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맛 나시나요?” ‘로켓배송’ 기사들에게 물었더니

입력 2025.10.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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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배송기사들은 평균 하루 11.1시간을 일하고, 프레시백 회수에 56분을 씁니다"

로켓배송 기사의 과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온 '쿠팡'과 관련, 배송기사들의 업무 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어제(21일) '쿠팡 택배 노동자(퀵플렉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과거 노조에서 자체 진행해 결과를 낸 설문조사와 달리, 이번엔 연구기관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해 설문 문항(56개)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분석한 뒤 A4용지 50쪽이 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지난달 8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에서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쿠팡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배송기사 679명이 응답했습니다. 전체 쿠팡 배송기사의 3~4% 정도가 설문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3분의 1 이상 "주 5일 근무"…하루 평균 11.1시간 일해

가장 중점이 된 설문 문항은 단연 배송기사들의 노동 강도였는데요.

주당 근무 일수를 보면, 주 5일이란 응답이 36.8%로 가장 많았습니다.

한 주는 5일을 근무하고 다음 한 주는 쉬는 격주 방식으로 일한다는 응답이 28%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27.4%는 주 6일 일한다고 했는데, 기본 주 6일 근무 체제에서 6개월에 1번 정도 주 5일 근무한단 응답(0.9%)까지 포함하면 28.3%가 일주일에 6일 일한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주간에 일하는 배송기사의 경우 주 6일 근무 응답 비율이 33%로, 야간(10.2%)보다 3배 이상 많았습니다.

7일 일하고 하루를 쉬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응답은 0.9%였습니다. 또 응답자의 54.1%는 주 7일 연속 근무한 경험이 1번이라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주 6일씩 4주 근무 후 1주는 주 5일 근무, 주 5일씩 3주 근무 후 1주는 주 6일 근무, 5일 근무 후 1일 휴무의 반복, 6~7일 근무 후 2일 휴무의 반복 등 통상적인 주 5일제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경우들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설문에 따르면, 쿠팡 배송기사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1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하면 저녁 7시쯤 퇴근하는 셈입니다.

다만 주간 배송기사는 평균 11시간 반, 야간 배송기사는 평균 9시간 40분가량 일한다고 답해 일하는 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11월 쿠팡 야간 배송기사 767명(위탁계약)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노동시간이 평균 9시간 26분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와 그 수치가 비슷합니다.

연구진은 "20대는 평균 10.3시간, 30대는 평균 11.1시간, 40대는 평균 11.2시간, 50대 이상은 평균 11.3시간으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배송기사들이 일한다는 11시간 중 약 23%(2시간 반) 정도는 물품 분류 작업에 쓰이는 것으로 설문 결과 나타났습니다.

물품 분류 작업이란, 택배 물품이 모인 배송캠프에서 배송기사들이 출차하기 전 물품을 분류하고 차에 싣는 일을 말하는데요.

현장에선 물품 분류 작업이 배송기사 고유의 업무가 아닌데도 회사가 일을 떠넘기고 있다, '공짜 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습니다.

이에 쿠팡CLS 홍용준 대표는 지난 1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서 "(분류 작업이라는) 공짜 노동을 방지하기 위한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시냐"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영업점과 현장 종사자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설문 결과를 보면 이 문제가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 대표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요청을 받고 쿠팡 프레시백을 펼쳐보고 있다.지난 1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 대표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요청을 받고 쿠팡 프레시백을 펼쳐보고 있다.

'헐값 노동' 문제가 제기된 쿠팡 프레시백 회수에는, 배송기사들이 하루 평균 56분을 투입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73.4개의 프레시백을 회수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배송기사가 프레시백 하나를 회수할 때 받는 수수료는 100원 정도입니다.

식사 등 쉬는 시간은 평균 22.6분에 불과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연구진은 "특히 백업 기사, 야간 근무자, 남성의 경우 식사 및 휴게시간이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 10명 중 8명 "자유롭게 휴가 못 써"…걱정·부담 이유는?

일하는 동안 휴게시간 확보가 어렵다면, 아예 휴가를 내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응답자의 51.5%는 3일 이상 연속 휴가를 쓴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60% 가까이는 휴식, 여행을 위한 휴가였습니다.

다만 응답자의 82.2%는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유로는 휴가 기간 배송구역을 회수당할까봐 걱정된다는 응답이 28.4%로 가장 비율이 높았습니다.

휴가 기간 대신 배송 업무를 할 용역차량(용차)비를 직접 부담해야 해 부담스럽다, 대리점과의 계약조건상 휴가를 자율적으로 내지 못 한다는 답도 각각 25.7%, 25.1%를 차지했습니다.

실제로 "휴가 사용 시 용차를 사용했다"는 응답자(전체의 59.2%) 중 39.1%는, 본인이 용차비를 전액 부담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른바 '빨간 날'에도 배송기사들의 업무 부담은 컸습니다. 응답자의 89%가 명절 기간이나 공휴일에 (대리점에서) 배송 업무를 요구받았다고 답한 겁니다.

이같은 설문 결과에 대해 쿠팡CLS 관계자는 "매일 전체 CLS 위탁배송기사 3명 중 1명(6천 명)은 휴무를 취하고 있다"며 "이번 택배노조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CLS 위탁 배송업체 택배기사의 휴무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 '일할 맛', 5점 만점에 2.49점…58% "그래도 계속 일하고파"

설문 막바지엔 쿠팡 배송기사로 일하는 것에 만족하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응답 결과는 5점 만점에 평균 2.49점, 중간에 조금 못 미치는 점수가 나왔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수수료 조정·삭감과 프레시백 수거, 클렌징(배송구역 회수) 조건이 주된 불만족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노동 조건 개선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을 남겨달라"는 문항에 달린 답변들(아래)에서 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쿠팡 배송기사로 계속 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는 57.9%가 긍정 답변했습니다.

특히 야간 근무자(65.3%), 여성(66.7%), 50대 이상(61.5%)에서 긍정 답변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쿠팡 배송기사 일에 크게 만족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례로 설문에 응답한 쿠팡 배송기사들의 월평균 실질 소득(기름값·차량 유지관리비 등 제외)은 490만 8천 원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임금근로자 월평균 실질 임금(357만 2천 원)은 물론 상용 근로자 월평균 실질 임금(433만 8천 원)보다도 높습니다.

연구진은 다만 "응답자의 29%는 주 6일 이상 근무하고 하루 평균 11시간 일하는 점, 야간 배송기사도 일 평균 10시간가량 근무하는 점, 일반 노동자는 야간 노동(22시~06시) 시 통상시급의 50%를 가산(1.5배)하여 지급한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단순히 금액만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쿠팡 위탁계약 배송기사들은 기본 수당, 기본급 없이 배송 수수료를 주 수입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건당 수수료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 작년보다 더 많은 양을 배송하고 있음에도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송 물품 건당 수수료를 전년보다 하락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주말·야간 배송 건당 수수료를 50% 이상 할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설문조사에서 제기된 논점들은 사실 해묵은 과제들"이라며 "민주당 주도로 쿠팡CLS도 참여하고 있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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