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와 집값의 함수 1편
공급자 탐욕, 통화정책 무력화
긴축시기에도 통화량 폭증
주택매매 반영 못하는 물가지수
수요자 탐욕·공포 자극해 집값 급등
공급대책, 호재에 불과한 가짜 공급
공급자-수요자 탐욕의 악순환 부추겨# 부동산 시장 대책이 기존의 수요 억제에서 주택 재산세 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정부가 부동산 공급자들과 수요자들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해 통화량 관리에 실패했고, 이는 서울 아파트와 같은 자산 가격의 급등과 원화 가치의 하락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 더스쿠프가 어떻게 부동산이 통화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보유세가 왜 필요한지, 또 어떤 방식으로 과세해야 하는지를 2편에 걸쳐서 자세히 알아봤다. 보유세와 집값의 함수 1편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과 주택 재산세 논의에 앞서 부동산 시장에 존재하는 두개의 탐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작은 매매 차익이라도 더 챙겨보려는 주택 수요자들의 탐욕, 둘은 온갖 호재와 판매 기법으로 이런 주택 수요자들의 매수심리를 자극해 자본을 대는 건설업자 등 공급자의 탐욕이다.
탐욕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적당히 통제될 때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통제가 풀린 탐욕은 종종 경제 자체를 망가뜨리고는 한다.
■ 통화정책 망가뜨린 건설업자의 탐욕=고물가를 잠재우기 위해서 고금리와 통화량 축소를 동반하는 양적긴축이 필요했던 2022년 건설업자들의 탐욕이 먼저 정부의 통화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9월 18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의 대담 중 "비은행금융기관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심각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은행이 2022년 빠르게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건설·부동산 부문의 대출이 문제가 됐다. 부동산 거품이 터져 금융위기로 발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부동산 부문 대출의 50%가 규제망이 느슨한 비은행금융기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통화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막대한 대출, 이른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곧 부실에 빠졌고, 우리는 아직 이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은행금융회사들의 건설업 대출 연체율은 2022년 4분기 2.00%에서 2023년 4분기 4.85%, 2024년 4분기에는 8.67%, 올해 1분기에는 마침내 10.26%까지 치솟았다. 비은행의 부동산업 대출 연체율도 올해 1분기 7.91%까지 치솟았다(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
서울과 일부 수도권 아파트를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부동산 수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부동산 PF 거품의 붕괴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의 본질은 신규 분양 체제와 신축 아파트 물가, 이를테면 고분양가에 있다.
주택 수요가 이미 전국적으로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도, 고분양가는 한번도 낮아지지 않았다. 이는 미분양 물량을 폭증시켜 건설사의 파산과 부동산 대출 부실화로 이어졌다. 전국 미분양 물량은 2022년 4분기 6만8107건이었는데, 2025년 2분기에도 6만3734건으로 여전하다. [※참고: 더스쿠프 '고분양가와 정부의 패착: 부동산 PF 부실의 경로(2024년 1월 15일)'.]
■ 주택 수요자의 인플레 공포=공급자의 탐욕으로 통화정책이 망가지자 통화량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2022~2024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5%까지 올렸던 긴축의 시기에서조차 우리나라 통화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올 8월 현재 통화량(M2)은 4400조2000억원으로, 2022년 3722조7872억원보다 18.2% 불어났다.
화폐가 시중에서 도는 속도인 화폐유통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더스쿠프가 계산한 우리나라 화폐유통속도는 2019년 0.6000 이하에서 긴축 기간이던 2022년 0.6242, 2023년 0.6278, 2024년 0.6320으로 계속 빨라졌다. 이 속도가 빨라지면 경기가 과열 상태이고, 느려지면 경기가 침체 상태라는 뜻이다[※참고: 더스쿠프 '금리인하 미스터리 : 물가는 정말 안정됐나(2024년 10월 16일)' '부동산·식품 인플레 조장한 한국은행의 적반하장(2025년 6월 16일)'.]
통화주의 경제학의 창시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 교환 방정식 '통화량(M)×화폐유통속도(V)=물가수준(P)×실질국내총생산(Y)'은 통화량이 늘면 물가가 상승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쉽게 말해서 통화량이 증가하면서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으려면, 화폐유통속도가 느려지거나(경기침체) 국내총생산(GDP)이 그만큼 늘어나야(고성장) 한다. 본격적으로 저성장으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실질 GDP 증가율은 2023년 1.6%, 2024년 2.0%를 기록하며 2021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IMF는 지난 10월 20일 올해 GDP 증가율도 0.9%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통화량은 증가하고, 지난해까지는 경기침체도 본격화하지 않았는데, 성장률까지 반 토막 났다면, 자산 가격의 거품은 그만큼 팽창하고, 원화의 가치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물가 상승을 자극해 부동산 매매가를 포함한 실질적인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 등과 달리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부동산 매매가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런 깜깜이 상태가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 수요자의 탐욕과 인플레이션 공포를 자극했다. 이는 올해 들어서 가장 안전하다는 서울 그중에서도 한강 주변 아파트 가격을 비이성적으로 상승시켰다. 그 결과가 바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주택 재산세 세율 인상론)다.
■ 호재에 불과한 가짜 공급=정부가 부동산 시장 대책을 기존 수요 억제에서 주택 재산세 인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여지를 주자, 과연 보유세 인상이 뜨겁게 달아오른 서울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더스쿠프는 지난 6월 24일 '8년 후에나 매물로 나올 가짜 공급 무의미: 부동산의 본질과 과세'라는 기사에서 주택 재산세 세율을 높이고, 취득·양도세를 줄여서 매물을 늘리는 방식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서울, 넓게 봐도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 시장을 진정시키려면, 막대한 물량이 시장에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사전 청약 제도를 운용하는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이른바 공급대책이란 이름으로 이 지역 매매가를 내릴 만한 물량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축 아파트가 청약, 건설, 입주의 과정을 거쳐서 양도소득세까지 최소화해 매매시장에 나오는 데는 최소 6~8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2015~2020년 연평균 주택 공급량 중 신축의 비율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부의 공급대책은 시중 집값 하락과는 상관없는 '가짜 공급'이다. 택지도 조성 안 된 지역을 포함한 이 가짜 공급을 부동산 시장에서는 '호재'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사겠다는 사람 수보다 우리 옆집과 윗집 등이 부동산에 매물로 등록된 건수가 더 많아야 우리 집 가격이 내려간다. 정부가 우리 동네 옆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하면, 우리 집 가격을 끌어올리는 '호재'이자 실제로는 6~8년간 매물이 나오지 않는 '가짜 공급'이다.
물리적인 한계도 신축 공급론이 가짜 공급인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서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신축 공급은 대부분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해 생긴다. 물리적으로 얼마나 많은 서울 아파트를 더 공급할 수 있을까.
공급 계획이 잡힌 서울의 30년 된 아파트들을 높이 지을 수 있는 만큼 높게 지어서(용적률 상한 적용) 한 번에 모두 시장에 공급한다고 해도 기존 건축계획보다 고작 4.5%가 늘어난다(LH토지주택연구원). 집값을 내리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내리겠다면서 신축 아파트 공급대책을 내놓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주택 수요자의 탐욕이 다시 부동산 PF 부실을 불러온 건설업자의 탐욕과 연결돼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집값 상승이 과잉 신축 공급을 불러오고, 이에 따라 신축 수요가 줄면, 부동산 PF는 다시 부실해지지만, 한번 올라간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 종류의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보유세로 조절하는 진짜 공급은 무엇일까. 2편에서 집값을 내릴 수 있는 보유세의 구체적인 부과 방식은 또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