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술도 첨단기술도 필요 없었다…루브르 절도 사건의 전말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10.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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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상의 유물)를 훔치는 주인공. 내부 직원인 척 속이려 철저한 위장술에 통신 교란, CCTV 사각지대를 활용한 눈속임, 순간적인 전시장 조명 조작 등 온갖 기술을 동원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뤼팽'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번 루브르박물관 절도 사건을 보면,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허술합니다. 위장술은 커녕 작업자인 척 노란 조끼를 입은 게 전부였고,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대놓고 전시장으로 침입했습니다. 보안요원과 마주침을 피하려 했던 드라마 속 주인공과 달리 현실 속 절도범들은 보안요원을 위협해 쫓아내고는 보석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드라마에선 진품과 모조품을 바꿔치기하는 여유로움과 대담함까지 보였지만, 이번 사건의 절도범들은 도난품 중 가장 화려한, 나폴레옹 3세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을 떨어뜨리고 가는 실수까지 저질렀습니다. 드라마보다 덜 드라마틱한 이번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봅니다.

■ 침입부터 도주까지 딱 7분

오전 9시 34분. 센 강변 쪽 루브르박물관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전시실로 들어간 절도범들. 경보 시스템이 울렸지만, 범행은 계속됐습니다. 그들은 귀금속이 전시돼 있던 유리 진열장을 잘라내고 9점의 귀금속을 훔친 뒤 서둘러 달아났습니다.

오전 9시 40분. 올라왔던 그대로, 사다리차를 통해 다시 내려가 4인조 절도범들은 스쿠터를 타고 서둘러 현장을 떠났습니다. 침입부터 도주까지 걸린 시간은 7분에 불과했습니다. 전시실 안에서 보물을 훔치는 데는 단 3~4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보안요원들은 경보를 울리고, 경찰에 절도범들의 침입 사실을 알렸지만 이미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곧이어 경찰이 출동했고, 주변 보안을 위해 루브르박물관 앞 카루젤 광장이 폐쇄됐습니다. 바로 이때 절도범들이 떨어뜨리고 간 외제니 황후의 왕관이 부서진 채 발견됐습니다.

절도범들이 훔쳐 달아나다 떨어뜨려 파손된 채 발견된 외제니 황후의 왕관   © 2016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절도범들이 훔쳐 달아나다 떨어뜨려 파손된 채 발견된 외제니 황후의 왕관 © 2016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

■ CCTV 작동 안 했나?

로랑 누녜즈 내무부 장관은 루브르의 전시실 중 일부만이 CCTV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번에 도난당한 유물이 전시돼 있던 아폴론 갤러리에 CCTV가 설치돼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경보 작동 여부와 관련해선, 아폴론 갤러리 창문이 깨지자마자 박물관 관제실에서 경보가 울렸고, 매뉴얼에 따라 경찰 병력도 즉시 요청됐다고 말했습니다.

절도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공개된 프랑스 국가 회계원의 예비 보고서를 보면, 루브르박물관에서 아폴론 갤러리와 모나리자 전시 구역이 속한 데농관의 경우 방 3개 중 1개 꼴로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폴론 갤러리가 CCTV가 없는 방인지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루브르박물관 내 갤러리와 동별 CCTV가 부족한 데다 장비 노후화로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 건물 외벽과 창문에 대한 보안이 허술해 범인들이 센 강변 쪽에서 사다리차를 이용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특히 경보가 울렸음에도 범인들이 유물을 훔쳐 탈출할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에서 경보 발령 후 대응 역량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경비와 감시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노동총연맹 문화 부문 노조는 루브르 박물관의 감시 요원이 부족하다며, 지난 15년 동안 2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방문객 수는 1.5배 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회계원 보고서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루브르의 보안 현대화가 늦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왜 개장 직후를 노렸나?

범행이 오전에, 개장 30분 뒤 이뤄진 점에 대해서도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주목했습니다.

유로뉴스는 박물관이 막 문을 연 뒤라 경비 인력 배치나 순찰 동선이 완전히 가동되기 전이었을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또 관람객이 몰리기 전이라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지 않은 틈새였을 거란 점도 지적했습니다. 르 몽드가 인터뷰한 한 루브르 직원은 아폴론 갤러리 감시 인력이 통상적 수준인 6명이 아니라 현재 5명뿐이며, 더욱이 첫 30분간의 아침 휴식 시간에는 단 4명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때가 바로 절도범이 침입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또 개장 직후엔 건물 밖과 작업 구역 등에도 인력 배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 범인들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외부에서 접근하기 쉬웠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고전적 건물인 루브르의 경우, 역사적 구조로 되어 있어 건물 외벽과 창문 등에 보안 강화 설비가 설치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며 이런 구조적 약점을 범인들이 미리 파악했을 수 있다고 '더 가디언'은 보도했습니다.

오히려 야간보다 대낮이 범행하기 더 수월했을 것이란 보도도 나옵니다. 인파가 어느 정도 있지만 주목도는 낮아, 빠르게 도주하고 시선을 분산시키기 쉬웠을 거란 뜻입니다. 또 야간 폐장 이후에 비해 출입 봉쇄와 경비력 집중, 카메라 작동 등 보안 문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했을 수 있다는 점도 범인들이 이 시간대를 노린 이유로 분석됩니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절도 사건이 준비된 조직범죄로 보인다고 보도합니다. 준비된 범행이라면 '가장 취약한 순간'을 찾아낼 가능성이 높고, 박물관이 개장하는 시간대, 사람들이 출입을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 훔친 귀금속 팔 수 있나?

18세기 마리 아멜리·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목걸이    © 2016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18세기 마리 아멜리·오르탕스 왕비의 사파이어 목걸이 © 2016 GrandPalaisRmn (musée du Louvre) / Stéphane Maréchalle

프랑스 정부는 도난당한 왕실 보석들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큰 유물들이라고 말합니다. 보석 감정 전문가들은 굳이 가치를 매긴다면, 캐럿당 500유로(우리 돈 83만 원)가 넘는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만큼, 유물의 금액은 천문학적이라고 평가합니다. 파리 검찰은 도난당한 유물을 시장 가치로만 따졌을 때 피해액이 약 8,800만 유로(우리 돈 1,462억여 원)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프랑스가 유럽 전역에 공조를 요청한 만큼 절도범들이 장물업자에게 현재 상태 그대로 팔아넘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입니다. 로랑 누녜즈 내무부 장관은 도난당한 보석들을 처분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보석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금 등을 조각으로 분해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럴 경우 절도범들을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원래 모습이 아닌 상태로 분해됐을 가능성이 커,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완전히 잃은 뒤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범인들을 잡고자 사활을 건 이유입니다.

■ 범인 잡을 수 있나?

범인들의 신상 정보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녜즈 내무부 장관은 이들이 외국인일 수 있고, 유물 절도에 노련한 전문가들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파리 검찰총장 로르 베퀴오 역시 이번 사건의 배후에 다른 나라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내무부 장관은 루브르 주변과 범인들의 추정 도주 경로를 따라 설치된 CCTV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분석된 영상에서 범인들이 포착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일부 영상에서는 절도범이 범행 당시 입었던 노란 조끼 하나가 루브르박물관에서 2km 떨어진 술리 다리에 떨어져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왼쪽: 범인이 범행 당시 노란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          오른쪽: 파리 센 강 술리 다리에서 발견된 노란 조끼왼쪽: 범인이 범행 당시 노란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 오른쪽: 파리 센 강 술리 다리에서 발견된 노란 조끼

다만 도주 과정에서 범인들이 흘린 수많은 단서는 그나마 수사에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우선,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서 절단기 두 개와 장갑 한 짝이 발견됐습니다. 이 장갑이 절도범의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산소 절단기와 무전기도 발견돼 수사기관은 DNA 흔적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절도범들이 버리고 간 사다리차, 또 이를 태우려고 가져온 휘발유 통 등도 단서들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수사기관은 사다리차의 번호판으로 범인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목격자도 있습니다. 사건 당시 센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있던 한 시민은 사다리차 한 대가 건물에 세워졌고, 두 남자가 그 위에 올라가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습니다. 이후 4명이 범행 뒤 스쿠터를 타고 파리시청 방향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러한 단서들을 통해 경찰은 범인들의 몽타주 제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 모나리자 도난 가능성은?

세계 최대 박물관인 루브르박물관의 보안 취약성이 드러나며, 루브르의 상징과도 같은 모나리자가 도난당할 위험성은 없는지 관심이 쏠립니다. 1911년 이미 도난당한 적 있는 모나리자는 루브르박물관 전시품 가운데 가장 특별한 보호를 받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유리공이었던 빈센초 페루지아에게 도난당한 지 2년 만에 모나리자가 루브르로 돌아온 이후 박물관 보안은 전면 개편됐습니다. 2005년 이후 모나리자는 높이 4미터, 폭 2미터의 진열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에 도난당한 왕실 보석들이 전시된 방탄 진열장보다 모나리자 진열장은 더 특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탄 처리는 다층 구조이며, 발사체, 열, 기계적 충격에 강합니다. 또 진열장의 압력이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루브르 보안 센터와 경찰청과 바로 연결돼 있어 문제가 있을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모나리자는 과잉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모나리자를 절도 표적으로 삼기에는 극도로 복잡할 것이라고 보안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 명성과 가치 때문에 모나리자는 잠재적인 표적으로 남아 있다는 게 일부 고고학자들의 의견입니다. 고고학자들은 현재의 보안 장치가 사실상 도난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설사 절도에 성공한다 해도 너무나 유명해서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나리자를 보호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도난당한 왕실 보석류는 판매가 가능하도록, 이미 여러 조각으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 건 아닌지, 이 점이 프랑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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