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조직 수장 “뒷돈 주고, 외교관 여권으로 미 입국”

입력 2025.10.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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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린스 그룹' 천즈 회장, 금품 주고 외교관 여권까지

캄보디아 '태자단지' 등 대규모 사기 범죄 조직의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그룹'의 천즈 회장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줘 단속을 피하고, 외교관 여권으로 미국에 드나들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지 시각 14일 천즈 회장은 조직적 사기 공모와 자금세탁 공모 혐의 등으로 미국에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신병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까지의 수사 결과만으로 우선 기소된 겁니다.

미 법무부 공소장을 보면, 천즈 회장은 2015년쯤부터 프린스그룹의 회장으로 재직했으며 외관상 부동산 개발과 금융 서비스 등의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초국가적 범죄 조직'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미 법무부는 천 회장의 지휘 아래 프린스그룹이 캄보디아 전역에 강제 노동 수용소를 설립해 암호화폐 투자 사기와 기타 사기 행위를 저지르고, 방대한 기업 네트워크를 이용해 범죄 수익을 세탁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봤습니다.

미 법무부가 파악한 전 세계 피해자들의 손실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합니다.

특히 "천즈와 공범들은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법 집행 기관의 단속을 피했으며 여기에는 중국 공안부와 국가안보부도 포함된다"고 미 법무부는 밝혔습니다.

이들은 단속과 압수수색이 있기 전 정보를 얻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했고, 수사 동향 감시를 위해 '리스크 관리' 담당자를 따로 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천 회장은 공직자에게 제공한 뇌물 내역 장부를 직접 관리했으며, 수억 달러 규모의 뇌물과 사치품 구매 내역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장부에는 2019년 외국 정부 고위 관료에게 300만 달러(약 42억 5천만 원)가 넘는 요트를 선물했다는 내역이 나와 있습니다.

또 다른 외국 정부 고위 관료에게는 수백만 달러 상당의 고급 시계를 제공했고, 해당 관료는 2020년 천 회장이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도록 도움을 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천 회장은 이 외교관 여권으로 2023년 4월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중국에서 태어난 천 회장이 중국과 캄보디아, 바누아투, 세인트루시아, 키프로스의 시민권자였다고 설명했는데, 외교관 여권을 발급한 국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처벌 봐 줄 수 있다" 관료 말에 "아들 챙겨주겠다"

2023년 5월쯤에는 리스크 관리 담당자인 공범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국 공안부 관료가 "프린스 그룹 관계자들을 (처벌이나 수사에서) 봐 줄 수 있다"고 말하자, 공범은 "아들을 챙겨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공소장에 나와 있습니다.

같은 해 7월쯤에는 해당 공범이 중국의 한 법 집행 관계자에게 "지방 경찰이 프린스그룹을 대신해 지역 기업을 갈취하도록 하라”며, "경찰들이 그 기업들을 털면, 이후 우리 회사 이름으로 보호하는 것을 제안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과 짜고 현지 기업을 협박해 보호 명목으로 기업을 갈취하거나,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에는 단속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죽지 않을 정도만 때려라" 직접 지시

공소장에는 천 회장이 조직원들에게 폭력을 직접 지시한 구체적 정황도 나와 있습니다.

한 조직원이 사기 범죄 수용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폭행해도 되냐고 묻자, 천 회장은 '죽지 않을 정도로 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감금된 사람들을 계속 감시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수용소에서 사라진 2명이 경찰에게 발견됐다는 보고에는 "경찰 인맥을 활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미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캄보디아 범죄조직 ‘프린스 그룹’이 행한 폭행과 고문, 감금 사진들미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캄보디아 범죄조직 ‘프린스 그룹’이 행한 폭행과 고문, 감금 사진들

"수백만 개 휴대전화 번호 불법 구입…피해자 유인에 사용"

공소장에는 프린스그룹이 운용한 범죄 단지에서 저지른, 메신저나 SNS를 통해 접촉한 피해자와 신뢰를 쌓아 돈을 가로채는 '돼지 도살' 사기 수법의 4단계도 적시됐습니다.

먼저 ① 가해자가 가짜 신분으로 메신저나 SNS에서 피해자에게 접촉하고 ② 최대 몇 달에 걸쳐 대화를 이어가며 신뢰를 형성한 뒤 ③ '고수익 투자'나 '긴급 자금 필요', 로맨스 스캠 등으로 송금을 유도하고 ④ 송금 뒤 연락을 끊는 방식입니다.

시아누크빌 등 캄보디아 각지에 설립한 10곳 이상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는 일자리를 찾던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인신매매 등으로 감금됐으며, 천 회장이 직접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 시설을 구축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천 회장과 공범들은 2018년경 온라인 시장에서 불법으로 수백만 개의 휴대전화 번호와 계정 비밀번호를 구입했으며, 휴대전화 1,250대로 7만 6천 개의 SNS 계정을 조작·운영하는 시설 2곳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린스그룹 내부 문건에는 피해자와 친밀감을 쌓는 방법과 함께 SNS 계정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프로필 사진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 여성 사진을 사용하라'는 지시가 담겨있었습니다.

미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캄보디아 범죄조직 ‘프린스 그룹’이 사용한 휴대전화 사진미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캄보디아 범죄조직 ‘프린스 그룹’이 사용한 휴대전화 사진

"고도화된 가상화폐 세탁 기법으로 돈 빼돌려"

불법 자금 세탁 경로도 드러났습니다.

천 회장 등은 사기로 빼돌린 자금을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 형태로 모은 뒤 이를 법정화폐로 바꾸고, 그 현금으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재구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세탁했습니다.

또 막대한 양의 가상화폐를 수십 개의 지갑 주소로 분산시킨 뒤 다시 통합시키는 등 방법을 통해 자금의 출처를 추적하기 어렵게 만드는 고도화된 방식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천 회장과 고위 임원들이 나눠 가졌으며, 호화 여행이나 개인 제트기, 별장, 고급 시계, 피카소 그림 등 사치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미 법무부는 천 회장이 보유해 온 약 150억 달러(약 21조 원) 상당의 비트코인 12만 7천271개를 몰수하기 위해 압류했는데, 이는 미 법무부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천 회장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유죄 확정 시 최대 4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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