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국내외 안팎으로 주주가치 제고 압박이 거세지면서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를 발행했거나 주가가 심각하게 저평가돼있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교환사채 규제 공백이 화두에 오르고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행동주의를 개시하면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의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탈은 22일 LG화학에 주주가치 제고 계획안을 제시했다.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의 주가가 심각하게 디스카운트(저평가)돼 있다"며 "LG화학 주식이 순자산가치(NAV) 대비 74% 할인된 주가에 거래되고 있다. 69조원(483억달러) 규모의 가치 격차가 존재해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저조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시가총액 3위 기업인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 79%의 가치가 모회사 시가총액의 3배에 해당하지만 이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스미스 팰리서 설립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LG화학의 현재 시가총액이 140억 달러(약 20조원)에 이르지만 본래 가치는 530억 달러(약 76조원)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LG화학의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신뢰 부족과 주주와의 이해관계 불일치, 부실한 자본 배분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회 구성을 개선하고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진 보상 제도 개편 △수익률을 지향하는 강력한 자본 배분 체계 시행 △회사가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활용해 자사주 매입 실시 △기한을 두지 않는 장기적인 주가 저평가 관리 프로그램 시행 등 네 가지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팰리서캐피탈은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홍콩 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한국 투자를 담당했던 제임스 스미스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설립한 헤지펀드다. 팰리서캐피탈은 LG화학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장기 주주로 상위 10대 주주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삼성물산, SK스퀘어에도 주주가치 제고 요구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여러 의견을 경청하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 계획을 밝혔던 태광산업은 국정감사에서 뭇매를 맞았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30건이 안 되던 교환사채 발행이 올해 9월 한 달에만 39건으로 급증했다"며 "태광산업 사례처럼 자사주를 담보로 대규모 EB를 발행하는 것은 규제 공백을 노린 행태"라고 비판했다.
교환사채는 사전에 합의된 조건에 따라 발행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상장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보다 교환사채를 발행하면 투자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 발행이 자사주 소각을 피하려는 '꼼수'이자 재매각을 통해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교환사채 발행 결정시 주주이익에 미치는 영향 등 주요 정보를 상세히 기재하도록 공시 작성 기준을 개정하고 2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두고 왜 자사주 대상 교환사채 발행을 선택했는지, 타당성 검토 내용, 실제 주식교환시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 기존 주주 이익에 미치는 영향, 발행 이후 교환사채 재매각 예정 내용(사전협약내용 포함)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교환사채 규제 공백 문제는 일단 공시와 공시 위반 시 제재 등을 강화해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 관련 가처분 소송 판결 이후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정부 정책 및 시장 환경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회사와 주주의 공동 이익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10월 중 이사회를 개최해 교환사채 발행 여부 및 구체적 계획이 확정되는 경우 재공시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유태호 태광산업 대표이사는 지난 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앞으로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사회적 합의부터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특정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하고 그게 아니면 몇 개월 이내 소각을 의무화화는 등 사회적 합의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먼저 준칙을 마련하고 그 다음에 법제화를 하는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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