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노역·학살에 ‘인육’ 만행까지…‘밀리환초 참극’ 80년 만에 재조명
피해자 대다수가 전남도 출신
“개인 증언 넘어 국가조사 필요”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5년 2월 남태평양 마셜제도 밀리환초에 주둔한 일본군은 미군의 포위로 물자 공급이 끊기자 굶주림에 내몰렸다. 일본군은 식량이 바닥나자 강제동원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죽여 인육을 먹었다. 남은 고기는 ‘고래고기’라 속여 조선인에게도 먹였다. 진실을 알게 된 조선인들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저항을 준비했다.
밀리환초 남쪽 끝 작은 섬 체르본에 있던 조선인들은 숲에 몸을 숨기고 일본군을 유인해 처단하기 시작했다. 섬을 포위한 일본군 토벌대는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섬에 있던 조선인 120여명 중 살아남은 이는 15명에 불과했다.
‘밀리환초 비극’이 80년 만에 재조명됐다. 전남도는 22일 도청 김대중강당에서 강제동원 연구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밀리환초 강제동원 학술대회’를 열었다. 생존자 증언과 시민단체 조사 위주로 전해지던 밀리환초 사건이 지자체 주도로 학문적 검증 및 제도적 논의의 장에 들어선 것이다.
전남도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조선인은 1942년부터 일본군에 의해 남태평양 일대로 강제동원됐다. 이 중 약 800명이 밀리환초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 일본 제2보건국(옛 일제 해군성) 직원이 작성한 ‘구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에 기록된 조선인 648명 가운데 635명이 전남 출신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고향이나 출신 지역별로 ‘반’을 편성해 집단생활을 하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희생자 가운데 전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사표에는 피해자의 이름, 출신지, 근무지, 생사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었다. 체르본섬 집단 저항 과정에서 학살된 55명을 포함해 218명이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술대회는 밀리환초 사건을 단순한 참극이 아니라, 전남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강제동원의 비극적 단면으로 조명했다. 특히 사건의 역사적 실체와 지역 피해, 향후 조사 방향 등이 논의됐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밀리환초 참극은 일제가 식민지 말기 조선인을 대규모로 전시노동에 동원한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며 “국가 동원체계 속에서 조직적인 노동착취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심재욱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은 “밀리환초 강제동원 실태는 개인의 증언을 넘어, 공식 문헌 자료로 확인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이제는 피해 규모와 희생 경위를 학술적으로 검증해 국가적 진상조사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광무 일본군 ‘위안부’ 연구소 소장은 “전남 출신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식민지 말기 일본의 전시 인력정책이 지방 단위로 조직화한 결과”라며 “전남도가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지방정부 차원의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기록사업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남도는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밀리환초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유해 봉환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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