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13시간” 성추행 가해자와 함께 단체여행

입력 2025.10.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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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청송의 한 농촌 마을에 사는 70대 여성 A 씨. 16살에 시집을 온 마을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악몽은 2019년 11월 시작됐습니다.

당시 마을 이장이던 70대 B 씨가 집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발을 만지고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저지른 겁니다. 이후 1년 동안 B 씨가 억지로 찾아와 성추행한 것만 6번.

참다못한 A 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B 씨는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올해 7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2, 2025년 9월 16일

B 씨가 출소할 때쯤, 피해자 A 씨는 집에 CCTV와 안전 펜스를 설치했습니다. 또다시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단체 여행에 성추행 가해자가 나타났다마을 단체 여행에 성추행 가해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지난달(9월) 16일, 댐 지역 주민 보상 사업으로 경주와 포항으로 마을 단체 여행을 떠났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해자 B 씨가 마을 단체 여행에 나타난 겁니다.

마을에서 출발해 집에 돌아오기까지, 꼬박 13시간을 가해자와 한 버스에 타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피해자 A 씨는 즐거워야 할 여행 이후, 트라우마로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A 씨
"범죄자하고 마주치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몸이 화르르 떨리는 게 뭐 어떻게 할 정신이 안 되고 죽을 맛이었어요."

■성추행 가해자가 마을 단체 여행에?

가해자 B 씨는 어쩌다 마을 단체 여행에 참석하게 된 걸까요?


B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이전까지는 마을 행사에 나간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지인이 권유해서 여행에 참석했고, 피해자와는 대화가 일절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B 씨는 재판 과정에서, 마을을 떠나겠다고 해 유리한 양형을 받았지만, 만기 출소 후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양형 조건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접근 금지 명령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인인 A 씨는 법원에 가처분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결국 접근 금지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B 씨 역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경찰서에서도, 교도소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만약 그런 말이 있었다면 여행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행을 주관한 마을 이장도 여행자 보험 신청을 받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선제적인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 필요해"

농촌 성범죄의 경우 공동체 규모가 작은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시 만나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피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와 다시 만나는 일을 막기 위해 사전에 사법부 차원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송경인 대구 여성의전화 대표는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질 수 있는 상황에서 같이 가도 되겠나 하고 이렇게 인지할 수 있는데, (현재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며 사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KBS 보도가 나가자, 청송경찰서는 피해자를 상대로 보호 조치에 나섰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단체 여행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있게 되었다면서 마을 이장 관리 권한이 있는 청송군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성범죄 발생 환경의 특성에 따른 세심한 피해자 보호 정책이 마련될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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