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모델 출신 배우'로 정형화된 연기만 보여주던 배우인 줄 알았는데 어느 기점부터 악역과 건조한 얼굴, 거친 액션 등 다양한 모습을 꺼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당최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예상이 안 되는 배우로 거듭났다. '지 않는 문백이'처럼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는 배우 김영광이다.
김영광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감독 권오승)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이도와 공조하는 미스터리 조력자 문백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25일 10부작 전편 공개된 '트리거'는 총기 청정국 대한민국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불법 총기가 배달되고 총기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각자의 이유로 총을 든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총기 재난 액션 스릴러다.
'총기 청정국 대한민국에 택배를 통해 총기가 풀린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작품은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총을 무료로 나눠준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이야기로 풀어냈다.
작품 공개 후 만난 김영광은 다소 후련한 듯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사전 홍보를 많이 돌았지만 당시에는 이중적인 빌런인 문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심 아쉬웠는데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중적인 빌런'이라는 설정은 김영광이 '트리거'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실제로 김영광은 앞선 제작발표회 당시 "문백이라는 캐릭터를 보자마자 출연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작품을 보자마자 그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바로 납득이 됐다.
김영광은 "문백이란 캐릭터는 만화적인 인물 같았다. 각각 캐릭터마다 전사가 있지 않나. 문백이는 정당화나 합리화를 하면 안 되지만 강력한 배경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연기를 해도 이해가 될 것 같은 부분이 있었다. 문백의 밝고 명량하고 화려한 모습이 어쩌면 이 캐릭터를 더 표현하고 이해하게끔 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중적인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의 전반과 후반을 나눠 캐릭터를 구축했다. 김영광은 "처음에는 미스터리한 조력자라고 하지만 너무 의심되지 않나. 때문에 문백이 너무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시청자들이 봤을 때 진지해 보이면 진입장벽이 될까 봐 오히려 좀 통통 튀고 초딩같은 캐릭터를 잡았다"며 "반면 뒤로 갈수록 과거가 있고, 결국 문백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한정적인 느낌과 점점 죽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는 그런 문백을 반대되게끔 자신을 가릴 수 있는 화려한 모습과 의상을 설정한 게 있다"고 전했다.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럽게만 접근하진 않았단다. 김영광은 "문백이가 겪은 일 때문에 복수나 정당화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았다"며 "에피소드마다 나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무거운 마음이 들지 않나. 그렇다면 '트리거'라는 드라마 안에서 문백이가 나왔을 때만큼은 환기가 되고 때로는 웃음도 주는 면이 있길 바랐다. 이 사람이 등장함으로써 임팩트가 많이 있길 바랐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리거' 초반은 문백의 등장과 함께 긴장이 다소 완화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내뱉는 '문백이는 참지 않지'라는 대사는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정작 김영광은 이 대사가 터질지 전혀 예상을 못 했다. 오히려 하는 내내 '이걸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문백이는 참지 않지'는 감독님이 아주 강력하게 주장해서 하게 된 대사예요. 일단 자신을 3인칭해서 표현하는 걸 바라셨어요.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한 대사는 아니었어요. 제 성격이랑은 안 맞아서.(웃음) 다만 감독님의 의도가 있겠거니 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해 줄 몰랐습니다."
문백에 관해 이야기하며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으니 바로 액션이다. 특히 봉고차에서 펼치는 액션과 비비탄 액션은 서로 다른 결의 문백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먼저 봉고차 액션에 대해 김영광은 "이도의 액션과는 다르게 보였으면 했다. 때문에 이도의 조력자로서 막아주는 느낌을 많이 살렸다"고 짚었다.
반면 비비탄 액션은 명백한 의도가 담겼다. 김영광은 "고등학교 에피소드였는데 학생 두 명에게 트리거를 심어줄 만한 액션을 보여줘야 했다. 문백으로서 멋있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너희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스타일링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먼저 죽어가는 문백을 표현하기 위해 뒤로 갈수록 점점 몸에 기력이 없어지는 것을 표현해야 했다. 때문에 메이크업을 오히려 진하게 했고 눈도 퀭하게 그려 총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담았다.
문백의 흰머리 브릿지가 들어간 듯한 스타일은 자신의 새치를 부각시킨 거라고. 김영광은 "내가 원래 새치가 많아 맨날 염색을 한다. 이번에는 문백을 표현하는 부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쇠약해질 때도 도움이 돼 중간에 더 칠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호불호가 나뉜 엔딩이지만 김영광 개인적으로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치고받는 액션으로 마무리를 짓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결국 '총을 풀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것이지 않나. 이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반대로 문백은 모두가 총을 든 세상은 그야말로 평등할 것이라 믿는다. 두 사람의 이념이 대립하면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앞서 디즈니+ '사랑이라 말해요' 속 한동진도 그렇고 이번 문백이의 후반부도 그렇게 '메마르고 건조한 얼굴'이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리는 배우다. 이에 김영광은 "데뷔 후 한동안은 밝은 로맨스를 주로 많이 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내 성격이나 정서는 '사랑이라 말해요'처럼 다소 다운되고 슬픈 거랑 잘 맞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사랑이라 말해요' 때 메마른 건 '썸바디'로 극한의 다이어트를 한 뒤 거의 곧바로 촬영에 임한 거라 매가리가 없는 모습이 절로 나온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영광은 '트리거'에 이어 '열일'을 이어간다. 오는 9월 KBS2 드라마 이영애와 호흡하는 '은수 좋은 날' 첫 방송을 앞두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영화 '퍼스트 라이드'로 관객들을 만난다. 또 인터뷰 당일 넷플릭스 시리즈 '나를 충전해줘' 캐스팅 확정 소식도 공개됐다. '나를 충전해줘'는 인공 심장 배터리가 방전된 남자와 전기 능력을 가진 여자의 찌릿 짜릿한 충전 빙자 로맨틱 코미디다.
스릴러부터 코미디, 로코까지 공개될 차기작이 모두 다 다른 장르라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다만 김영광은 의도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는 "그저 재밌는 것 같으면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일례로 최근에 장르물을 많이 하다 코미디 영화 '퍼스트 라이드'를 찍고 나니 마음이 좋아지더라. 장르물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나를 충전해줘'의 경우도 오랜만에 로코기도 하고 로맨스가 하다 보면 재밌어서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생각하며 연기 생활을 하고 있진 않아요. 그때그때 매 작품 최대한 잘 보이는 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더 좋은 연기와 많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습니다. 끝으로 문백이는 나름 신경을 많이 써서 어렵지 않게 보이게끔 준비한 캐릭터인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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