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입틀막 소송’ 남발 우려…언론 보호 조항, 현실성 ‘희박’

허진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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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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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마무리” 민주당 발의 ‘허위조작정보 방지법’ 뜯어보니
정청래 팔 붙잡는 김병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대표의 팔을 잡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언론이 중간판결 신청해 ‘봉쇄소송’ 인정되면 각하 ‘특칙’ 뒀지만
봉쇄소송 인정 사례 드물고 배상 성립 요건인 악의 추정도 추상적
‘최초 발화자’도 배상 조항은 취재원 위축…시민단체 “표현통제법”

여당의 언론개혁 법안인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발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식으로 ‘묻지마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연내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와 여러 시민단체는 이 법안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언론단체들이 법안에서 가장 비판하는 지점은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기업 등의 권력자도 일반인처럼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인정하는 배액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권력자가 비판 보도 차단 목적으로 언론에 시간·비용 부담을 주려고 소송을 제기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의 압박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봉쇄소송 방지 특칙’으로 피청구인(언론 등)이 법원에 봉쇄소송임을 확인해달라는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고, 법원이 인정하면 소송 자체를 각하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봉쇄소송 방지 특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부당제소로 인한 불법행위’(봉쇄소송)의 성립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권력자 등) 제소자가 주장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사실적·법률적 근거가 없고, 제소자가 알면서, 혹은 통상인이라면 알 수 있음에도 소를 제기하는 등 재판제도의 취지나 목적에 비춰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봉쇄소송을 인정한다.

권력자가 최종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봉쇄소송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드문데 사건 실체를 판단하기도 전에 봉쇄소송임을 인정해 각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봉쇄소송이 인정되면 청구인이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봉쇄소송 사실을 공표하라는 법원 명령을 받을 수 있다는 특칙도 권력자의 봉쇄소송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다.

배액배상의 성립 요건인 ‘타인을 해할 의도’(악의)를 ‘추정’하는 8개 요건도 논란 대상이다. 언론이 자의적인 추정에 맞서 악의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사실상의 ‘입증책임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사실의 근거로 인용한 자료를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도 제출하지 않는 경우” 악의로 추정하는 조항은 언론이 보호해야 할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압박이 될 수 있다. 특히 언론뿐 아니라 ‘최초 발화자’도 배액배상 대상이기 때문에 취재원과 내부고발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악의 추정 요건 중에서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입장이나 의견을 확인하지 않은 경우”는 실무 고려가 없는 추상적 조항이란 지적이 많다. 권력자가 언론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거나, 언론이 입장을 확인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이 피해자라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20일 민주당의 법안 발표 직후 “조급하게 당론으로 확정하지 말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여론을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오픈넷 등 시민단체들도 21일 공동성명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한국형 표현통제법”이라며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런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고 당론으로 추진해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이미 언론단체들과의 소통을 통해 권력자 봉쇄소송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쟁점을 해소한 사안인데 쟁점 하나 때문에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입법 이후에 실제 염려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보완해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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