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북한 탈출한 외교관
“숙모 성경 보급 죄 연좌제로 탈북”
옥수숫대 종이 北 성경 필사본 공개
2016년 탈북한 북한 엘리트 외교관이 8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서서 자신의 탈북 계기가 성경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과 함께 분단 이후 80년 억압 속에서도 신앙의 명맥을 이어온 북한 지하교인들의 손글씨 성경 원본 조각들이 처음 공개됐다. 20년 만에 서울에서 열린 국제 북한인권대회는 북한의 종교 탄압 실상과 그 속에서 이어지는 신앙의 증거들을 제시했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와 미국 인권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가 ‘그들을 자유케 하라’를 주제로 2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했다. 2005년 북한인권국제대회 이후 20년 만의 국제적 민간 주도 행사로 9개국 76개 단체와 30여개국 탈북민 대표,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개회식 후 NK 인사이더 포럼에 나온 김강 전 주러시아 북한대사관 부대표는 “자신이 공개 증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러시아 주재 무역대표부 부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숙모가 성경책을 보급하다 발각돼 10년 형을 선고받은 사건 이후 자신에게 연좌제가 적용될 위기에 처하자 탈북을 결심했다. 그는 “중국 국경을 통해 평양에서 전달된 성경을 다시 숙모가 다른 교인에게 전달하다가 보위부에 잡혔다”며 “제 생각으로는 평양에만 지하교인이 최소 300명 정도는 있을 거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개 석상에 선 이유에 대해 “교회에 다니면서 장로님들로부터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 달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43년간 한국 관련 보도를 해 온 마이클 브린씨는 “북한에서는 조부모나 부모로부터 행동이나 기도의 습관으로 신앙이 전승되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 기독교인의 수가 외부 추정치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 봉수교회 방문 당시 경험을 공유하며 북한 공식 교회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회장 특별전시 공간에서는 북한 지하교인들의 손글씨 성경 원본 조각 18점이 공개됐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임창호 고신대 교수가 2007년부터 소장해 온 자료들이다. 과거 북한을 오갔던 재외 교포 인사가 함경북도 지하교회 관계자로부터 여러 차례 비밀리에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 위원장은 “북한에서는 성경 소지만으로도 정치범이 될 수 있어 지하교인들은 성경을 손으로 베껴 작은 종이에 적어 숨기고 다니다 서로 교환하며 읽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선 어느 지역 총각과 어느 지역 처녀가 기독교인이면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한다고 한다. 그렇게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부 필사본은 북한에서 펄프 대신 사용하는 옥수숫대 종이에 쓰였고 옛 한글 표기가 남아 있어 해방 전후 성경이 필사를 통해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