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공세 피로감, 대법원장 압박
민주당 지지율 30% 답보상태, 국힘엔 기회
장외 집회·‘건국전쟁2’ 관람, 지지층 결집 행보만…
지지율 20% 박스권, 與 하락에도 반사이익 無
정의화 “무너진 자유민주주의 지키려면 함께해야”
비상계엄 이후 ‘한 지붕 두 가족’, 심리적 분당 상황 극복해야
9월 21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분수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다. 승리의 방정식은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를 지키면서 중도층인 ‘산토끼’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집토끼’인 전통 지지층은 배신자 논란으로 사분오열 상태다. ‘산토끼’인 중도층 표심은 아예 사냥할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대구·경북(TK)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험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 관건은 ‘윤석열 손절’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전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현재 극성 팬덤에 따른 여야 정치 지형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중도층 확보가 승리의 열쇠임에도 국민의힘은 왜 해답을 외면하고 있을까.
국민의힘, 내년 지방선거 ‘빨간불’
지금의 국민의힘은 역대 최약체 야당이다. 6·3대선 패배 이후 사실상 제1야당의 역할은 봉쇄당했다. 특히 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의 공세에 반격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수권 정당의 역량도 보여주지 못한다. 장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제대로 싸우는 게 혁신” “‘싸우지 않는 사람은 배지 떼라’는 게 혁신”이라면서 지지층 결집과 대정부 투쟁을 강조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윤희웅 오니피언즈 대표는 “통상 대선 패배 이후 야당은 자체 쇄신보다는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효과를 누리면서 회복하는 게 대부분”이라면서도 “국민의힘은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대중적 불신이 더해졌다.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 없이 강성 지지층 위주의 당 운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대로 가면 5년 내내 위기다. 정국 중대 분수령인 내년 지방선거 전망도 불투명하다. 보통 집권 1년차 지방선거는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불명예 퇴진했던 윤석열 정부마저도 직전 지방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뒀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지사 중 경기·광주·전라남북·제주 5곳을 제외한 12곳을 싹쓸이했다. 물론 국민의힘도 희망이 없지는 않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50% 턱걸이 수준이다. 민주당 역시 중도층의 외면으로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민심만 잡는다면 반등이 가능하다.
승패 기준은 어떨까. 윤희웅 대표는 “국민의힘이 17개 광역시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보다 우세한 결과를 얻는 건 녹록지 않다”면서도 “최악의 경우 전체 성적표가 나빠도 서울과 부산만 사수한다면 선방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교수 역시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20%대에 고착화됐다.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반사이익이 없다”며 “윤 전 대통령과 손절하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 서울과 부산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은 강성 팬덤에 포획돼 당의 중도 확장과 유연성이 크게 제한된 상태다. 현재 국민의힘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지역은 사실 영남뿐이다. 특히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한다면 2018년 지방선거 치욕의 재림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17개 광역시도지사 선거에서 대구와 경북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0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롯데시네마 영등포점에서 영화 '건국전쟁2'를 관람하고 있다. 뉴스1
위헌정당 압박에 극우 정당 이미지도 부담
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 등 3대 특검의 수사도 부담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구속 수감으로 마무리되는 사안이 아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고위 관료와 권성동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현역 의원들도 특검 사정권에 있다. 민주당의 내란 척결 공세에 속앓이만 깊어지고 있다.물론 기사회생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답은 간단하다.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층 민심의 확보가 절실한데 국민의힘의 행보는 정반대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을 손절하지 못하는 태도는 중도층 외연 확대를 가로막는 구조적 변수다. 다시 말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 1심 판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상황 변화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강성 지지층의 눈치만 보고 있다. 때로는 극우라는 비판마저 감수한다.
대표적 사례가 장외 집회와 ‘건국전쟁2’ 영화 관람이다. 유튜브와 SNS가 주도하는 실시간 정치 세계에서 장외 집회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의 선택은 6년 만에 장외투쟁이었다. 현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을 거론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허니문 기간을 고려하면 생경하고 낯선 구호다. 9월 21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첫 장외 집회 현장에는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부정선거 음모론)’, ‘프리 윤(윤 전 대통령 석방)’ ‘윤 어게인’ 등의 극단적인 구호도 쏟아졌다.
장 대표가 10월 7일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명분으로 제주 4·3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를 공개 관람한 것도 긁어 부스럼이었다. 광주가 5·18이라면 제주는 4·3이라고 할 정도인데 사실상 제주지사 선거전을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패착이었다.
물론 국민의힘의 강경 스탠스는 민주당의 공세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정성호 법무장관은 국회 법사위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위헌정당 해산 청구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며 “민주당이 정당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위헌정당 해산을 거듭 압박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대여 투쟁 총력전에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차 교수는 다만 “향후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이 대두될 경우 강성 지지층도 보다 전략적 사고를 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헌정 사상 대통령 탄핵 시도는 총 3차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반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인용됐다.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된 것이다. 연이은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보수진영의 혼란상은 극심하다. 특히 현 상황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보다 더 암울하다. 탄핵 찬반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지붕 두 가족’의 심리적 분당 상황이다.
범야권에서 개혁보수, 중도보수로 분류되는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탄핵 후유증에 ‘배신자 낙인’ 속출
따져보면 국민의힘의 본질적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 탓이다. 2022년 대선 승리 이후 뺄셈의 정치에 몰두해 왔다. 주류 친윤에 반대한 비주류 정치인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는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대선 당시 단일화로 정권교체에 일조했던 안철수 의원은 늘 ‘우리 편이 아닌 남’이라는 찬밥 신세였다. 정통 보수 정치인인 홍준표 전 대구시장 역시 탈당 이후 친정에 쓴소리를 쏟아낼 정도다. 이들의 존재는 개혁보수나 중도보수에 가까운 쇄신파의 위치였다.시작은 대선 승리를 이끈 이준석 축출이었다. 이 대표는 탈당 이후 개혁신당이라는 딴살림을 차렸다. 이후 총선·대선 독자 출마 및 완주로 국민의힘의 선거 승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개혁보수의 상징인 유 전 의원은 박근혜 탄핵 이후 ‘원조 배신자’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윤석열 정부 시절 강성 지지층의 반발에 경기지사 출마와 대선 출마가 좌절된 이후 사실상 ‘칩거’ 상태다. 윤석열 정부 황태자였던 한 전 대표 역시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을 주도하면서 ‘윤석열 정부 붕괴의 일등 공신’이라는 지지층의 악평에 시달린다.
비주류 정치인에 대한 배신자 낙인으로 당 외연은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강성 지지층만을 대변한다는 낡은 이미지만 남았다. 위기 탈출의 1차 관문은 역설적으로 배신자(?)들과의 화해 및 통합이다. 국민의힘에서 배신자로 불리는 건 민주당의 수박 낙인만큼이나 무서운 꼬리표다.
국민의힘이 분열을 극복하고 화해를 실천할 수 있을까. 김진욱 평론가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친윤 주류는 이준석과의 화해는 가능하나 한동훈과는 절대 손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여의도에 파다하다. 비상계엄 해제와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의 경우 ‘유승민보다 더한 배신자’라는 강성 지지층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차재원 교수는 “장 대표가 극우노선을 고집할 경우 지방선거에서 공멸할 것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전한길 씨 같은 극우 유튜버에 끌려다니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준석과 연대하기 위해 최소한 ‘유승민 경기지사’ 카드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파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따져보면 국민의힘에는 호재도 적지 않다. △내란 공세 장기화에 따른 국민적 피로감 △대법원장 흔들기와 과도한 사법부 압박 △여야 협치 없는 초강경 기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마비 사태 △10·15 부동산정책 후폭풍 △김현지 대통령실제1부속실장 국정감사 출석 논란 등 민주당의 악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국정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국면을 거쳐 지지율이 반등한다면 향후 국정주도권 장악도 가능하다. 과거 한나라당과 미래통합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제1야당인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은 17대 총선 이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늘 압도했다. 2007년 대선은 그야말로 낙승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30대 중반 이준석 대표’라는 파격 카드 이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승리에 이어 2022년 대선에서 신승을 거뒀다.
재선으로 드물게 제1야당 수장에 오른 장 대표로서는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당 안팎의 모든 문제를 컨트롤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보수 정치 원로들에게 조언을 구한 이유다. 당 상임고문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무엇보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 어게인’ 등 낡은 구호와의 작별을 강조했다. 특히 “한때의 권력을 누리고자 줄 세우기를 하고 계파를 만들고, 서로 적대하고 분열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무너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승민, 이준석, 한동훈 등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반성과 쇄신의 토대 위해서 단합을 강조한 것이다.
국민의힘 정의화 상임고문이 10월 13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티클럽 백원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도읍 정책위의장, 정 고문, 장동혁 대표. 뉴스1
장동혁 대표의 깊어지는 고뇌
다만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국민의힘은 민심보다는 당심이 최우선 작동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당원 투표 100%’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선출한다는 ‘게임의 룰’ 개정하며 당에 민심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 ‘국민 속으로’를 외쳐왔던 대중 정당이 ‘당원과만 함께하겠다’고 외치는 자충수를 선택한 것이다.신율 교수는 “민심과는 다소 이질적인 당심 위주의 선거는 국민의힘의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해 왔다”며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는 ‘당심 50%·민심 50%’를 반영하거나 어렵다면 민심 반영 비율을 최소한 40%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재원 교수 역시 “지나치게 당심에 치우진 게임의 룰을 공직 후보 선출에 적용하면 중도층 외연 확장은 물거품이 된다”면서 “시도지사 경선은 기본적으로 ‘당심 50%·민심 50%’ 원칙을 적용하되 ‘당심 40%·민심 60%’의 파격적인 위기 탈출 대안 검토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보수의 사분오열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지방선거 승리는 불가능하다. 반(反)이재명이라는 명분 앞에 모두가 하나가 되는 용광로 정당이 절실하다. 보수 분열이 내년 지방선거에도 이어진다면 총선 대선에 이어 전국 단위 선거 3연속 패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희웅 대표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변화는 절실하다”며 “장동혁 대표는 친윤 위주의 당 운영이 아니라 보수 중도성향인 오세훈·안철수·이준석의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플러스해서 한동훈·유승민의 공간까지 만들어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대등한 경쟁 구조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민의힘 ‘사법파괴 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는 ‘윤 어게인(윤석열 전 대통령+AGAIN)’ 문구를 외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동아DB
반대로 국민의힘 안팎의 환경을 고려한 비관론도 나온다. 김진욱 평론가는 “국민의힘 내부에는 확실한 ‘윤 어게인’ 지지층의 존재가 있다. 이들의 지지로 대표가 된 장동혁 대표는 과감한 손절 없이 그 페이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강성 지지층보다 중도층을 강조하면 한동훈 전 대표처럼 ‘역적 낙인’의 수순이 이어진다. 국민의힘 내부의 관성을 깨기도 힘들고 사실상 내부 동력도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