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대비 전세대출 3500억 급감…"전세계약 감소 영향"
전세매물 23% 급감…서울 평균 월세 144만원 '역대 최고'
"실수요자 자금난 커지고 월세화 구조적 고착 가능성 커져"[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정부의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 이후 전세대출이 사실상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은 조치가 시장 전반의 냉각을 불러오면서 거래가 끊기고 전세 매물도 사라진 영향이다. 정부는 “무리한 대출보다 저축으로 내 집을 마련하라”고 주문하지만 세입자로선 “월세 내면서 무슨 돈을 모으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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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6·27 대출 규제 이후 신규 전세대출 문의는 급감했고 고소득층 중심의 만기 연장만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세대출 잔액의 65.2%가 소득 상위 30% 고소득층에게 집중돼 있다. 반면 저소득층의 비중은 7.6%에 그쳤다. ‘서민금융’으로 인식됐던 전세대출이 사실상 중상위층 전용 상품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접근성이 떨어진 저소득층은 사실상 전세대출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라고 말했다.
전세대출 위축은 전세시장 경색의 단면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7~9월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3만 2838건 중 갱신 계약은 1만 4585건으로 44%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0%)보다 14%포인트 늘었다. 새로 나오는 전세 물건이 줄면서 시장 유동성이 급감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올해 초 3만 1814건에서 현재 2만 4000여건으로 23% 줄었다.
전세대출이 위축되면서 전세시장 전체 유동성도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전세 공급이 막히자 세입자들은 월세로 몰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44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1월(134만원)보다 10만원 오른 수치다. 강남 3구뿐 아니라 광진구(3개월 새 +3.48%), 송파구(+3.33%), 강동구(+3.13%) 등 외곽 지역까지 월세 상승세가 확산하고 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는 월세로 이동하면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갭투자 차단에 나선 이후 시장에서는 오히려 임대 공급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당이 추진 중인 ‘최대 9년 전세계약 보장 법안’ 역시 전세시장 유동성을 더 줄일 가능성이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에서 2회로 확대하고 임대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으로 통과 시 신규 매물은 더욱 희소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대출 총량을 조이면서도 “무리한 대출보다 저축으로 내 집을 마련하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월세 내면서 돈을 어떻게 모으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포털사이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대출이 막혀 집을 살 수 없고 전세마저 줄어 월세로 내몰렸다”며 “월세를 내면서 저축하라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결국 10월 들어 전세대출 잔액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규제 효과의 단기 안정보다 시장 위축이 먼저 현실화됐다는 방증이다.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면 ‘대출은 줄고 월세는 오르는’ 이중고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대출이 줄고 있다는 것은 전세거래 자체가 줄었다는 뜻이다”며 “실수요층의 자금난이 커지고 월세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