제 무질서 시대’에서 ‘전략적 헤징’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1949년)에서 일종의 ‘역사 주기설’을 제시했다. 단기 주기는 매일 벌어지는 사건의 연쇄, 중기 주기는 수십 년 단위의 구조적 변화, 장기 주기는 수백 년 동안 잘 변하지 않는 문명적 기반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 시대에 들어 연준 장악 시도, 인도 관세 50% 부과, 이란 폭격, 중국·러시아·인도 정상회담 등 ‘단기’와 아메리카 퍼스트, 탈세계화, 동맹체제 붕괴 등 ‘중기’, 그리고 기후변화 악화와 AI 등장 등 ‘장기’ 주기가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은 일상적 격변, 수십 년짜리 질서 변화, 수세기 만의 대변화가 동시에 겹쳐지는 이례적 시기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글로벌 안보 질서에 심대한 파장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미국이 동맹국 방위를 더는 ‘공짜로’ 베풀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고, 이는 유럽의 국방비 증액과 한국·대만 등 안보 최전선 국가들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역전쟁·관세전쟁의 영향으로 달러 약세와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 나타나고, 미국의 글로벌 위상 하락과 함께 달러 패권도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 AI가 불러올 사회적·경제적 변동은 브로델이 말한 ‘장기 지속 구조’마저 흔들 수 있다. 결국 트럼프 시대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팍스아메리카나’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우리는 미국 주도의 동맹 네트워크에 결박돼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을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북한 문제의 주요 행위자로 다루어야 하는 처지다. 따라서 인도·태평양전략에서 반중(反中) 색채를 과도히 강조하기보다 포용성과 안정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모디 브로맨스의 파탄은 우리에게 두 가지 경종을 울린다. 첫째, 동맹은 절대적 안전망이 될 수 없으며, 언제든 거래적 이해관계로 흔들릴 수 있다. 둘째, 따라서 전략적 자율성과 외교적 다각화를 병행하는 것이 생존의 핵심 조건이다. 인도·태평양전략이 요동치더라도 우리는 이를 기회로 전환해 더욱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부상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미래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당면 과제는 민첩한 전략적 적응력을 갖추는 길이다. 결국 트럼프·모디 브로맨스의 파탄은 ‘국제 무질서 세계’ ‘동맹 없는 세계’의 불안정을 상징하는 경고음이다. 국제질서의 격랑 속에서 우리도 더는 수동적·피동적·소극적 피보호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체적으로 생존 전략을 스스로 구상해 나가는 능동적·적극적·주도적 행위자로 거듭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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