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설명으로 본 홈플러스 사태
회생계획 인가 전 M&A 추진
3달 넘게 새 주인 나타나지 않아
국감 출석한 김병주 MBK 회장
경영 개입 안 해… 무책임한 태도
불안감 커지는 홈플 노동자들세일앤드리스백, 인가 전 M&A, 스토킹호스…. 새 주인을 찾고 있는 홈플러스처럼 M&A 절차가 복잡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인지 홈플러스의 현주소가 어떤지 가늠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더스쿠프가 홈플러스 사태를 '용어설명' 방식을 통해 쉽게 풀어봤습니다. 홈플러스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회생 절차는 제게 권한이 없습니다. 저희는 대기업이 아니고, 저는 총수가 아닙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최대주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의 발언입니다.
김 회장은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해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M&A(매각)가 성사되는 것만이 홈플러스가 살 수 있는 길이니 도와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취지의 발언을 늘어놔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죠.
그만큼 홈플러스 사태는 점입가경입니다. 10월 31일까지 인수의향자를 찾지 못하면 청산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홈플러스 노동자와 입점업체 점주 등 2만여명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지만 M&A 과정이 불투명하고 복잡해 미래를 점치기 힘듭니다. 복합한 홈플러스의 상황을 용어 설명을 통해 쉽게 풀어봤습니다.
■ 세일앤드리스백 패착 =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는 '세일앤드리스백(sale and lease back)'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공교롭게도 홈플러스 위기는 이때부터 시작했죠.
세일앤드리스백이란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을 매각한 뒤 임대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부동산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사업에 재투자할 수도 있죠. 하지만 임대료 부담이 증가하고, 추후 임대료가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점은 변수입니다.
홈플러스는 이런 부작용을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임대료 부담→투자 여력 부족→본업 경쟁력 약화→실적 악화→신용등급 하락→기업회생 절차'란 악순환의 늪에 빠졌습니다. 홈플러스는 세일앤드리스백을 추진하면서 주요 알짜 점포를 매각했고 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2015년 141개이던 홈플러스 점포는 현재 126개로 10.0%나 줄었고, 2019년 7조3001억원이던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6조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참고: 홈플러스는 지난 8월 임대인과 임대료 조정 합의에 실패한 15개 점포의 폐점을 추진했지만 인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절차를 중단했습니다.]
그 사이 임대료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지난해 홈플러스의 리스부채는 4조9179억원에 달했고, 연간 부담해야 할 임대료는 4000억원에 육박했죠. 그 결과, 올해 2월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고, 이후 홈플러스는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습니다. 현재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D'로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입니다.
■ 인가 전 M&A 추진 = 당연히 "MBK파트너스의 전략적 패착이 홈플러스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결국 홈플러스는 지난 6월 20일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ㆍ합병(M&A)'을 선언했습니다.
인가 전 M&A는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신주新株을 발행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는 '제로'가 되기 때문에 회사엔 새로운 자금이 들어올 수 있죠. 좀 더 쉽게 설명해볼까요. 인가 전 M&A를 실시할 경우 MBK파트너스가 보유한 홈플러스의 지분가치 2조5000억원이 무상소각되고,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경영권을 잃습니다.
MBK파트너스 측은 인가 전 M&A 계획을 두고 이런 의견을 냈습니다. "홈플러스는 청산을 피하고, 회생을 계속할 수 있는 인가 전 M&A를 진행하고자 한다… MBK는 경영권 등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매수자의 홈플러스 인수 지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 실패로 끝난 스토킹호스 = 중요한 건 결과입니다. 홈플러스는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방식으로 인가 전 MA&를 추진했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토킹호스란 사냥꾼이 말 뒤에 숨어 사냥감을 쫓는 방식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주로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매각할 때 택하는 방식이죠. 우선협상대상자(스토킹호스)를 미리 정해두고 공개입찰을 진행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인수자가 나타날 경우 계약을 변경할 수 있는 조건부 M&A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GS리테일ㆍ쿠팡ㆍ네이버ㆍ알리익스프레스ㆍ이마트 등 국내외 기업들이 인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실제 홈플러스 인수에 나선 기업은 없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의 전망이 밝지 않은 데다 유통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홈플러스에 수조원(홈플러스 청산가치 3조6816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싶다"고 말했죠.
■ 공개경쟁입찰 시작 = 결국 홈플러스는 지난 2일 기존 스토킹호스 방식을 접고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한다고 밝혔습니다. 공개경쟁입찰은 여러 입찰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방식입니다.
홈플러스는 매각 주관사 삼일PwC(삼일회계법인)를 통해 오는 31일까지 인수의향서(LOl)를 접수받습니다. 인수의향자가 나타날 경우 11월 3~21일 예비실사를 하고 26일 본입찰을 진행합니다. 지금부터 한달여가 홈플러스의 운명을 가늠할 중요한 시기라는 겁니다.
만약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언급했듯 청산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정무위 국감에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적 비난에 처음부터 청산 절차를 밟을 순 없으니 인가 전 M&A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인수 협상자가 없었다"면서 "마지막 기한이 되면 결국 M&A가 안 된다며 청산 절차로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홈플러스 측은 "잠재적 인수후보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인가 전 M&A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누가 홈플러스 인수에 나설까요. 홈플러스는 구사일생할 수 있을까요. 시계추는 빠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