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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죄가 없다
여느 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 뒤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는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통증의학과로 향했다. 바닥이 고르
2025.10.19. -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
잎새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 흔히 ‘초민감자’라 명명하는 이들은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주변 자극이나 타인의 감정에
2025.10.12. -
카니발의 시간은 지나가고
러시아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에서 문학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사육제라고도 번역되는 카니발은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축제였다. 부활 대축일 이전 금욕적인 삶을 앞에 두고 40일 동안 질펀하게 놀
2025.09.28. -
메아리
온종일 통기타만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학업보다 동아리 방의 먼지가 더 친숙했고,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공허뿐이라 떠벌이며, 대단한 음악가가 된 양 노래를 불렀었다. 나름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었다. 유행하는 노
2025.09.21. -
좋아한다는 말
꽃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목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늘 시무룩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지만 특별히 신날
2025.09.14. -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의 가치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이 ‘구좌 당근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오래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제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도서관 옆에 집을 구해 오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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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에서 커피심으로
오늘도 아침밥 대신 커피로 하루를 연다. 비단 나만 그럴까. 요즈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커피심으로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언제 커피나 한잔합
2025.08.31. -
배꼽
샤워 후에 욕실 거울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나는 ‘관찰자’가 된다. 혓바닥을 내밀어보고 안면을 최대한 찌푸려 하회탈 얼굴을 만든다. 어깨 쩍쩍 벌리다가 불현듯 정색하고 젖은 머리칼을 배우처럼 젖혀 보기도 한다. 그러
2025.08.24. -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
어제는 다른 일들을 모두 접어두고 집에서 종일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긴장했던 마음도 풀고, 스케줄러에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을 빼곡하게 적는 아침 루틴도 생략하고, 스마트폰도
2025.08.17. -
말의 시대, 글의 힘
말이 난무하는 시대, 유창한 말로 주위를 압도하는 능변가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망설임과 머뭇거림의 눌변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글이 좋다. 발화는 순발력을 요구하기에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전
2025.08.10. -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존 덴버의 경쾌한 통기타 연주가 반갑다. 이곳이 어디인가. 동천강을 가로지르는 일명 ‘썩은다리’라 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없는 게 없다는 ‘문현동 골동품거리’이다. 오가는 젊은이들은 드물지만, 옛 주택과 작은
2025.08.03. -
모래 한 알
뭔가 답답한 일이 있거나 혹은 탁 트인 공간을 느끼고 싶을 땐 바닷가에 간다. 부산은 백사장을 거닐 수 있는 해변 외에도 넓은 시야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언제든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부산이 그
2025.07.27. -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까?
요즘 나는 채소를 구독하고 있다. ‘채소 구독’이라니 어쩐지 비문 같지만, 업체에서 실제로 그 단어를 쓰고 있기도 하고 일단 요즘은 뭐든 다 구독하는 시대 아닌가. 언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이
2025.07.20. -
인간에게 성격이 곧 운명일까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성격이 팔자’라는 우리 속언과 호응하며 지금까지 꽤 설득력을 얻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서는 존재에 관한 추측만 무성할 뿐 전해지지 않았고, 그의
2025.07.13. -
붓끝에서 흐르는 기억
항구도시 부산에서 빠트릴 수 없는 명소가 영도이다. 목도(牧島)라는 옛 이름이 지칭하듯 예전에는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였고, 근대유산인 영도다리가 위풍늠름하게 남아 있으며, 요즈음 젊은이들의 여행지로 떠오른 흰여울문화
2025.07.06. -
뒷모습
일하다가 문득 고개 들었을 때,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다른 동료의 등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땐 동료의 등이 유난히 든든해 보인다. 근거 없는 신뢰가 뭉클 피어오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누군가 묵묵히 자기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