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미얀마 역사 다룬 소설 '유리 궁전' 등
"박경리 작가의 단편 소설 몇 편을 읽었는데 굉장히 흥미롭더군요. 분단과 실향을 다룬 주제가 내 경험과도 많은 부분 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4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인도 대표 작가 아미타브 고시(69)의 말이다. 고시는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독립과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 인도와 미얀마의 역사를 조명하는 대하 역사소설 '유리 궁전'(2000)으로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가다. 두 번째 한국을 찾은 고시는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국은 부유한 선진국이지만 박경리 소설을 보면 빈곤했던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다"며 "가난한 국가 출신인 제 문학, 삶과도 연결된다"고 했다.
식민지의 후손인 고시는 거대한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인물 군상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왔다. 그의 가족사와도 무관치 않다. 그는 "가족이 방글라데시를 떠나 인도로 이주하면서 고향과의 연결고리를 잃었고,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현 미얀마)에서 총을 들고 싸웠다"고 했다.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할됐을 때뿐 아니라 1942년 일본이 버마를 점령했을 당시 그의 가족은 이산의 고통을 겪었다. 고시는 "'유리 궁전'은 버마를 넘어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아우르는 인도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작품"이라며 "미얀마 만달레이를 방문했을 때 '우리도 몰랐던 우리 역사를 써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는데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현재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글을 쓰는 고시에게 탈식민주의와 정체성 탐구라는 주제는 영원한 화두다. 그는 방글라데시 토착어인 벵골어를 쓰면서 영어로 글을 쓴다. 그는 "1980년대 말 첫 책이 나왔을 때 서구권 반응은 '남반구 작가들은 삶이 힘들어 정치에 관심이 많구나'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에서 집착할 정도로 많은 정치 관련 작품이 쏟아졌다"고 했다. 이어 "이것이 문학의 진화"라며 "모든 글쓰기는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기에 문학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고시는 소설가면서 인류학자이고, 생태사상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그를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근본 과제는 다양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전달하는 에이전시(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후위기에 직면해 더 중요해졌다"면서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 역시 그러했고 저도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문화나 문학에서도 큰 성취를 이루고 세계적 지도자로 도약한 한국에서 상을 받아 이번 수상이 더 자랑스럽다"며 "제 작품이 한국어로 많이 번역돼 더 많은 독자에게 읽혀졌으면 한다"고 했다.
토지문화재단이 주관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1926~2008) 작가를 기리고자 2011년 국내 최초로 제정된 국제 문학상이다. 시상식은 23일 강원 원주시 호텔인터불고 원주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