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시장 안정 위해 도입한 세제·규제 맞물려 탄생
다주택자에 부담 가중…1주택자에게 이익 몰려
일부 고가 주택으로 수요 쏠림…가격 상승 악순환
분위별 사다리 붕괴, 양극화 심화, 조세 형평 왜곡 우려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강변 신축 아파트 단지. 뉴시스
그런데 A씨의 투자 성공 사례를 들여다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똘똘한 한 채’의 투자 성공 신화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 탓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똘똘한 한 채’는 ‘똘똘한 괴물’로도 불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강변 신축 아파트 한 채 가격은 지방 광역시의 빌딩 여러 채를 합한 것보다 더 비싸다. 몇 년 사이 괴물처럼 오른 탓이다.
‘똘똘한 괴물’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실수요자 보호와 부동산 가격 안정을 목적으로 시행된 다주택자를 겨냥한 세제 개편에서 비롯됐다. 양도세 중과 등 세 부담이 늘자 다주택자들은 여러 채를 정리하고 자산을 한데 모아 서울 한강변, 강남권에 아파트를 매입했고 이후 실수요뿐 아니라 전국의 투자 수요가 대거 몰렸다. 오늘날, 집이란 ‘사는(live) 공간이 아닌 사는(buy) 공간’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문제는 ‘똘똘한 한 채’ 선호 경향이 짙어지면서 조세 형평성 왜곡을 비롯해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수도권 고가 아파트의 몸값만 과도하게 높아져 시장 양극화가 심화했고, 지방의 침체·소멸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 6·27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 분위기는 잠잠해졌지만, 언제 또다시 광풍이 불지 아무도 모른다. A씨의 사례를 통해, ‘똘똘한 한 채’를 키운 원인과 ‘똘똘한 괴물’이 탄생한 과정을 짚어봤다.
서울 외곽, 전셋집에서 시작한 내 집 마련의 꿈
1996년 수도권에서 대학을 졸업한 A씨는 운 좋게 은행권에 취업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7년간 회사를 다니며 차곡차곡 모은 돈은 5000만 원 정도였다. 그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던 A씨는 30대 초반이던 2003년, 서울 외곽에 보증금 5000만 원짜리 구축 아파트 전세를 마련해 독립에 성공했다. 당시 서울 강남·목동 등 선호 지역 아파트는 10억 원을 넘나드는 고가로 매매는커녕 전세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외곽이라면 몇 년 더 열심히 모으면(물론 대출의 힘을 빌려야 하지만) 매수도 가능해 보였다. 꿈꾸던 ‘서울 안 내 집’ 마련이 현실로 잡힐 것 같았다.노무현 정부 초기였던 당시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았다. 뉴타운 사업 등 도시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서울 외곽지역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A씨는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2005년, 서울 노원구에 2억 원대 아파트로 첫 집을 마련했다. 20년 된 구축에, 단지가 크지 않고, 대출을 끼긴 했으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이다.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하면 점차 집을 늘려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6년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5년 8·31대책을 내놓은 반작용이었다. 8·31대책은 △투기지역 지정 △부동산 거래 규제 강화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중과 등이 담긴 투기 억제책이었다. IMF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유동성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실물자산 가치가 오르며 부동산투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8·31대책이 시장을 잠시 눌렀으나 그 반작용과 더불어 이듬해 봄 이사철 수요가 만나면서 가격은 폭발했다. 2006년 시장 급등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봄철 상승은 투자자들이 주도한 시장이었다면, 가을철 2차 상승은 무주택자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2006년 8월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판교신도시 2차 동시분양 3자녀 이상 무주택자 특별공급대상자에 대한 청약에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 동아DB
2006년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승장으로 기록된 때다.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2005년에 집을 산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욱이 서울 전 지역으로 상승 흐름이 번지면서 A씨의 노원 아파트 집값도 올랐다. 가격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A씨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보유하던 노원의 아파트를 팔고 서울 외곽에 아파트를 두 채 매입하느냐, 혹은 컨디션이 좀 떨어지더라도 서울 도심 내로 한발 더 내딛느냐를 놓고서다. 고민 끝에 A씨는 다주택자의 길을 택했다. 임대수익을 누리겠다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것이다. 2006년 말, 보유하던 아파트를 3억 원가량에 팔고 그간 쌓은 자본에 추가 대출을 받아 서울 외곽에 5억 원으로 아파트 두 채를 마련했다.
모든 혜택은 1주택에만…‘똘똘한 한 채’ 갈아타기 시작
그런데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이듬해 2007년,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에 총부채상환비율(DTI) 40%를 적용했다. 소득이 적거나 소득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람은 집을 담보로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것. 본래 집값의 60%까지(LTV 60%) 나오던 대출이 연 소득에 따라 많게는 절반 이상 줄었다.수도권 투기과열지역 6억 원 이상 주택에만 적용되던 것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또한 2주택인 경우 2년 이내 1주택 처분 조건으로만 대출이 허용됐다. A씨는 이 시기를 피해 무사히 다주택자가 됐다. 이번에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집에 실거주하며, 다른 한 집은 월세를 줘 근로소득에 더해 임대수익까지 누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더 큰 문제가 터졌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한 국제금융위기가 덮치면서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013년까지 5년간 이어진 긴 하락장이었다. A씨는 월세 수익이 있었으나 회사 사정 악화로 대출금을 갚는 게 빠듯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내려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상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려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2008년 2월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강한 규제에 나섰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규제 완화 정책을 폈다. △규제지역 해제 △대출 규제 완화 △지방 미분양 해소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다. 그러나 다양한 규제 완화책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주택 수요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정부는 2010년 8·29대책을 내놓으며 DTI 규제를 1년 만에 수도권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무주택 또는 1가구 1주택자에게 일시적으로 풀어줬다.
DTI 규제가 풀리자 A씨는 생각을 바꿨다. 두 채를 팔아 조금 더 좋은 입지의 재건축 가능성이 높은 서울 아파트로 입성하기로 결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2년)와 취·등록세를 감면(1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세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 완화책이 1주택자에게 더 유리하게 보였던 것. 2010년 A씨는 두 채를 처분하고, 대출을 추가해 용산구 이촌동의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를 10억 원에 매입했다. 당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되고 강남 3구를 제외하곤 주택 투기과열지구도 모두 해제된 것도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서울 상위 20%는 ‘넘사벽’…사다리 끊겨
규제 완화는 2013년 집권한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졌다. 대출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고 양도세와 취득세 등 세금 감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유예 연장 등이 이뤄졌다. 당시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외려 서울 매매가격지수를 크게 앞질렀다. 서울 매매가격은 박근혜 정부 내내 침체하다가 임기 말이 돼서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0년간 누적된 각종 완화책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서울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상황에서 저금리, 팬데믹 영향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던 2017년 문재인 정부 때는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 등까지 투기과열지구로 묶었다. 분양가상한제(분상제)도 민간택지로 확대 적용했다. 재초환 부활,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2주택자 세율 50%, 3주택자 이상 60%, 기본세율 6~40%) 등 강한 규제가 쏟아졌다.
특히 다주택자 규제 강화는 부동산시장 양극화에 기름을 부었다. 다주택을 통해 얻는 실익보다 고가의 한 채로 얻는 실익이 더 커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과거엔 20억 원이 있으면 10억 원짜리 한 채에 살면서 5억 원짜리 집 두 채를 보유해 월세를 받았다면, 당시에는 20억 원짜리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답지가 바뀌었다. ‘다주택자=투기 세력’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도 한몫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종합되면서 시장 수요가 수익형 빌딩 등으로 분산되지 못하고 모두 ‘똘똘한 한 채’로 몰렸다는 점이다. 삼성, 청담, 대치 등 강남 3구의 주요 지역을 비롯해 압구정 재건축단지, 반포 신축 아파트 집값은 수혜를 몽땅 받으면서 천정부지로 집값이 올랐다.
2010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 A씨 역시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에 성공하며 수혜를 누렸다. 정비사업을 거쳐 2015년 완공된 해당 아파트는 한강변 프리미엄까지 적용돼 입주 당시 전용 124㎡ 매매가는 약 20억 안팍으로 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 현재, 해당 아파트의 매매가는 58억 원을 넘어섰다. 50대 중반이 된 A씨는 “노후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치지 못했으나 집값을 생각하면 든든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이던 2018년부터 서울 집값 상위 20% 아파트(5분위)와 하위 20% 아파트(1분위) 가격 차이가 큰 폭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핵심지 고가 아파트=똘똘한 한 채’란 공식이 성립하면서 상위 20%가 몰려 있는 강남 3구는 이제는 진입이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로 바뀌었다. ‘국평’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매매가가 70억 원을 넘어선 것도 예삿일이 됐다. 5분위와 4분위(상위 40%) 격차를 비롯해 나머지 분위 간 격차도 크게 벌어지면서 분위별 상승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 내에서도 양극화가 이처럼 심화하는데 지방은 더 심각하다. 지방의 투자 수요가 지방 거주지에서 주택을 추가로 매입해 지방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고 지방도 살리는 것이 이치지만, 지금은 지방 투자 수요까지 수도권으로 몰리는 양상이다. 뒤늦게 지방에 한해 다주택자 규제를 푼다고 해도 이미 수도권 부동산 불패 현상이 고착화한 것이 걸림돌이다. 또한 지방의 다주택 수요가 소수인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주택이면 ‘고가’일수록 혜택…금액 상한 등 제한 둬야
똘똘한 한 채는 정부의 세제와 부동산 규제만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인식 변화, 서울과 지방의 인구·시장 구조, 리스크 회피 심리, 브랜드 및 입지 프리미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모든 상황과 여건이 바뀌지 않는 한 똘똘한 한 채 심화 현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다만 그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요인들을 수정해 가면서 방향 전환을 시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양도세 장특공제)’를 꼽을 수 있다. 부동산을 장기 보유한 만큼 양도차익 일부를 공제해 주는 제도다.
양도세는 원칙적으로 양도차익이 클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과세 구조지만 ‘1가구 1주택자’에게는 예외가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15년 이상을 보유해야 30%의 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1가구 1주택자는 최대 8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이는 양도세의 누진과세 구조를 상쇄할 뿐 아니라 상한 금액이 없다는 점에서 고가 주택일수록 혜택이 더 커진다. 또한 공제 비율이 모두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양도차익이 클수록, 즉 고가 아파트일수록 세금 혜택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소득이나 수익에 비례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인 ‘조세 형평성’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장특공제는 양도차익에서 최대 80%를 공제하고 나머지 20%에만 세금을 매기는 구조로 고가 주택일수록 세금이 낮아진다”면서 “똘똘한 한 채로 불리는 1주택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 수가 아닌 가액 기준으로 과세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면서 “장특공제에 일정 금액 상한을 두고 이를 넘기면 공제율을 낮추는 등 조세 형평성을 찾을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보유세 역시 마찬가지다. 1가구 1주택자에게 더 낮은 세율과 과세표준 특례가 적용된다. 더욱이 보유세도 실효세율이 낮아 고가 1주택자일수록 혜택을 받는 구조다. 부동산업계 한 전문가는 “해외 대비 국내 보유세 실효세율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보유세에 대한 적정 부담이 없으면 투기적 수요가 끼어들 수 있는 만큼 보유세를 높이되, 거래가 막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