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이재명 정부가 이달 초 내놓은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은 수도권 공급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종합 대책이다. 공공택지와 정비사업·민간 여건 개선·수요 관리까지 담은 '풀 패키지' 성격이다. 전문가들은 중·장기 효과는 기대되지만, 민간 참여 유인 없이는 '반쪽 대책'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의 평가와 보완사항 제언' 보고서는 이번 대책의 성패가 민간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 부문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장치가 없으면 실질적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9·7대책 핵심은 수도권에 2026년~2030년까지 매년 27만가구, 총 135만가구를 착공하는 것이다. 서울 공급만 6만7000가구로, 최근 3년(2022년~2024년) 평균 착공량보다 11만2000가구 많다. 정부는 LH 직접 시행을 통해 경기 변동에 따른 공급 편차를 줄이고, 비주택 용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해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민간 주도의 공급은 경기 사이클에 따라 증감이 반복되면서 수급 불안과 가격 등락을 키웠다. 택지를 민간에 분양하는 과정에서 가격 상승분이 민간에 귀착되는 구조적 한계도 있었다.
이번 대책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LH 직접 시행을 기본으로 하되, 민간 참여를 유도하는 '도급형 민간참여사업'을 병행한다. 도급형 민간참여사업은 LH가 조성한 택지를 직접 관리하고, 민간 주택건설사는 자금 조달·설계·시공을 맡는 민관 분업형 구조다. 공공택지 조성 일정을 앞당기고, 비주택 용지를 주택용지로 전환해 공급 물량을 확대한다는 전략도 포함됐다.
◆ 자산가치 보전 없인 "실수요자 흡수 어려워"
보고서는 공공택지 중심의 안정적 공급 기조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단기 효과는 민간 참여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급 일관성은 확보되지만, 수요가 약한 국면에서는 미분양 위험이 따른다는 이유에서다. 건산연은 민간 자금조달 조건 개선, 리스크 분담 구조 명확화, 신규 공공택지 입지 최적화, 미착공 물량 해소 지원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김성환 건산연 연구위원은 "정부 대책은 공공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 공급 안정성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단기 성과를 내려면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인센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공공주도 방식은 빠른 인허가, 부지확보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으나, 민간 건설사 참여 없이는 브랜드, 설계·품질, 분양 마케팅 등에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수요자 입장에서는 자산가치 보전·생활 편의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실수요 흡수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대책은 도시 외연 확장·틈새 부지 공급 확대에는 유효하다. 그러나 핵심 수요의 정책적 해소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실질적인 시장 안정 효과를 위해서는 강남권·도심권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민간 유인 인센티브 제도화 등 정비사업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와 민간 주택공급 여건 개선 역시 단기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양지영 전문위원은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 재건축 물량은 장기전세주택, 토지임대부 등 공공물량으로 일반 분양 물량 비중이 적고, 시장 수요를 흡수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또한 기존 거주자, 특히 영구임대 거주자의 임시 주거지, 주거비 등의 문제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공성을 강화한 민간시행 병행,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제도 개선, 노후계획도시 마스터플랜 수립, 통합정비 유도, 이주자금 지원 확대·임대주택 추첨 방식 개선, 공원녹지 확보 완화, 소송 지연·판결 불일치 해소 등을 제언했다.
◆ 도심 공급 '속도전' 제약…정비사업 규제 개선 필요
민간 공급 여건 개선은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이고, 재정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만큼, 개발이익 환수 통합과 학교용지 부담 완화, 용도지역 유연화, 모듈러·신공법 활성화, 청년·도심형 특화 공공지원 민간임대 확대 등 보완책이 제시됐다.
수요 관리·거래질서 확립은 공급 확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수급 균형 장치로 설계됐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나, 단기 유동성 차단 수단에 집중된 만큼 장기적 운영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내놨다.
김성환 연구위원은 "규제지역 LTV 강화, 임대사업자 대출 제한, 전세대출 보증 일원화, 토지거래허가구역 권한 확대 등을 즉시 시행했으나, 비규제지역 풍선효과와 임차시장 불안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LTV·DSR·보증의 역할 분담 원칙 확립, 규제지역 제도 일원화, AI 기반 이상거래 예방·조사 자동화 확대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번 대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비수도권 주택시장과 전·월세 시장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주택시장은 여전히 수요 부진과 공급 축소로 침체가 깊고, 전·월세 시장은 대출 규제 강화로 민간 임대 재고 확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특히 지방은 산업·일자리·교통망과 연계한 근본 처방이 필요하고, 전·월세 시장은 세입자 보호 장치를 보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지난 8·14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요의 공간 재배치·산업·일자리 연계·광역교통·정주여건 균형화 등 양극화 해소의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전세대출 한도 일원화·주택매매·임대사업자 대출 제한 등 민간 임대주택 재고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이 추가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