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이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말의 경쟁에 갇혀 있다. 핵확장억제를 말하고 남북대화를 말하지만, 국민이 체감한 실질적 핵억제력의 증강은 무엇인가. 독일 통일의 경험은 분명하다. 아데나워·브란트·슈미트·콜 모두 동맹과 억제력 위에서만 교류의 속도를 냈다. 안보 없는 교류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을 축으로 핵억제력을 실질적으로 키우지 않으면 교류는 구호로 끝난다.
최근 북한은 노동당 80주년 행사와 방산전시회에서 화성-20형 고체연료 ICBM과 화성-11Ma(극초음속)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선보이며 핵 다탄두화·고속화 의도를 노골화했다. 이는 우리의 핵미사일 방어를 압도하려는 질적 핵고도화의 신호이며, 우리의 시간표가 북한의 속도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배울 점을 본다. 그는 평판과 관행보다 국익을 결과로 증명했다. 그의 '거래의 기술'의 핵심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실행의 문법이다. 크게 생각하되(비전), 최악을 먼저 막고(리스크), 선택지를 넓혀(옵션), 지렛대를 만들며(레버리지), 메시지 주도권을 쥐고(내러티브), 끝내 성과로 증명하라. 이를 한국의 핵안보에 적용하면 결론은 단순하다. "동맹은 지키되, 자체 핵억제력 확보하라!"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무리한 선언이 아니라 대통령의 실행 리더십이다. 다음의 3단계를 대통령이 직접 주도해야 한다.
우선 1단계는 방향과 원칙의 정립이다.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 책임 있는 자체 핵억제력 대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뒷받침할 평가 틀―예컨대 억제 신뢰도와 안전, 국제 수용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아울러 정기 점검과 국회 보고를 제도화해 진행 상황을 국민 앞에 설명하고, 관련 용어와 지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준화해 상시 소통 창구를 연다.
2단계는 리스크 관리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자체 핵억제력을 추진 시 예상되는 제재 강화나 자금·부품 차질을 가정한 버팀력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드러난 취약점은 각 부처별 보완기한을 정해 손본다. 원전 안전과 연료 분야는 '점검-보강-검증 / 비축-다변화(공급망)-공개'의 순서를 따르며 세계 기준으로 단계 업그레이드하도록 승인한다. 버팀력과 신뢰를 먼저 축적해야 핵억제력 옵션이 지켜진다. 동시에 만일의 사태에 바로 작동할 비상 대응 매뉴얼을 재가하고, 성급한 일괄 입법보다는 단계별 로드맵을 채택해 현실적으로 움직인다.
3단계는 실행체계의 구축이다. NSC 산하에 '자체 핵억제력 추진 TF'를 설치해 대통령이 매달 직접 점검하고, 한·미 정상 간 의제로 '확장 핵억제 공동 기획·평가 셀' 설치를 올려 정식 합의를 이끌어낸다. 핵억제력의 실질을 가늠할 다섯 가지 핵심지표(탐지·요격·생존·지휘·복구)를 지정해 분기별 브리핑을 의무화하되, 대외 공개는 요약본으로 투명성을 높인다. 연 2회의 모의훈련(AAR 포함)을 지시해 결과를 다음 분기 계획에 반영하고, R&D·예산·법·제도는 대통령이 우선순위를 정렬하되 집행은 부처가 맡아 속도·연결·책임의 선순환을 만든다.
강하게만 밀어붙이면 동맹 신뢰를 소모한다. 그래서 절차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중요한 조치는 사전 협의, 실행은 사후 공개로 신뢰를 쌓자. 여야·지방·산업계·학계가 참여하는 '상설 핵안보 기구'를 통해 정책의 수명을 대통령의 '임기'가 아니라 '세대'로 늘리면, 논쟁은 줄고 정책은 선다.
끝으로, 말이 아니라 거래·실적·국익이다. 안보 없는 교류는 공허하다. 미국의 체면을 접고 관세전쟁과 동맹 분담, 타국 국방비 증액까지 요구했던 트럼프식 드라이브―좋든 싫든, 그것은 국익을 말이 아닌 실행으로 바꾼 대통령의 방식이었다. 이제 동맹은 굳게, 자체 핵억제력의 원칙·기준은 분명하게―큰 선언보다 작은 성과로 답할 때이다. 정한용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