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외교란 ‘관(官)’이 상대국 ‘민(民)’ 향해 하는 외교
유럽 각국, 과거 식민지 대상 공공외교 열심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인류 보편 가치 수호
李 실용외교 정체성 확립, 문화강국 비전
경제와 외교력으로 이어져야 제대로 된 공공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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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된 ‘공공외교’ 개념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Public은 Private의 반대 개념인 Public이 아니라, ‘여론’을 의미하는 Public Opinion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Public은 관(官)이 아닌 민(民)을 지칭한다. 같은 Public이라는 단어지만 전혀 반대되는 두 개의 주체를 공히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 Public Diplomacy를 공공외교와 반대되는 민간외교로 번역하는 것도 맞는 번역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번역하면 정부나 외교부, 즉 관이 끼어들 공간이 사라진다. 순전히 민간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정부가 공공외교라는 이름의 외교를 하고 있고, 미국도 국무성과 해외 공관에서 공공외교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 외교부도 공공외교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고, 해외 공관에서는 한류나 문화행사 등을 공공외교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Public Diplomacy란 무슨 외교를 의미하는 것일까.그건 바로 정부라는 ‘관(官)’이 상대국의 여론, 즉 ‘민(民)’을 향해 하는 외교라고 할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우리가 잘못 번역한 공공외교는 외교 대상이 상대방 정부가 아니라 Public Opinion이기에 Public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기업이 정부를 향해 하는 업무, 즉 대관 업무의 대관과 반대되는 말인 대민을 붙여 ‘대민외교’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용어가 한번 굳어지면 이를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이미 정부 부서에 그 명칭이 사용되고 있고, 공적 문서, 학술 논문 등에서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대민외교로 바꾸자고 아무리 떠들어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용어는 그대로 쓰되 그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제대로 알자는 뜻에서 이렇게 오역의 문제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공공외교는 자국에 좋은 여론 만드는 외교
처음 공공외교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미국이 해외에서 생겨난 반미 감정, 반미 여론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부터다. 반미 감정이 심하면 그 나라에서 외교하는 것이 어렵고, 극단적으로는 미국의 국익과 안보를 해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란에서 1979년 혁명이 일어난 것도, 한국에서 1980년대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한 것도, 2001년 9·11테러가 벌어진 것도 반미 감정, 반미 정서, 반미 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는 외교, 좋은 여론을 만드는 외교인 공공외교가 외교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공공외교는 때때로 특정 정치 목적을 위해 상대방 국민을 세뇌시키고, 상대방 정부에 대해 부정적 여론을 조장하는 프로파간다와 혼용돼 쓰기도 하고, 또 그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공외교는 공개된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자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불식하고,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하는 외교라는 의미에서 ‘공작’에 해당하는 프로파간다와는 다르다.실제로 전쟁과 폭력의 지정학 질서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장경제가 일상이 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로 이행하면서 외교부나 해외 공관에서 하는 상당 부분 업무가 공공외교로 바뀌게 됐다. 19~20세기 초의 외교는 전쟁을 방지하고, 휴전과 종전을 끌어내며,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 외교의 주 활동 범위였다. 지금의 외교는 그 부문 못지않게 오히려 더 높은 비중으로 상대방 국가의 여론, 민간 부문 접촉, 긍정적 자국 이미지 전달에 많은 자원과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과거 제국을 경영했던 유럽 국가와 일본 등이 과거 식민지를 대상으로 자국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자 공공외교에 열심이었다. 1960~70년대의 한일 관계를 보면, 일본 각료가 한국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이른바 ‘망언’을 하면 바로 면직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 역시 한국에서 불거진 반일 감정을 다루는 일본의 공공외교라고 할 수 있다. 국제질서에서 패권국 역할을 해야 하는 미국 역시 해외 반미 감정을 불식하는 일에 매우 민감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선진국과 다른 형태의 공공외교가 존재했다. 권위주의 독재나 쿠데타, 인권침해, 언론탄압 등 개도국 문제에 대해 선진국이 공격할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일종의 수비형 공공외교를 하곤 했다. 이런 경우 이들의 공공외교는 국가보다는 권위주의 정부 이미지를 방어하는 프로파간다에 더 가까운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개도국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하는 이미지 개선 작업은 관이 민을 대상으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이 민간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마케팅이기 때문에 이를 공공외교라고 할 수 없다. 요즘 민간단체가 해외에서 하는 독자적 문화 활동이나 학술 활동을 민간공공외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좋은 여론을 해외에서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의 활동도 크게 보면 공공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외교가 관의 업무라는 점에서 공공외교라는 명칭보다는 민간교류 활동, 민간 문화 교류 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6월 17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뒷줄 가운데)과 G7 및 초청국 정상들이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 공공외교의 문제점
공공외교의 오역 문제와 역사적 맥락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우리나라 공공외교의 문제점과 방향성을 간략히 지적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외교부와 해외 공관이 공공외교를 오래 해왔지만, 공공외교라는 이름의 활동이 공식화한 계기는 2016년 공공외교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 공공외교법은 공공외교의 기본 원칙과 기본 계획, 그리고 시행 계획 수립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공공외교란 ‘국가가 직접 또는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 부문과 협력해 문화, 지식, 정책 등을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외국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1991년에 이미 외교부 산하에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 설립됐지만 공공외교에 대한 공식 법률 근거는 2016년 공공외교법 제정이라 할 수 있다.공공외교는 △문화를 수단으로 하는 문화 공공외교 △지식을 수단으로 하는 지식 공공외교 △국가 정책을 전달하는 정책 공공외교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 같은 분류 작업에 필자가 참여한 바 있다. 국제교류재단이나 해외 공관 등에서 행하는 문화사업 등이 문화 공공외교에 해당하고, 한국학이나 우리의 개발 경험 공유와 같이 민간이 관과 협력해 지식을 제공하는 공공외교를 지식 공공외교라 한다. 정책 공공외교는 국가의 외교정책이나 주요 정책을 해외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 등의 싱크탱크나 대학의 연구소 등과 정책 세미나, 포럼 등을 개최한다. 이러한 정책 공공외교에 관 인사들만 참여하는 경우 ‘Track 1’이라 하고, 관과 민이 섞여 있으면 ‘Track 1.5’, 그리고 민간만 참여하는 경우 ‘Track 2 공공외교’라고 한다. 대개 관 인사가 끼어 있으면 정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잘못하면 정부 선전만 되풀이하고 솔직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민간만 참여하는 경우에는 정부 정책을 내밀한 부분까지 아는 학자가 드물어 정책 공공외교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윤석열 정부 공공외교는 당연히 문화·지식·정책 공공외교를 다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에 우호적 여론을 한 단계 향상하는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공공외교를 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문화 공공외교는 한류나 K-팝 등을 중심으로 해외 공관이나 문화단체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고, 한국학을 활용하는 지식 공공외교도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나 보편 가치 면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찾지 못하겠다. 정책 공공외교도 해외에서 이런저런 회의는 많이 한 것 같으나, 한국의 외교 비전이나 미래 비전을 알리는 담론이나 행사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그냥 교류 활동만 많이 한 셈이다. 물론 교류 활동 자체가 각국과의 인적·제도적 네트워크 관리라는 면에서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실질적 임팩트 면에서 매우 아쉬운 점이다. 국가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던 윤석열 정부 자체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고, 갑자기 선포한 반민주적 계엄령으로 일거에 국가 이미지가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 오히려 ‘민주적 국민’의 모습을 해외에 더 보여주고 알리는 공공외교가 더 큰 역할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소프트파워와 문화강국 달성, 그리고 공공외교
이재명 정부는 전 정부의 비정상적 계엄 혹은 내란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한 정부이기에 공공외교를 하는 데 윤석열 정부보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공공외교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되찾은 정부를 홍보하는 수준에만 머문다면 이 역시 국가 자원의 낭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이미지 회복에도 애를 써야 하지만, 해외에서 이재명 정부에 대한 의구심, 실용외교의 정체, 미래 비전 등에 대해 아직 확신을 못 갖고 있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공공외교의 과제와 방향에 대해 몇 마디 제언을 하고자 한다.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6월 25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세계 포럼 컨벤션센터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시장 질서이며, 규범·법 기반 국제질서인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우리의 국익과 직결되고, 또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류 보편 가치가 중요하다는 우리의 인식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켜야 한다. 인류 보편 가치라는 것은 단순히 서양의 가치가 아니라 시장이 만들어낸 근대의 가치다. 자유, 인권, 기회의 평등, 투명성 등과 같은 인류 보편 가치가 사라지면 시장에 혼란이 생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인류 보편 가치를 서구적 제국주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입장을 옹호하기보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편에 확고하게 서서 최대한 인류 보편 가치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중국을 포함한 타국들이 한국 국민과 기업의 보편적 가치를 과연 존중할지 알 수 없다.
셋째, 이재명 정부가 실용외교라는 용어를 이미 사용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비전과 전략하에 실용외교를 할 것인지, 그 실체가 아직 모호하다. 모호하면 신뢰를 주지 못한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실용외교의 정체성과 방향, 전략을 확립하고 그 내용을 정책 공공외교로 우방국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실용외교의 내용은 우리가 자주적으로 채워 넣어야지 주변 강대국의 영향과 강요에 의해 내용이 이리저리 변화되는 것은 좋지 않다. 만약 그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은 우리를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 취급할 것이다.
넷째, 이재명 정부는 우리가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 문화강국이 될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선 때 그러한 슬로건을 사용한 바 있다. 소프트파워와 문화강국 달성은 공공외교와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문화적으로 디지털 문명 시대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콘텐츠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한 능력과 콘텐츠가 단순히 홍보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와 외교력으로도 이어져야 제대로 된 공공외교라 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와 문화강국 비전은 한국의 전 세계적 문화 영토를 넓힘으로써 문화산업 및 첨단기술 역량을 고도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향후 디지털 혁명 시대에서 대한민국은 문화적 선도국이 돼야 문화산업과 디지털 산업의 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더는 뒤에서 추격하는 국가가 아니다. 추격 국가에 머물면 정상에서 떨어질 길만 보이는 ‘피크(Peak) 코리아’가 된다. 지금은 선도 국가가 돼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300여 년의 역사를 보면 결국 선도산업을 제패하고, 국제질서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 국가들이 제국이 됐고, 또 강대국이 됐다. 이제 우리도 선도국가, 즉 강대국이 되지 못하면 추격하는 국가가 아니라 추락하는 국가가 될지 모른다. 이재명 정부가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우리나라를 선도국,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를 희망한다.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