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 vs 14.4…‘국장’ 탈출 중인 국민연금 [연금 구조개혁]③

입력 2025.10.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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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식 투자와 아무 관계 없는 내용이니 '미국 투자가 답이다', '이제는 한국 증시다' 같은 댓글은 안 쓰셔도 될 것 같다. 제목의 38.9%는 내년도 국민연금 전체 자산에서 해외주식 보유 비율, 14.4%는 국내 주식 보유 비율을 말한다. 연기금이 해외 주식을 국내 주식보다 2.7배 더 보유하겠다는 뜻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중기 전략적 자산배분 계획에 따른 것이다.

장기 투자를 하는 연기금은 투자할 때 개별 종목을 사는 게 아니라 주식시장 자체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패시브 투자'라고 해서 증시에 상장된 상당수의 주식을 시가총액 비중만큼 사는 방식이다.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쫓아가면서 배당으로 순익을 취하는 식이다.

역사적으로 'S&P500'이 '코스피200' 보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준 것도 사실이다. 무국적 자본이라면 지금보다 한국 주식 투자 비율을 더 줄이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이 모은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을 돌이켜볼 때, 현재 해외투자에 쏠려 있는 투자 비율이 합리적인 것인지, 이런 투자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뭔지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2025.10.14)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2025.10.14)

올해는 한국 증시가 워낙 뜨거워서 국내 투자를 줄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이 더 커지는 분위기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질의를 받고, 국내 투자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 연금 보험료 올려 늘어난 기금, 모두 해외로 해외로

지난 3월 국민연금 모수개혁으로 가입자의 기여금은 소득의 9%에서 13%로 상향 조정됐다. 그만큼 국민연금 기금은 현재보다 더 많이 불어나게 된다. 그러나 지난 5월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전략적 자산배분을 보면 국민연금의 '국장(주식과 채권 모두) 탈출' 의지는 더 명확해 보인다.

국민연금은 2026년도 여유자금(국민연금 수입―지출) 약 130조 원으로 국내외 주식과 채권을 추가로 매입하게 된다. 해외 주식에는 약 50조 원을 추가로 투자하는 반면 국내 주식에선 917억 원을 감소시키기로 했다. 늘어난 자금을 국내 주식에는 한 푼도 투자 안 하고 오히려 있던 돈도 빼겠다는 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2025.5.29) 전략적 자산 배분(아래)과 여유자금 배분안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2025.5.29) 전략적 자산 배분(아래)과 여유자금 배분안

채권시장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내년 국내 채권에 약 37조 원을 투자한다. 분명 추가 투자는 맞는데 전년도 투자액 약 42조 원보다는 규모를 꽤 줄였다.(위 그래픽) 보통 국내 채권의 경우 만기가 도래하면 연장하거나 발행 시기만 다른 채권을 재매입하는 게 대부분인데, 기존 투자분 가운데 올해는 약 15조 원, 내년에는 약 19조 원을 빼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투자만 줄이고 늘어나는 기금은 모두 해외 주식뿐 아니라 해외 채권과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쪽으로 목표를 잡고 있다. 최근 원화 환율이 약해진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유행어처럼 국내 자금이 미국 주식시장으로 대거 몰려가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그 원조는 국민연금이다. 2천 년 대 초까지 만해도 '너무 국내 투자만 한다'고 비판을 받던 국민연금이 이제는 '너무 해외 투자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 실물 투자도 해외에서…. 빠르게 느는 대체투자

또 눈에 띄는 분야는 대체투자이다. 대체투자는 부동산이나 인프라, 사모펀드 등 주식과 채권이 아닌 기타 투자를 통틀어 말한다. 국민연금은 대체투자에 대해서만 국내와 국외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 88%의 대체투자는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투자는 주식보다 큰 수수료를 줘야 하는데 주로 해외 투자사에 위탁해 운용하고 있다.

대체투자는 약 5년 전부터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제 전체 국민연금 자산의 약 15%에 달한다. 최근 규모가 큰 투자는 여러 기관이 돈을 모아 펀드 형태로 투자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실물 투자를 직접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렇게 투자한 돈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과 첨단 기술 기업, 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에 쓰일 수 있다. 주식이나 채권보다 좀 더 생산적 투자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국내 투자는 국민연금의 관심 밖으로 밀렸다.

 자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자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으로 기금의 규모와 소진 시기는 연장되지만,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보험료 인상 때문에 국내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 게 뻔한데 연기금이 이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성장에 진입한 한국 경제에 잠재성장률을 높일 만한 대체(실물)투자를 늘려, 청년 일자리 창출과 보육 및 요양 산업 등 국민 삶을 높이는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에는 도로와 철도, 교량 등 여러 인프라 개발 투자에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국의 정부나 공공기관들에 사실상 투자 이익을 보장받고, 수익만 챙겨 외국으로 떠났다는 비판이다. 현재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끌 마중물(투자)이 절실한데, 적정한 수익이 보장된다면 국민연금이 국내 대체투자를 못 할 것도 없어 보인다.

국민연금 구조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이제 중요한 건 국민연금 제도뿐 아니라 기금 운용 철학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큰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기준에는 수익성과 안정성만 있는 게 아니고 공공성과 지속가능성도 있다. 저성장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연금이 보험료를 내는 국민에게 이로운 투자의 길을 찾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국민연금 구조개혁 연속 기획] 국가 경제와 국민연금 함께 갈 수 있을까?

1편 : 추락한 일본 경제? 한국 앞날이 더 암울하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78205
2편: 코스피 5000과 국민연금 1300조…‘지수 오르면 판다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78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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