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단지 ‘웬치’, 누가·어떻게·왜 오나 [지금 캄보디아는]②

입력 2025.10.21 (18:27) 수정 2025.10.21 (18: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KBS는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캄보디아 현지에 기자들을 급파했습니다. 캄보디아에 감금된 우리 국민들은 어떤 피해를 봤는지, 캄보디아 범죄 단지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자들이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 캄보디아 전역에 퍼진 '웬치'…그중 가장 큰 밀집지 '시아누크빌'

최근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되는 한국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웬치'라는 단어,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웬치(园区) 는 사전에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캄보디아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사기를 조직적으로 하는 '범죄 단지'를 뜻하는 단어인데요. 중국계 조직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보니, 실제 캄보디아인들은 '웬치'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 단지 '웬치'는 캄보디아 전역에 퍼져있지만, 현재 가장 큰 '웬치 밀집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캄보디아 남단에 있는 '시아누크빌'입니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기 좋고, 물이 맑아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해안 도시였습니다. 분위기가 변한 건 2017년쯤부터입니다. 중국 카지노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고층 건물들이 대거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마카오를 중국 정부에서 찍어 누르면서 걔들이 터져서 갈 데가 없으니까, 이쪽으로 카지노 자금이 처음에 온 거예요. 캄보디아가 마구잡이로 카지노 사용권(사용권)을 발행해서 180개가 나갔대요. 근데 실제로 세워지거나 운영됐던 거는 80에서 100개 정도고, 지금도 한 70~80개는 돌아갈 거예요." -시아누크빌 교민

그러던 중 캄보디아 정부가 2019년 가을부터 온라인 도박을 금지했습니다. '외국인 범죄자의 자금 유통에 이용되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중국계 조직들은 카지노와 호텔로 쓰던 건물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보이스피싱이나 가상화폐 투자 사기 등 온라인 기반 사기가 더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범죄 단지'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많은 건물이 비게 된 탓에, 조직들은 더 쉽게 '단지' 형태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웬치’. 시아누크빌 범죄 조직은 카지노 등이 있는 고층 건물의 일부 층을 쓰는 경우도 있고, 담을 친 ‘단지’ 형태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웬치’. 시아누크빌 범죄 조직은 카지노 등이 있는 고층 건물의 일부 층을 쓰는 경우도 있고, 담을 친 ‘단지’ 형태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 "알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죠"…범죄 수익 못 올리면 '빚 굴레'

그렇다면 이런 웬치에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은 어쩌다 이런 곳에 오는 걸까요. KBS가 캄보디아의 한 웬치 밀집지에서 범죄 단지 일을 봐주던 한국인 남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 남성은 "(범죄인 줄) 알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솔직히 말해 다 통장을 팔러 오거나 보이스피싱을 하러 오는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이른바 '한탕'을 위해 온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공장에서 일해 200만 원, 300만 원 번다 치면, 여기서는 앉아서 말 몇 마디 해서 천만 원, 2천만 원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오는 거죠. 불법이라는 건 알고 오죠. 그러다가 '난 취업 사기를 당해서 온 거다' 피해자 '코스프레(흉내)'를 하는 거죠. 제가 본 사람들은 다 그래요." -범죄 단지 '웬치' 관련자

실제 KBS가 현지에서 만난 범죄 단지를 탈출한 20대 대학생도 '한 달에 3천만 원에서, 많게는 5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텔레그램 광고 글을 보고 캄보디아행을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이나 노쇼 사기, 로맨스 스캠 등 각종 방법으로 조직이 원하는 만큼 실적을 내지 못하면 단지에서 지내는 비용이 '숙식비'로 청구됐습니다. 이 숙식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경험자 얘기입니다.

"천만 원 벌려고 그러면, 한 달에 뭐 건당 1억 이상은 올려야 천만 원 2천만 원 버는 건데 그게 쉽지가 않잖아요. 근데 만약에 그걸 못 벌었다 그러면 숙식비가 청구가 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빚이 계속 늘어나는 거예요. 보통 숙식비를 제가 알기로는 한 3천 불에서 5천 불 정도 주면 그냥 내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범죄 단지 '웬치' 관련자

KBS는 지난 17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웬치’ 관련 일을 하던 한국인 남성을 인터뷰했다.KBS는 지난 17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웬치’ 관련 일을 하던 한국인 남성을 인터뷰했다.

조직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협박,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팔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조직원이 조직에 빌린 돈이나 단지에서 지낸 '숙식비' 등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으로 다른 지역에 팔리는 겁니다.

"내가 중국 사장이네. 얘가 일을 못 해.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바벳에서 구인 광고가 떠요. 중국 애들끼리. 사무실 피싱 한국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쪽에 팔아넘기는 거예요. 5천 달러가 아니라 이제 8천 달러에 팔아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바벳에 가잖아요. 바벳에서 또 일을 못 한다. 그럼, 포이펫에 한 만 2천 불에 팔아먹는 거예요. 그러면 포이펫에서 일을 못 한다. 그럼 어딜 가겠어요? 태국 넘어가는 거죠. 태국 미얀마 그쪽으로 넘어가는 거죠." -범죄 단지 '웬치' 관련자

간혹 한국인의 경우, 단지에서 나가길 원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해 '빚진 금액'을 웃도는 돈을 요구하고, 이를 가족이 보내주면 풀어주는 일도 있다고 취재원은 전했습니다.

■ "취업 사기 피해자도 간혹 있어"…가해자·피해자 어떻게 구분할까

'취업 사기'를 당해 오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친한 조선족이 식당 한다고 해서 왔는데, 일을 안 하고 계속 호텔에만 있던 거죠. 그러고 나중에 호텔비를 청구하는 거예요. '우리 호텔에 있었으니까 호텔비 내라'. 얘는 이제 깜짝 놀라는 거죠. 일을 안 시켜서 여기서 지낸 걸 왜 그러냐. 그때부터 중국 애들이 개입하는 거죠. 처음에 3천 달러 내라, 하루 늦으면 6천 달러 내라, 그렇게 끌려간 걸 봤어요."
-범죄 단지 '웬치' 관련자

이렇게 '사기를 당해 끌려온' 사례도 있지만, KBS가 만난 취재원을 포함해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교민 대부분은 캄보디아를 찾는 청년들이 "열에 아홉은 범죄에 가담하는 걸 알고 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이번에 송환된 피의자 64명 중 대다수도 각종 사기 범죄에 연루된 게 인정돼 이미 구속된 상태입니다.

일부는 '전기 충격기로 고문을 받았다', '죽기 전까지 맞았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폭행·감금 등의 피해자이자 온라인 스캠 가해자일 수 있는 상황인 겁니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17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환 대상자들이) 기본적인 범죄 사실들은 다 가지고 있다"면서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양면적 지위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소위 말해 유인이 돼서 감금된 상태에서 범죄 사실을 일으켰는지, 그 부분은 수사를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송환된 이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이들의 출국 경위와 범죄 조직 구조, 단지 현황, 알선 조직을 본격적으로 수사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들이 가해자에 가까운지, 피해자에 가까운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