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김 실장은 사흘 만, 김 장관은 이틀 만이다. 김 실장은 “아직 양국 입장이 한두 가지 팽팽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있다”고 출국 배경을 설명했다. “쟁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특정 시점까지만 합의된 내용을 가지고 양해각서(MOU)를 맺는 것은 정부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다.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의 집행 방식과 시기 등 갈등 현안까지 해결돼야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뜻으로, APEC이라는 시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취지다.
안보 분야의 합의 결과물 역시 관세 합의와 함께 발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가 핵심이라고 한다. 유효기간이 10년가량 남은 원자력협정을 조기 개정하는 방향성이 명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꾸준히 언급해 온 ‘일본식 모델’의 핵심은 ‘포괄적 사전 동의’ 방식이다. 일본은 원자력 시설의 운용 범위와 절차를 사전에 미국과 협의해 정해 두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건건이 승인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농축과 재처리를 수행할 수 있다.
반면에 한·미 협정 제11조에는 “한·미 고위급위원회 협의에 따라 양측이 서면 약정을 체결하면 한국이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사안별 미국의 개별 허가가 전제다.
이에 정부는 한국이 농축 혹은 재처리의 주도권을 갖도록 협정을 개정하는 ‘정공법’을 추진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행 협정상으로도 미국의 승인을 받으면 20% 미만의 농축은 가능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이 한 차례도 이를 요청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실질적 자율권은 없다”고 말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순도 19% 수준의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한다”며 “SMR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평화적 이용 범위 내에서 농축 권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원자력 권한 확대가 글로벌 ‘핵 도미노’를 자극하거나 국내 핵무장론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미국 측이 우려할 가능성이 있다.
재처리의 문턱은 훨씬 높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추출되는 플루토늄은 핵무기 연료로 곧바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내의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라는 점을 재처리 권한 확보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진전된 반응은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수준이었다고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외교부 보고를 근거로 중앙일보에 밝혔다.
결국 협정 개정의 큰 틀에 공감하더라도 실질적 성과는 후속 협의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2018년 이후 중단됐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HLBC)도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