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1.8조 규모 개발사업 ‘체계 통합’ 베테랑 KAI vs 신인 LIG

[Focus] KAI, “전자전기 기술 전반 국산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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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09-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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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전에서 전자전(電子戰) 중요도 높아

    • 이스라엘·美 전자전기로 이란 방공망 무력화

    • 한국군도 ‘전자전기 체계 개발’ 사업 시작

    • KAI‐한화 전자전 기술, LIG‐대한항공 개발·운용 경험

    • 개발 핵심역량은 ‘체계 통합 능력’…프랑스·일본은 지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예정인 한국형 전자전용 항공기(전자전기) 모형. KAI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예정인 한국형 전자전용 항공기(전자전기) 모형. KAI

    국내 방위산업에 새 무대가 열렸다. 군이 처음으로 전자전(電子戰)용 항공기(이하 전자전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전자전기는 적의 전자 및 통신기기를 무력화하는 항공기다. 군은 ‘전자전기(Block-I) 체계개발’ 사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전자전기를 갖추려 한다. 2034년까지 국산 전자전기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사업 예산은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경쟁은 두 진영으로 좁혀졌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한화시스템(이하 한화)이 손을 잡았고, 반대편에는 LIG넥스원(이하 LIG)과 대한항공이 협력하고 있다. 양측은 저마다 강점을 내세운다. KAI와 한화는 최신 전자전 기술과 감항인증(IP) 역량, 그리고 플랫폼 확장성을 자신한다. 감항인증은 항공기 개발 혹은 개조 후 안전성을 검증받는 일이다. 감항인증을 통과해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 KAI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감항인증 실적을 보유한 기업이다. LIG-대한항공은 전자전 장비 개발 및 운용 경험을 앞세운다. LIG는 공군의 전투기용 전자전장비(ALQ-200)를 개발한 실적이 있다. 

    9월 23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LIG-대한항공이 KAI-한화보다 4.5점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은 이의 제기 여부 확인 및 평가 검증 등의 절차를 거쳐 10월 중 협상 우선 업체를 결정할 방침이다.

    누가 사업을 따내든 결과는 가볍지 않다. 전자전기 개발은 단순한 신무기의 탄생을 넘어선다. 한국군의 전자전 능력이 한 단계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군 전자전, 현대전장 가장 중요한 요소

    전자전기 사업은 2017년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장기 소요가 결정된 후 2023년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심의 및 의결됐고, 2025년 체계개발기본계획이 결정됐다. 군이 전자전기 사업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현대전에 전자전이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벌어진 이스라엘-이란의 전쟁만 봐도 알 수 있다. 6월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수차례 폭격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전투기는 단 한 대도 격추당하지 않았다. 이란은 고성능 방공망을 갖췄지만 이스라엘이 첩보전과 전자전을 통해 이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찰이나 공격에 드론이 적극 쓰인 만큼 이를 무력화하는 전자전 역량이 중요해졌다. 

    전자전은 보이지 않는 신호의 전쟁이다. 통신 및 드론 등 무인기 조종 전파, 레이더 신호 등이 모두 전자전의 무대다. 다양한 신호 사이에서 전자전은 다시 세 가지 역할로 나뉜다. 적의 전자파 사용을 방해하는 ‘전자공격(EA)’, 적의 방해에도 우리 신호를 지키는 ‘전자방어(EP)’, 그리고 상대의 전파 정보를 수집하는 ‘전자지원(ES)’이다. 역할마다 신호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적의 신호는 방해하며 수집하고, 적에게서 우리의 신호는 지켜내야 하는 것이 전자전의 핵심이다. 

    전자전이 가장 치열한 곳은 하늘이다. 김민석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전파는 직선으로 가기 때문에 전파 방해를 하든, 남의 전파를 감청하든 높은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가장 넓은 영역을 다룰 수 있다”며 “공군의 전자전이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군이 전자전기 도입에 전면 나선 이유다. 

    군이 도입하려는 전자전기는 기존 항공기를 개조해 전자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조한 특수 임무기다. 이 기체들은 전자장비와 교란 장치를 활용해 적의 통신망과 대공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재 전자전기를 실제로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다. 한국군은 유사시 방공망을 뚫고 평양을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전자전기를 보유하지 못했다. 그간 한미연합훈련 시 미군의 전자전기 지원에 의존해 왔다.

    대신 백두정찰기라는 신호정보 수집 전용 항공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적 통신과 신호정보 수집에 국한된 역할로, 전자전기의 적 전자 신호체계 교란과 공격 임무와는 다르다. 이번 전자전기 개발은 우리 군의 전자전 능력과 자주권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상공에서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가 비행하고 있다. 뉴스1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상공에서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가 비행하고 있다. 뉴스1

    한국형 컴퍼스콜 개발 나서

    전자전기는 작전 수행 범위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장 외곽에는 ‘스탠드오프 재머(SOJ·Stand-Off JAmmer)’가 전자전 작전을 수행한다. 보통 수송기에 전자전 장비를 탑재하는 식으로 만든다. 이 기체는 적 대공망 밖에서 레이더 교란 및 방공장비 탐지의 역할을 맡는다. 

    SOJ가 방공망을 마비시키면 그다음은 ‘에스코트 재머(ESJ·Escort Jammer)’의 무대다. 전투기를 개조해 만든 기체로 아군 전투기와 함께 적진에 침투해 통신망 교란이나 방공 레이더를 직접 타격해 무력화한다. 마지막은 주로 무인기가 활용되는 영역인 ‘스탠드인 재머(SIJ·Stand-In Jammer)’다. 적 탐지 장비를 무력화하기 위해 목표물과 최대한 가까이 침투하는 기체다.

    올해 6월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기습 타격한 ‘미드나이트 해머(Midnight Hammer·한밤의 망치)’ 작전의 성공 뒤에도 전자전기가 있었다. EC-130H 컴퍼스콜(SOJ)과 EA-18G 그라울러(ESJ) 등이 먼저 나서 이란의 방공망과 무선 지휘통제 체계를 무력화했다.

    우리 군은 캐나다 봄바르디에사(社)의 초장거리 비즈니스 제트기(중형 민항기) Global 6500 모델에 전자전 장비를 장착한 SOJ 전자전기를 개발해 전력화한다는 계획이다. 전자전기는 우선 블록1 사업을 통해 2대를 획득할 계획이며, 추후 블록2 사업을 진행해 추가로 2대를 확보해 총 4대를 전력화할 예정이다.

    군은 초창기에는 전자전기 수입을 고려했다. 하지만 미국의 까다로운 수출 통제에 가로막혀 해외 도입이 어려웠다. 방위사업청은 1990년대 도입한 백두정찰기를 대체하기 위해 2009년 미국에 신호수집용 신형 정찰기 수출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신형 백두정찰기를 2011년부터 개발해 2018년에는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다. 

    전자전기 역시 직접 개발하기로 가닥이 잡혔으나 막대한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2020년에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제동을 걸었다. 적국인 북한의 방공망이 낡았으므로 과도한 예산을 들여 전자전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군과 방사청은 주변국과 정세를 생각하면 전자전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박하며 맞섰다. 김형철 전 공군 참모총장은 “현대 공중전에서 지원기는 전투기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중급유기인 KC-330 시그너스는 당장 필요 없다는 이유로 매번 도입 우선순위에서 밀렸으나 막상 사용해 보니 훈련은 물론 재외국민 수송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전기도 마찬가지다. 유사시 전투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도입이 필요하다.”

    전자전기 개발사업이 시작됐으니 그 주인공이 누가 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방위산업계 관계자는 “전자전기 개발은 단순히 항공기에 전자전 장비를 싣는 것이 아니”라며 “기체 구조와 특성을 고려해 전자파 간섭 및 고출력 재밍(통신장비 마비시키는 방식)에 따른 항공기 영향 최소화 설계 적용 등 전자전 항공기 최적화를 위한 ‘체계 통합’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전자전기 개발의 난제는 항공기 개조 문제였다. 전자전용 장비 개발에 성공해도 이를 비행기에 실었을 때 제 성능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2019년 전자전기 개발을 시작, 2025년까지 자국 공군에 새 전자전기를 인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자전 장비를 항공기에 체계 통합하는 일에 실패했다. 결국 올해 8월에야 첫 전자전기 시운전을 마쳤다. 프랑스 공군에는 2030년부터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체계 통합이 어려워 5년이나 개발이 늦어진 셈이다. 일본과 튀르키예도 각각 2020년과 2018년부터 전자전기 개발사업을 진행했으나 체계 통합 등의 문제로 개발이 지연됐다. 

    KF-21의 시제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KF-21도 전자전기로 개발할 계획이다. 동아DB

    KF-21의 시제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KF-21도 전자전기로 개발할 계획이다. 동아DB

    전자전기 통합 체계 국산화 도전

    KAI는 체계 통합의 베테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자전기 개발사업의 적임자가 KAI-한화라는 주장이다. KAI 관계자는 “이미 KAI는 정찰기, 조기경보통제기 등을 개조한 실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KAI는 2010년 해군 대잠초계기(적의 잠수함을 찾는 일종의 정찰기)인 P-3C 개조 작업을 진행했고, 2021년에는 공군조기경보통제기(탐지와 지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비행기)인 E-737 성능개량 사업에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백두정찰기 개발사업인 ‘2차 백두체계 개발’에도 참여했다. 1차 백두체계 개발은 설계는 해외 업체가 맡고 국내 업체가 조립을 담당했으나 2차 개발부터는 설계부터 조립 전반을 체계 통합 업체인 KAI가 담당했다. 

    KAI 측 관계자는 “현재 전자전 장비 개발의 핵심기술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해 개발했으니 업체 간 기술 및 역량 차이가 크지 않다”며 “(전자전기 개발사업은) 항공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며, 장비 개발도 항공기의 특수성을 고려해 최적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KAI는 이번 사업을 통해 ‘전자전기 전반 국산화’라는 목표도 세웠다. 지금은 해외에서 수입한 비행기에 전자전 장비를 통합하는 방식이라면 추후에는 국산 비행기에 전자전 장비를 통합하는 방식이다. 그 시작은 KAI가 개발한 차세대전투기 KF-21이 될 것으로 보인다. KAI-한화는 KF-21의 개조 버전인 ‘KF-21EX’에 전자전 장비를 탑재하는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한국군은 SOJ를 넘어 ESJ까지 갖추게 된다. 

    KF-21은 유무인 복합 체계도 탑재할 계획이다. 2024년 7월 KAI는 ‘차세대 공중 전투체계(NACS)’ 개발 방안을 발표했다. KAI는 NACS 개발 방안에 따라 우선 KF-21에 ‘유·무인 복합 데이터링크’를 적용하고, 다목적 무인기(AAP)와 함께 운용(NACS-1 계획)할 예정이다. KAI는 이때 쓰이는 무인기도 전자전용으로 개조해 SIJ 국산화 연구에 나설 생각이다. 

    KAI 관계자는 “전자전기 기술은 미국, 러시아 등 소수 국가만 보유한 핵심 항공 기술로 해외에서 기술 이전이 불가능해 국내 기술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KAI는 이번 전자전기 개발에 이어 KAI 자체 플랫폼인 KF-21과 유무인 복합체로 기술을 발전시켜 국내 기술로 한국형 전자전 항공기를 완성하고 차세대 K방산 주력 수출 품목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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