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뛰어내리는 게 낫다”…탈출부터 귀국까지 [지금 캄보디아는]①
입력 2025.10.20 (17:00)
수정 2025.10.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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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대한 폭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KBS는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캄보디아 현지에 기자들을 급파했습니다. 캄보디아에 감금된 우리 국민들은 어떤 피해를 봤는지, 캄보디아 범죄 단지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자들이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
■ "납치 감금됐어요…탈출을 도와주세요"

지난 12일, KBS에 제보 한 건이 접수됐습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납치 감금돼 있는데, 곧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KBS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1시간 거리에 납치돼 있던 A 씨. 캄보디아 현지에 급파된 KBS 기자가 A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수십일 감금과 고문…차라리 뛰어내리는 게 낫다"

A 씨는 지난 8월 캄보디아에 입국했습니다. 여행차, 그리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휴대전화만 갖다주면 된다'는 친구 요청에 A 씨는 큰 의심 없이 캄보디아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친구와 인사한 것은 잠시뿐. 친구 손에 이끌려 프놈펜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는데, A 씨는 그 직후 아파트에 감금됐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일행은 다짜고짜 휴대전화를 빼앗더니, "너 때문에 피해를 봤다. 너는 빚이 생겼다"며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 급기야 A 씨의 통장과 비밀번호를 요구했습니다.

이후 폭행과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쇠막대기로 때리거나, 불에 달궈 피해자의 피부를 지졌습니다.
A 씨가 지쳐 잠들 때면, 전기충격기를 가져와 온몸을 지졌습니다. 가해자들은 심지어 "누가 A 씨를 더 크게 비명을 지르게 하는지 내기하자"며 서로 앞다퉈 A 씨를 폭행했다고 전했습니다.
<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A 씨> "때리면서 뭘 요구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심심해서 때리는 느낌" "베란다를 보면서 계속 이렇게 두들겨 맞는 것보다 뛰어내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렇게 수일간 이뤄진 고문에 A 씨의 온몸은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피해자는 두 달 동안 무려 4곳의 범죄 단지를 전전하며 고통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 "두 달간 범죄 단지 4곳으로 팔려 가…보이스피싱 강요"

A 씨는 두 달간 범죄 단지 4곳으로 팔려 갔습니다. 어떤 곳에선 폭행과 고문만 이루어졌고, 또 어떤 곳에선 보이스피싱을 위한 강제 교육이 진행됐습니다.
A 씨는 "범죄 단지에서 일정 수익을 내지 못하면 팔려 가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금 피해자가 범죄에 가담하지 않으려고 거부할수록 더 열악한 곳으로 팔려 가게 되는 구조라는 겁니다.
프놈펜 시내 중심부에서 시작해 포이펫과 같은 국경 도시로, 거기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미얀마 등 제3국으로 또다시 팔려나가는 식입니다.
■ "탈출 뒤가 더 막막"…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들

A 씨는 탈출한 뒤에 더 막막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감금 피해자들 대다수가 여권도 휴대전화도 없이 탈출하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구조를 요청하기도, 대사관을 찾아가기도 어렵습니다.
A 씨 역시 여권도 돈도 없이 겨우 몸만 빠져나올 수 있었고, 수중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휴대전화 한 대뿐이었습니다.
탈출 뒤에는 가해자들이 나를 다시 찾아올 거라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A 씨는 현지 경찰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탈출한 피해자들이 현지 경찰서로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 온다고 가해자들에게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A 씨에게 "어차피 다시 잡혀 오게 된다"고 끊임없이 겁박했습니다.
<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A 씨> "가해자들이 '네가 갈 때는 솔직히 대사관이랑 공항밖에 없다. 경찰서는 가봤자 우리한테 다시 잡혀 오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탈출한 피해자를 며칠 동안 몇 명씩 교대로 잡으러 다니기도 했어요" |
수십 일간 이어진 폭행과 고문에 이성적 판단도 어려운 상황. '다시 잡혀 올 것'이라는 가해자들의 협박에 A 씨와 피해자들은 용기를 잃고 결국 탈출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 "대사관도 문 닫아야 해요"…지옥 같은 3일

여권을 뺏긴 경우 귀국을 하려면 여권과 비자를 다시 발급받아야 하고, 여기엔 최소 3일 이상이 걸립니다.
A 씨는 대사관에 "출국 전까지 대사관에서 보호해 줄 순 없냐"고 물었지만, 대사관 측은 "대사관도 문을 닫으니까 여기서 주무시게 놔둘 수는 없다. 저희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답했습니다.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대사관에서 약 1시간 떨어져 있는 이민청에도 매일 방문해야 했고, 출국을 위해 공항에도 가야 했습니다. 납치, 감금 피해를 당한 A 씨가 불안해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는 "공항까지라도 동행해 주기는 어렵겠냐"고 대사관에 재차 물었지만 또다시 "동행은 어렵다"는 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A 씨> "범죄 단지에서 탈출해서도 잘할 수 있을지 용기가 없었어요" "여권 발급 기간 동안 숙소 좀 지원해 주고, 누가 동행만 해준다면 아무리 겁먹어도 용기가 생길 텐데" |
현재 캄보디아 스캠(사기) 단지에 구금돼 있는 한국인 피해자가 몇 명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몇백 명이라는 말도, 몇천 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A 씨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그곳에 갇혀있는 또 다른 피해자는 탈출할 용기를 가졌다가 금세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가해자들에게 다시 잡혀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 탈출에 실패했을 때 마주할 고문과 폭행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말이죠.
그렇다면 피해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탈출 후 귀국 전까지 피해자들을 보호해 줄 임시 숙소와 안심할 수 있는 동행자 등 정부의 발 빠른 지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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