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3대 문서’ 개정 지시
지난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임명했던 국가안전보장국장(이하 안보국장)을 전격 경질했다. 그동안 안보국장은 통상 정권과 상관없이 2년 반~5년 재임해왔지만, 이번엔 9개월 만에 교체됐다. 총리 직속인 국가안보국장은 우리로 치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격이다.
안보국 차장에서 신임 안보국장에 오른 이치카와 게이이치는 외무성 출신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제창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외교 전략 기획에 참여한 인물이다. 동맹국들과 법의 지배, 자유 무역 등을 추구하며 중국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지난 10일 주인도네시아 대사로 발령받은 상태였지만, 다카이치가 이를 뒤집었다.
다카이치는 일본의 종합 안보 전략이 담긴 ‘안보 3문서’도 개정에 나섰다. 그는 21일 밤 취임 기자회견에서 “종전 이후 가장 가혹하다고 여겨지는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안보 3문서 재검토 작업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방위상도 “속도를 높이고 힘을 기울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강한 일본’을 내걸어온 다카이치가 취임 직후 ‘안보 정책’의 대대적 재편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슷한 성향의 일본유신회와의 연립 정권을 십분 활용해 방위비 증액을 포함한 방위력 강화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27일 방일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밀 ‘방위비 청구서’에 대비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다카이치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일미 동맹은 우리 외교 안보의 기축”이라며 “일본이 방위력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미국에)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안보 3문서는 일본의 기본 안보 종합 정책을 명시한 ‘국가안보 전략’, 자위대 등 방위 수단과 역할을 명시한 ‘국가방위전략’, 5년 단위의 방위비 지출 계획을 담은 ‘방위력 정비계획’을 말한다. 지난 2022년 기시다 내각은 3대 문서를 재정비해 적군에 대한 반격 능력과 통합 방공미사일 방위 능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던 방위비를 2027년에는 2%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다카이치는 이 계획을 재검토해, 추가 증액할 계획이다.
다카이치가 구상한 ‘강한 일본’의 전모는 최근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와 연립하면서 합의한 주요 외교·안보 정책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양측은 합의문에서 “국난을 돌파해 일본 재기(再起)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방위력 강화와 개헌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먼저 적의 공격 징후가 보일 때 선제 반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했다. 일본은 사정거리가 약 1000㎞에 달하는 자국산 장사정 미사일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 향상형’을 개발해왔는데, 내년 3월 규슈 구마모토현에 처음 배치할 방침이다. 수직발사장치(VLS)를 갖춘 차세대 동력 활용 잠수함의 보유도 추진한다. 사실상 ‘핵추진 잠수함’을 일컫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여기에, 방위 장비(무기)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도 내년 상반기 국회에서 철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방위력 증강이 자국법을 위반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력을 평화 목적으로만 이용하도록 규정한 관련 법률과 배치된다”며 “또 무기 수출 대국이 된다면 평화 국가로서의 행보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장기적으로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도 추진할 계획이다. 연내에 헌법 제9조 개정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의 육해공군 전력 보유를 금지하고, 교전권을 부인한다. 하지만, 1954년 제정된 자위대법을 통해 방어 목적의 자위대를 운용하고 있다. 엄격하게 해석하면 자위대는 위헌적 조직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일본 자위대를 헌법상 근거를 갖춘 군대로 명시하고, 미국의 보호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헌은 쉽지 않다. 헌법 개정안 발의에만 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중의원(하원)에서 평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 입헌민주당의 의석수만 해도 3분의 1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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