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

입력 : 2020.04.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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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

intro

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마흔여섯 번째 책은 ‘숲의 즐거움’(우석영 지음 / 에이도스)이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

“걷는 사람은 잠시 ‘동떨어진’ 사람이다. 사회적 의무와 관계, 소속단체와 지위, 페르소나… 이 모든 것에서 잠시 해방돼 오직 걷는 심신이라는 단순한 존재로 돌아갈 때, 우리에게 다른 시간이 열려 온다.”

나는 우석영을 아주 독특한 철학자로 기억한다. 몇 해 전 나는 그의 책 ‘철학이 있는 도시’를 보면서 ‘세상을 이런 각도로 볼 수도 있구나…’ 하고 시종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은 50여 장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통해 현대 한국과 한국인, 도시의 문제를 탐색하는 내용이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그토록 구체적인 사회학적 사유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의 새 책 ‘숲의 즐거움’이 최근 출간됐다. 숲과 산책에 관한 철학 산문이다. 숲과 산책에 대한 예찬을 넘어 우리가 숲과 더불어 교감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선 그는 ‘숲과 사귀라’고 권한다. ‘사귀다’라는 말은 “서로 얼굴을 익히며 친하게 지내다”라는 뜻이라면서, 숲을 산책하며 사귀는 시간이 곧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숲은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숲과 나, 65×53.5㎝, Oil On Canvas 2020

숲과 나, 65×53.5㎝, Oil On Canvas 2020

그러면서 “숲을 찾아갔다면, 비밀의 단서를 찾아보라는 숲의 주문에 응답해야 한다”고 나에게 주문한다. 주문(注文)이 주문(呪文)처럼 내 가슴에 들어왔다. 저자는 숲이 마치 마법이라도 펼쳐지는 곳처럼 묘사했다. 자기 자신을 소중한 친구로서 사귀게 하는 마법 말이다.

물론 저자가 몽환적인 문체 따위를 동원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리 읽었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저자와 함께 숲을 걸었고, 철학자와의 산책은 그 자체로 깊고 맑은 사유가 됐다.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곤충이 사람에게 ‘움직이는 나무’라고 지칭하는 대목을 본 적이 있다. 관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곤충에 의해 식물로 분류된 인간’이라니 말이다.

그 대목 을 읽으며 나는 ‘곤충은 화가 같구나’ 하고 생각했다. 형태적으로 보면 사람의 몸통은 나무의 기둥이며, 팔과 손가락은 나뭇가지와 같다. 또 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끝없이 모습이 바뀐다. 인간도 한평생 끊임없이 변해 가니 이런 점도 같다. 곤충처럼 생각하면 나무와 사람을 굳이 분류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숲의 즐거움’을 읽고 나서 나는 집 밖으로 나가 숲을 걸어 보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곤충처럼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리 말을 하자 나무가 곧 회답했다. 나무는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비유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우리는 광합성을 통해 지구의 산소 농도를 조절하지. 또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숨쉬게 만들어 줘. 하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플라스틱? 미세먼지? 화학물질? 방사능? 너희도 생명이면서 왜 모두 함께 영원히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 지?’

그날 숲길에서 나무는 나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저자는 ‘숲의 즐거움’에서 숲과 식물을 이해하려면 멈춰야 하고, 관찰하거나 관조해야 하며, 생태적 상상력을 발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산책하는 아이들의 행동과 똑같다.

숲을 산책하는 아이들은 지나가는 개미나 풀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온갖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때때로 숲을 산책하고 온 날, 아이들은 깜짝 놀랄 만한 깨달음의 말들을 불쑥 꺼내기도 한다. 숲에서는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의 선생님이며 보호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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