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로 불렸던 여자[이은화의 미술시간]〈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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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본 미술평론가 알베르 울프는 이렇게 썼다. “대여섯 명의 미치광이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은 여자.” 그 ‘미치광이 여자’가 바로 베르트 모리조였다.

모리조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개인 교습을 받아 언니 에드마와 함께 화가가 됐다. 살롱전에도 여섯 번이나 통과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에두아르 마네를 만나면서 인상주의자로 방향을 틀었다. 여덟 번의 인상주의 전시 중 일곱 번을 참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화가의 엄마와 언니’(사진)는 제1회 전시 출품작이지만 원래는 1870년 살롱전을 위해 그려졌다. 모델은 화가의 엄마와 에드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책을 읽고 있고, 밝은색 가운의 언니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당시 에드마는 임신 중이었다. 결혼 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실감이 표정에 담겼다. 엄마는 어둡고 단순하게, 언니는 꽃과 거울 소파가 있는 밝고 장식적인 배경 속에 그려졌다. 인상주의자들이 기피하던 검은색이 유독 많은 것도 눈에 띈다.

그 이유는 마네 때문이다. 살롱 출품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던 모리조는 마네에게 조언을 구했다. 흔쾌히 모리조를 찾아온 마네는 조언 대신 붓을 들었다. 엄마의 드레스를 시작으로 머리까지 검게 덧칠했다. 심지어 배경까지 손대려 하자 모리조가 간신히 말렸다. 모리조는 몹시 화가 났지만 제출 마감일이 닥쳐 그대로 출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여인을 보여준다. 빛과 어둠, 자유와 속박, 전통과 혁신의 경계가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모리조 역시 그 경계 위에서 스스로의 길을 택했다. 미치광이라 불렸지만, 그 ‘미친 선택’이 결국 새로운 예술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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