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벤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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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후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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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고인 이름 새겨진 캐나다 공원 의자
익명의 공간이 ‘누군가의 발자취’로
추모와 공감이 만나는 도시의 언어
기억 공유할 때 공동체는 단단해져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 스프링뱅크 공원을 걷던 중 한 벤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녹음 사이의 평범한 나무 벤치. 등받이에 붙은 작은 금속 플라크가 햇빛에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 글자를 읽었다. 16살에 세상을 떠난 한국인 소녀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우리 곁에, 사랑하는 아빠, 엄마, 그리고 강아지 첼시”가 쓰여 있었다.

캐나다에서 세상을 떠난 한국인 소녀의 이름을 보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이름 석 자를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새기며 상상을 해보았다. 첼시와 이 공원을 산책했을 소녀, 웃음소리, 남겨진 이들의 그리움이 벤치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듯했다. 앉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워지는 이 생경한 감정. 그녀를 모르지만, 그 벤치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 같았다. 도시의 익명적 ‘공간’이 한 개인의 이야기와 나의 감정이 만나면서 의미 있는 ‘장소’로 새롭게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북미나 유럽 도시에서 이런 ‘기념 벤치 프로그램’은 사적인 추모를 공적 기억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오래된 문화적 장치다. 가족은 벤치를 기증하며 고인을 기리고, 도시의 공공 공간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한 벤치에는 화려한 꽃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손주들이 놓고 간 것이었다. 플라크에 쓰인 부부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가족의 역사를 느껴본다. 그 기억이 벤치에 앉는 모든 이들에게 전달된다. 무심코 지나쳤을 벤치이지만, 하나하나 글귀를 읽으며 그들을 위해 작은 기도를 해본다.

이러한 벤치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아카이브’이다.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의 QR 코드가 붙은 벤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기억을 확장한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아내를 만나 60년을 함께 산책했다는 이야기. 사진 속 노부부의 웃음은 벤치에 앉은 낯선 이에게 시간을 초월한 사랑의 가치를 전한다.

우리나라의 공원에서는 이런 풍경이 낯설다. 벤치에 새겨진 것은 대개 기업 로고나 지자체 이름이다. “00기업 기증.” 공공 공간의 사물들은 기능적 역할에 충실할 뿐, 서사를 찾기는 어렵다. 우리의 공공 공간은 기능에만 충실한 탓에, 정서도 공감도 놓쳐버렸다. 개인의 슬픔과 추모는 철저히 사적인 영역인 장례식장이나 추모 공원에 격리된다.

상상해보자. 서울 남산 산책로 벤치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면. “사랑하는 아빠, 여기서 함께 본 야경을 잊지 않을게요.”

그 벤치에 앉는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길 것이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서울의 불빛을 보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가 말한 ‘집단 기억’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유될 때 형성된다. 벤치는 낯선 이의 감정을 나의 기억과 연결한다. 사적인 기억이 공적 공간에 새겨질 때,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확장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제대로 살 수 있다”라고 말한다. 모리 교수처럼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식할 때, 우리는 현재를 더 충실히 살고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기념 벤치는 이 철학을 도시의 일상 속에 구현하는 작은 실천이다. 산책하다 멈춰 서서 누군가의 이름을 읽는 행위는, 삶의 유한함을 상기시키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는 개인의 성찰을 넘어 공동체의 치유와도 연결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애도의 과정을 ‘공유된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 트라우마 극복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적인 슬픔을 공공의 공간에서 조용히 드러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상실감을 보듬고 심리적 회복 탄력성을 높여준다. 개인의 고통으로만 남겨질 수 있는 슬픔이 공동체의 기억으로 편입될 때, 사회는 상실의 충격을 함께 흡수하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기억의 민주화’이기도 하다. 위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삶과 죽음이 도시의 한편에 기록되고 존중받을 때, 그 도시는 진정으로 시민의 것이 된다. 도시라는 텍스트를 소수의 권력자나 자본이 아닌, 그곳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현실적인 질문이 따를 것이다. “공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관리는 어떻게 하나?” 캐나다처럼 10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거나, QR 코드를 활용해 물리적 플라크는 최소화하고 디지털로 기억을 확장하는 방법이 있다. 한강공원의 수많은 벤치 중 일부만이라도 시범적으로 시작해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 기능적으로 완벽하지만 삭막한 도시인가, 아니면 조금은 느리고 불완전하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 도시인가. 벤치에 새겨진 이름은 그 공간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최소한의 윤리적 장치가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익명의 시설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의 기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스프링뱅크 공원, 그 소녀의 벤치에서 일어서며 뒤를 돌아봤다. 16살, 김00의 이름이 햇살 아래 조용히 빛난다. 우리의 공원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새겨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더 자주 멈춰 서서 서로의 삶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공원이 ‘기억의 정원’이 될 때, 도시는 단순한 콘크리트 집합체를 넘어, 우리의 삶을 보듬는 더 따뜻하고 사려 깊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벤치 하나가 던지는 이 작은 메시지가 더 큰 사회적 울림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본다. 기억을 품은 공간은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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