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일정 짧고 시진핑에 집중
김정은도 여유… 李정부는 중재역 한계
비핵화는 ‘이벤트 외교’ 걸림돌 아닐 듯
미국 싱크탱크에서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북미 정상의 만남이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미 당국 판단과 부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둘 다 적극적으로 나설 법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급한 불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한국석좌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예측불가 인물이라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여 석좌는 “트럼프가 한국에 이틀밖에 머물지 않는 데다 그의 관심이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의 회담에만 집중돼 있다는 게 내가 회의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팀이 김정은과의 회동까지 챙길 만한 여력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것은 실무와 의전의 문제”라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개막(31일) 직전인 29일 한국에 도착해 1박 2일간 머물 예정이다. 전제 조건 없이 김 위원장과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을 백악관이 최근 밝힌 만큼 그가 한국을 찾은 김에 김 위원장과 재회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미국 측 준비 정황도 포착됐다. 18일 미국 CNN방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순방 기간 트럼프·김정은 회동 추진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유엔군사령부가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특별 견학을 중단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 단계까지는 진전되지 못했다고 한다. CNN은 “미국 정부 관계자 다수가 회동 성사 가능성에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강경화 주미대사도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APEC 계기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의에 “아직 징후가 없는 상태”라고 답했다.
중러 구애 경쟁 즐기는 김정은
당장 만나겠다는 의지가 약한 것은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게 여 석좌 설명이다. 그는 “김정은 측에서도 현시점 회동을 원할지 불분명하다”며 “그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을 만났고 시진핑도 만났다”고 말했다. 다만 “기회가 되면 트럼프를 만나 보라고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권했다는 얘기는 중국 소식통에게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도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당장 아쉬울 게 없는 김 위원장이 대화에 나올 동기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재명 정부도 중재에 한계가 있다. 여 석좌는 북한이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사실을 상기시킨 뒤 “이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유의미한 존재로 인식되려면 트럼프 대통령을 거치거나 (오히려)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와 김정은을 연결해 준 2018년과는 반대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북한 비핵화’ 원칙이 트럼프 대통령이 즐기는 ‘이벤트 외교’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일부 전문가는 보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시드니 사일러 선임고문은 이날 연구소의 팟캐스트 좌담에서 “일회성 만남을 위해서라면 목표로서 비핵화에 대한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