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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고 망가졌어도
중학생 때부터 안경을 썼다. 지금은 안경 없이는 눈앞 10㎝ 바깥은 뿌옇게 보인다. 자고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안경을 찾는 것이다. 가끔 안경을 어디에 벗어뒀는지 몰라 바닥에 코를 대고 한참을 찾아다닐 때도
2025.10.20. -
남은 언어
유튜브 알고리즘에 ‘간다가와’가 떴다. 일본 포크 듀오 가구야히메의 곡이었다. 기타의 잔잔한 선율이 방 안을 채웠다. “당신은 이제 잊었을까요.” 노래는 그렇게 시작했다. 붉은 수건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비누가 달각
2025.10.17. -
희망을 쓰기까지
세상이 또다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모양이다. 편리하지만 편안하지는 않게. 2026년 트렌드 키워드가 ‘불안’이라는 뉴스를 봤다. 우리 사회의 보편정서가 불안감과 피로감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한 기분이다.
2025.10.15. -
코끼리 작게 만들기
긴 연휴가 즐겁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의 부담이 되는 일이 있어 평온하지 못했다. 마음이 분주했다. 분주한 마음은 곧잘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바뀌곤 한다. 그러면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져 거대한 코끼리가 되기도
2025.10.13. -
미와 응시
도쿄의 야마타네 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지하 전시실에서는 우에무라 쇼엔 탄생 15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발소리가 맑게 울릴 만큼 고요한 전시실에
2025.10.10. -
애도의 시차
카페 핀드에서 304 낭독회가 열렸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이 함께 지켜온 자리다. 오늘로 131번째다. 저마다 추모의 방식은 다르지만, 이 자리가 이어진 것은 묵묵히 낭독회
2025.10.03.
많이 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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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고 망가졌어도
중학생 때부터 안경을 썼다. 지금은 안경 없이는 눈앞 10㎝ 바깥은 뿌옇게 보인다. 자고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안경을 찾는 것이다. 가끔 안경을 어디에 벗어뒀는지 몰라 바닥에 코를 대고 한참을 찾아다닐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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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언어
유튜브 알고리즘에 ‘간다가와’가 떴다. 일본 포크 듀오 가구야히메의 곡이었다. 기타의 잔잔한 선율이 방 안을 채웠다. “당신은 이제 잊었을까요.” 노래는 그렇게 시작했다. 붉은 수건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비누가 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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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아래에서
따개비처럼 옹기종기 붙어 있던 단층집들이 허물어졌다. 한 시대를 통째로 갈아엎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집 건너편, 유명 건설사가 짓기 시작한 아파트는 눈대중으로 세어봐도 30층은 족히 돼 보인다. 누군가의 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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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쓰기까지
세상이 또다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모양이다. 편리하지만 편안하지는 않게. 2026년 트렌드 키워드가 ‘불안’이라는 뉴스를 봤다. 우리 사회의 보편정서가 불안감과 피로감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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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작게 만들기
긴 연휴가 즐겁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의 부담이 되는 일이 있어 평온하지 못했다. 마음이 분주했다. 분주한 마음은 곧잘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바뀌곤 한다. 그러면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져 거대한 코끼리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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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밤
자격증 필기시험을 치렀다. 인생을 좌우할 절박한 시험은 아니었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도 답안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짜릿한 해방감을 맛봤다. 시험 끝난 날의 홀가분함은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가 보
2025.10.01. -
가을 구례
전남 구례에는 ‘책방 로파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다. 이곳에선 종종 시인과 뮤지션이 함께 마련한 낭독 공연을 한다. 시와 음악이 한자리에서 공명하며 관객을 만나는 시간이다. 초대를 받아 9월 낭독 공연을 뮤지션 이주
2025.09.29. -
손톱자국에 누운 마음
책장에서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가급적 한 번 종이에 적고 다시 옮겨 쓰는 습관이 있다. 그날의 마음이 그대로 눌러 담긴 메모였다. 2022년 봄 강원도 횡성의 공근중학교로 특강을 간 적이 있다
2025.09.26. -
계절의 이웃들
아침이면 홀린 듯 숲을 향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흘렀지만 지겹기는커녕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숲은 날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고 계절 따라 새 이웃을 소개했다. 월든 호숫가의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흠모했으나 문명과
2025.09.24. -
마음이 보내는 신호
내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다. 어색하거나 난처한 상황일 때 크게 웃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게 됐는데, 어릴 때 별명 중 하나가 ‘포커페이스’였다. 즐거운 일에도 별로 웃지 않았고 슬픈 일에도 표정 변화가
2025.09.22. -
안녕, 나의 반려 사물
나는 일을 할 때 깔끔하게 정돈하는 편이 아니다. 책상 위는 늘 작업 도구들로 어질러져 있다. 책은 지그재그로 쌓이고, 방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혼돈이야말로 나의 리듬이다. 어질러 놓고,
2025.09.19. -
목적지 없는 항해
“사는 게 다 그렇지.” 세상 이치를 다 꿰뚫은 듯 심드렁하게 말을 뱉다가도, 삶이 망망대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부지런히 노를 저어 왔건만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물살이 맞는 방향인지 알 수 없
2025.09.17. -
고백의 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어딘가 어긋나 있는 마음, 불쑥 튀어 올랐다가 깊게 가라앉는 생각, 너무 미묘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온통 사로잡히게 되는 느낌 같은 것. 살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감정이나 생각
2025.09.15. -
어른의 맛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즐기던 노가리 같은 마른안주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퍽퍽하고 밋밋한 그것이 무슨 맛이 있단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힘들게 마감을 끝내고 차가운 생맥주와 함께 먹태를 처음 맛본 순간, 나는 비
2025.09.12. -
칭찬 일기
세상을 크게 이롭게 한 적은 없지만, 내 행동이 올곧은 일에 손톱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늘 있었다. 그렇다고 선의로 한 행동을 두고 스스로 뿌듯해하거나 잘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