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3代째 이어온 ‘사업보국’, 기업가정신으로 한화 중흥 이끈다

[Spotlight] MASGA로 관세 협상 도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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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5-08-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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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그룹 중흥기 이끈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 기업가정신으로 자주국방 위한 방산 AI 추진

    • 삼성그룹 방산 부문 인수 ‘빅딜’에도 관여

    • 한화 경영진 방산 인수에 부정적이었으나

    • 김동관 “방산으로 사업보국이 한화의 역할”

    • 인수 후 직접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성장 이끌어

    • 방산 수출 위해 각국 인사 만나며 영업

    • 수출 및 사업 성장으로 시가총액 5대 기업 진입

    • 항공 엔진 국산화 및 방산 인재 육성에도 나서

    2023년 10월 18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이 ‘Seoul ADEX 2023’을 참관해 스페이스 허브존에 전시된 누리호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한화그룹

    2023년 10월 18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이 ‘Seoul ADEX 2023’을 참관해 스페이스 허브존에 전시된 누리호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한화그룹

    “엔지니어들과 함께 우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가겠다. 누군가 해야 하는 우주산업에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서겠다.” 

    2021년 3월 ‘스페이스 허브’ 출범 기념식에서 김동관(42) 한화그룹 부회장이 밝힌 우주산업에 대한 포부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당장 빛이 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사업이라면 기꺼이 발 벗고 나서겠다는 다짐이었다. 

    자주국방 위한 방산 소버린 AI 구축 추진

    최근 한화그룹 방산 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가 국방 AI 기술 연구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산 3사는 3월 방위사업청 주관 간담회에서 첨단 AI·무인화 체계 개발 현황 및 기술개발 로드맵을 공개했다. 한화그룹은 한화시스템의 무인수상정과 저궤도위성 기반 다계층 통합 통신체계, 한화오션의 무인전력 지휘통제함 등 다양한 유무인 복합체계를 통한 AI와 무인화 기반의 ‘육해공 통합 솔루션’을 제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8년까지 다목적무인차량 아리온스멧(Arion-SMET), 자체 개발한 차세대 무인차량 그룬트(GRUNT) 등 무인차량 풀 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7월 한화시스템은 서울대학교·카이스트·포스텍·네이버클라우드 등 10여 개의 국내 대학, AI 선도기업, AI 중소기업들과 ‘국방 AI 기술자립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 대학 및 기업들과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해 대한민국 안보력 증강을 위한 AI 기반의 ‘K-방산’ 생태계 구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화시스템은 이번에 MOU를 맺은 기관과 함께 대공 방어를 위한 ‘미래형 전장(戰場) 상황인식 AI모델’의 연구개발(R&D)에 착수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분야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김 부회장의 결단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는 김종희 한화그룹 선대 회장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리고 김 부회장까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경영 DNA ‘사업보국’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100년 한화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집중에는 김 부회장의 사업 철학이 녹아 있다. 현장과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경영 방침과 대를 이어 내려오는 ‘사업보국’ 정신, 그리고 사업적 선견지명과 글로벌 리더십이 맞물려 오늘날 한화그룹의 성과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김 부회장의 기업가정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100년 한화의 미래를 열어나가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10년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에 차장 직급으로 입사했다. 입사 후 얼마 뒤, 업황이 급속도로 나빠지던 태양광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한화솔라원(현 한화솔루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정적 사업 구조가 갖춰진 핵심 계열사에서 이른바 ‘경영 수업’을 받는 통상적 사례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수출을 견인한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수출을 견인한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핵심 계열사 ‘경영 수업’ 대신 현장과 부대끼며 새 도전

    김 부회장은 한화솔라원에서 독일 태양광 전문 기업인 큐셀 인수에 힘을 보탰다. 큐셀 인수 후 사명이 한화큐셀로 바뀌자 2013년 8월부터는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직을 맡았다. 2015년 김 부회장이 한화큐셀 영업실장(상무)을 맡은 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한화큐셀 전무로 승진해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2016년 한화큐셀의 매출은 24억2660만 달러(3조3754억 원)로 전년(18억80만 달러) 대비 34.8%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억75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7790만 달러) 대비 1억2960만 달러 늘었다. 

    김 부회장은 한화그룹에 방위산업 분야도 확대시켰다. 2014년 한화그룹이 삼성그룹의 방산 및 화학 계열사 4개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김 부회장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재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화그룹은 같은 해 11월 삼성그룹의 석유화학 부문인 삼성종합화학(현 한화임팩트)·삼성토탈(한화토탈에너지스)과 방산 부문인 삼성테크윈(한화에어로스페이스)·삼성탈레스(한화시스템)를 약 2조 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단행했다. 일각에선 김 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두터운 친분 관계가 ‘빅딜’ 성사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방위산업은 큰 이익을 보기는 어려운 산업이라는 인식이 컸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방산은 국내 납품 위주의 내수 중심 사업이었다. 잇따른 방산 비리 논란으로 사업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한화그룹 경영진 상당수는 방산 계열사 인수에 부정적이었다. 김 부회장은 한화그룹 경영진을 직접 설득했다. 김 부회장은 경영진이 모인 자리에서 “한 나라가 독립국가로 생존하려면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방위산업의 자립이 필수”라며 “특히 방산 물자 자립은 한화가 끝까지 앞장서서 해내야 한다. 다른 기업이 포기해도 우리는 끝까지 이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고, 이게 한화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해당 내용을 보고 받은 김 회장도 “(김 부회장의 말대로) 방산은 모두가 포기해도 우리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며 한화그룹 임직원은 선대 회장님이 강조해 온 ‘사업보국’ 정신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한화그룹 인수 이후 순항하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안보 지형 변화에 따라 호황을 맞이했다. 2022년 폴란드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루마니아 등 동유럽권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시장에도 진출했다. 내수 중심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던 방산은 ‘수출 효자’가 됐다. 2024년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수출액 4조4000억 원, 내수 4조 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내수 매출을 앞질렀다. 창사 이래 최초 기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출을 이끈 이는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김 부회장이다. 2021년 말 유럽의 정세가 빠르게 변화하자 김 부회장은 방산 물자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신속하게 현지 동향 및 시장조사를 지시했다. 그렇게 꾸려진 유럽 시장조사 TF는 기존 K9 자주포 구매국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등은 물론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스페인 등 사실상 유럽 전역을 돌며 현지 관계자(군 당국, 현지 방산업체, 한국대사관 관계자 등)를 만나 전방위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김동관의 ‘선견지명’… 방산 수요 예측, 조기 시장조사

    조사단은 현지 방산 수요를 파악하며 각국 대화 채널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한화그룹의 무기 및 방산 물자의 강점을 적극 홍보했다. 특히 품질이 검증된 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현지 관계자 상당수는 한화의 방산 물자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분위기가 반전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유럽 안보 상황이 급격하게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가 먼저 한화의 방산 물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해외 수출 시장이 크게 열렸다. 2022년 7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 군비청(Agencja Uzbrojenia)은 K9 672문, 다연장로켓 천무 288대 수출을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매출 11조 원 돌파

    김 부회장은 방산 물자 세일즈 최전선에서 일한다. 방산 물자 특성상 수출은 상대국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김 부회장은 직접 각국 정부 관계자들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무기 및 안보 체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각국에 필요한 안보 솔루션을 제시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폴란드 K9 2차 수출 계약 과정 때 일화다. 당시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 국영은행(BGK)에서 자금이 조달되지 않으면 K9을 추가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화 측 관계자는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BGK 은행 측이 너무 많은 조건을 내건 탓에 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고 귀띔했다. 김 부회장은 직접 BGK 은행장을 찾아가 민간 차원의 현실적 금융지원을 제안했고, 결국 BGK 측이 마음을 돌려 K9 자주포의 폴란드 2차 수출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김 부회장의 역할이 돋보였다. 김 부회장은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부 장관을 만나 방산협력 MOU를 체결했다. 한화가 사우디의 중장기 방위사업 전략의 핵심 파트너가 된 셈이다. 이듬해 서울에서 다시 압둘라 장관과 재회한 김 부회장은 방산 물자 현지화, 공동 개발, MRO 사업 등 포괄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발전 전략인 ‘비전2030’과 중동 지역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압둘라 장관은 “사우디는 한화그룹과 장기적으로 전략적 관계를 가져가기를 희망한다”며 “상호 협력을 통해 사우디를 넘어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한화그룹과) 함께 방산 허브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제 정세에서 중동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한 김 부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등 여러 중동 국가와 접점을 만들고 있다. 올해 2월 김 부회장은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IDEX 2025’ 방산 전시회를 찾아 중동 각국 정부 관계자, 글로벌 방산 기업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이 행사에서 중동 최대 방산 기업인 EDGE 그룹 파이살 알 반나이 CEO 와 회동하기도 했다. 이날 회동에서 두 사람은 방산 물자 현지 생산, 무인 시스템 공동 개발, 항공엔진 및 전자장비 기술이전 등의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외에도 향후 해양과 위성, 우주산업 부문까지 포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가능성도 타진했다. EDGE 관계자는 “양 사는 각국의 방위력 증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협력 방안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회장의 경영 성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방산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2022년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성장을 거듭했다. 2021년 6조4151억 원이던 매출은 2022년 7조644억 원, 2023년 9조3590억 원을 기록했고, 2024년에는 처음으로 매출 10조 원을 넘겼다(11조2401억원). 영업이익도 2021년 3830억 원에서 2024년 1조7319억 원으로 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고공 행진하고 있다. 연말 종가 기준 2021년 4만8000원, 2022년 7만3600원이던 주가는 상승을 거듭해 2024년 32만6000원을 달성했고, 2025년 7월 31일에는 처음으로 장중 100만 원을 돌파(103만5000원)하기도 했다. 8월 5일 종가 기준(96만1000원) 시가총액 49조 원으로 코스피 상장사 중 시가총액 5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방산 국가대표가 되면서 한화그룹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24년 미국 주간지 ‘타임(TIME)’ 선정 ‘세계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우주회사로 도약하는 꿈도 꾸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1년 한화그룹은 그룹 내 여러 회사에 흩어져 있던 핵심 기술을 한데 모아 우주산업 전반을 지휘할 팀인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시켰다. 이 팀에는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한화시스템, ㈜한화 등 한화그룹 내 여러 회사의 관련 부서들이 통합 참여하고 있다.

    스페이스 허브 설치는 김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김 부회장이 우주산업에 진심이라는 전언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김 부회장은 예전부터)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우주산업이고, 한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개발에 나서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2023년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ADEX 2023’에 방문한 자리에서도 김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의 우주산업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 자체 기술 확보와 독자적인 밸류체인 구축으로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우주 사업을 추진하는 밑바탕에는 사업보국 정신이 깔려 있다. 3대째 이어져 오는 ‘사업보국’의 발로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3월 차세대 발사체 사업자로 선정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함께 누리호(KSLV-Ⅱ)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에 나선다. 해당 사업은 달 착륙선 등을 우주로 보낼 때 쓰는 새로운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민간기업이 항우연과 함께 설계부터 발사 운용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다. 본격적인 민간 주도 우주 경제 시대를 여는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 대비 향상된 성능으로 개발된다. 대형 위성 발사 및 우주탐사 등은 더 높은 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총 3차례 발사를 통해 2032년에 달 착륙선을 보내는 것이 목표다. 최근에는 항우연의 누리호 설계, 제작, 발사 운영 등 발사체 개발 전주기 기술을 이전받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국내 최초 우주발사체 전주기 기술의 민간 이전 사례로 대한민국 우주산업 생태계가 민간 주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남 창원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79년부터 생산해 온 항공은 엔진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남 창원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79년부터 생산해 온 항공은 엔진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첨단 항공 엔진 국산화의 꿈…사업보국 정신으로 도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9년 공군 F4 전투기용 J79엔진 창정비(최상위의 정비 단계) 및 생산을 시작으로 45년간 항공기와 헬기, 선박 등에 탑재되는 엔진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4월에는 1만 번째 항공기 엔진을 출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공군의 주력기 엔진 생산과 함께 45년 동안 총 5700대의 항공기 엔진을 유지·보수·정비(MRO)하는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엔진 설계부터 소재 및 제조, 사후 관리까지 통합 역량을 보유한 회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음 목표는 엔진 국산화다. 첨단 항공 엔진을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항공 엔진 독자 설계·제작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우크라이나 등 6개국뿐이다. 항공 엔진 독자 개발은 자주국방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수입에 의존하던 소재와 부품들도 국내 기업이 대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엔진 개발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성공하면 큰 이득을 보겠지만 성공에 이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 사업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및 관계사들은 사업보국 정신으로 이 사업에 도전했다. 단순히 국익만을 생각한 결정은 아니다. 항공 엔진 개발업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외교·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기술 자체가 무기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항공 엔진이나 관련 부품 수입이 금지된다면 한국의 국방력이 급속히 저하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마찬가지로 한국이 자체 항공 엔진 개발에 성공한다면 타국의 영향을 덜 받는 한편 기술이전 등을 통해 큰 수출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 엔진 분야 인재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연구 센터 설립 및 인재 채용을 통해 현재 200여 명인 항공 엔진 연구개발(R&D) 인력을 2028년까지 500명 이상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올해 초에는 서울대를 포함해 건국대, 부산대, 연세대, 인하대, 충남대, 충북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항공대 등 10개교와 2023년부터 맺어온 산학협력 네트워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허브’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허브는 앞으로 첨단 항공 엔진뿐만 아니라 최첨단 방산 기술과 우주항공 기술 등의 미래 연구과제 50건을 중장기에 걸쳐 수행하게 된다.

    김 부회장은 우주항공산업의 성패, 나아가 한화그룹의 미래가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화가 당장 필요한 인재 확보는 물론이고, 중학교 1·2학년 등을 대상으로 ‘우주의 조약돌 우주 영재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래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는 이유다. 김 부회장은 이와 관련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와 기술 확보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책임감을 갖고 해당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1월 20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및 만찬 무도회에 참석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났다. 한화그룹

    1월 20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및 만찬 무도회에 참석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났다. 한화그룹

    김동관의 꿈… 대한민국 미래 성장 엔진, 한화

    한화그룹은 예로부터 해외 유력 인사들과 관계가 깊었다. 김승연 회장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전직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재계에 걸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아들인 김 부회장도 이러한 인맥관리 능력을 물려받았다. 미국 유학 생활 당시 김 부회장은 미국 전역 중·고교 우등생 중에서도 선발된 인원만 가입할 수 있는 ‘쿰 라우데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뽑혔다. 대학 시절에는 하버드대 한인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글로벌 리더의 자질을 키웠다. 

    김 부회장은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더그 버검 내무장관 등 미국 정부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이 자리에서 김 부회장은 미국 정부가 큰 관심을 보이는 조선업 재건 정책과 관련해 한화오션의 경쟁력을 거듭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행사에 참석한 국내 재계 인사 중 김 부회장만이 미국 정부 핵심 인사들을 만나고 왔다는 소식은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7월 말, 김 부회장은 급히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 이른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관세 협상의 ‘핵심 키’로 부상한 가운데, 김 부회장은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존 펠란(John C. Phelan) 미 해군성 장관, 러셀 보트(Russell Vought)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보트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에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지낸,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대통령의 예산안 수립 및 집행과 행정부의 입법 제안,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다. 보트 국장은 미국 정부 조선업 재건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맡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설계·건조 능력을 보유한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교두보로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선박 건조 유지·보수(MRO) 등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중장기 사업전략과 투자 계획 등을 설명하며 미국 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보트 국장과 펠란 장관은 한미 관세협정 최종 담판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필리조선소 방문 상황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협상 최종 결정에도 필리조선소의 일이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8월 말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도 필리조선소를 방문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관세 협상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협상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발 더 나아가 “기업들이 조선업 등 주요 분야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적극 협조했다”고 말했다. 정부 주요 인사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김 부회장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측면 지원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김 부회장이 재계 인사 중 가장 많은 관심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화그룹은 이번 관세 협정 타결 직후 “마스가 프로젝트, 1500억 달러 조선협력 전용 펀드 기반 사업에 적극 참여해 대한민국 조선산업 발전에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을 냈다. 김 부회장도 “세계평화와 국제 정세 안정에 기여할 부분이 많을 것”이라며 “마스가 프로젝트의 장점을 잘 살려 단순한 이윤 극대화보다는 국가안보와 세계 속의 한국 방산 역사를 확대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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