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여행하면 낭패…푸드뱅크에 줄 선 미국 공무원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10.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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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을 여행한다면 실망하기 십상입니다. 특히 연방 정부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워싱턴DC의 경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국립미술관, 항공우주박물관 등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미 연방 정부 폐쇄 때문입니다. 이달 1일부터 시작됐으니 3주가 넘었습니다. 역대 두 번째로 긴 폐쇄 기간입니다. 가장 긴 건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있었던 35일간의 폐쇄였습니다.
여행객들은 약간의 실망과 불편을 감수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 끼니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먹거리 나눔터(푸드뱅크) 앞에 줄 서는 공무원들

우리나라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에서 제때 통과되지 않으면 임시 예산을 편성해 운영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법안으로 예산안이 마련되는데, 의회를 통과되지 못하면, 의무 지출이나 다년간 승인된 예산이 아니면 연방 정부가 집행할 수 없습니다.
연방 정부 공무원이나 계약자들에 대한 임금은 의무 지출에 해당하지 않아 임시 휴직에 들어가거나 무급으로 일하게 됩니다. 현지 언론은 임시 휴직에 들어간 공무원 7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 공무원까지 합하면 급여를 받지 못하는 공무원은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곳이 결국 먹거리 나눔터, 푸드뱅크입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곳은 수도 워싱턴DC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메릴랜드주 랜도버의 푸드뱅크입니다. 평소 저소득층을 상대로 음식을 나눠주다, 정부 폐쇄가 길어지면서 공무원과 그 계약직 직원들만을 위한 행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150명보다 훨씬 많은 370명이 몰렸다고 합니다. 평소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나눔에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린 적은 없다는 게 단체의 설명입니다.
이곳을 찾은 공무원들은 동료들을 만났다며, 공무원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푸드뱅크에 줄을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 뭐라도 해야…차 트렁크에 '중고 물건' 팔기

미 노동부 공무원인 이멜다 씨는 보름 전 임시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난독증이 있는 아이의 개인 교습을 끊었고, 이젠 차 할부금을 내야 할지, 음식을 사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만들어보려고, 집 안에서 안 쓰던 물건을 찾아 길거리 판매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월급쟁이의 생활은 비슷합니다. 월급이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면 그다음 달 월급이 기다려지는데, 이게 갑자기 끊기면 막막해지는 생활입니다.
앞서 푸드뱅크를 찾았던 미 상무부 직원 서머 커크식 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월급은 못 받았지만, 집세, 자동차보험, 학자금 대출, 가스요금, 전기요금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참 많이 먹을 시기인 15살 아들이 있는 다른 공무원은 집에 어떻게 음식을 채워야 하나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호소했습니다.
■ 다음 주 월요일에도 해결 안 되면 "4천2백만 명 영향권"
연방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공무원 외에도,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도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저소득층 유아 교육을 지원하는 헤드 스타트(Head Start)나 식료품 지원(SNAP)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은 5살 이하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혜택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교육받는 동안 부모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해에 혜택받는 아이들이 80만 명에 이릅니다. 지원이 끊기면 아이들은 교육 기회를, 부모들은 돈을 벌 기회를 잃습니다.
스냅(SNAP :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영양 보조 지원 프로그램)은 식료품 구입을 위한 쿠폰을 지급하는 제도로 4천2백만 명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스냅이 끊기는 건 이들에겐 '배고픔'을 의미합니다.
이런 프로그램 관련 예산은 매달 1일 집행되는데, 집행 준비 시간까지 감안하면, 예산안은 다음 주 월요일인 27일까지 의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미 상원은 11번 표결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민주당 측은 정부 폐쇄 해소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폐쇄가 해소돼야만 만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연방 정부의 자금이 필요한 이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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